2010년과 2026년... 지방선거는 왜 '설렘'을 잃었을까

채희태 2026. 6. 4.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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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변화는 권력이 순환하는 구조를 만드는 데서 시작된다

[채희태 기자]

▲ 계속되는 개표작업 6·3지방선거일인 3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개표소에서 투표지 분류기가 가동되고 있다.
ⓒ 연합뉴스
2010년 6월 2일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날 투표율은 54.4%였다. 2002년 이후 8년 만의 최고 기록이었다. 트위터에는 투표 인증샷이 넘쳤고, 연예인들이 투표소 앞에서 셀카를 찍어 올렸다. 젊은 세대가 움직였다. 그리고 결과는 예상을 뒤집었다. 이명박 정부의 일방적 국정 운영에 지친 민심이 지방 권력을 야당에 넘겼고, 전국 곳곳에서 낯선 얼굴들이 당선됐다. 패기 있고 참신한 40대 단체장들이 대거 등장했고, 지방자치는 잠깐이나마 다시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났다. 이번 6·3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그날을 훌쩍 넘었다. 최종 투표율 61%, 민주당이 광역단체장 16곳 중 12곳을 가져갔고, 민심의 방향은 다시 한 번 요동을 쳤다. 그런데 높은 투표율이 높은 설렘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투표소를 나서는 시민들의 표정이 2010년만큼 밝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번 선거의 높은 투표율은 두 가지 힘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로 보인다. 지난 정권의 계엄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누군가는 각성하게 했고, 누군가는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투표장으로 달려나오게 했다. 그 두 힘이 항상 같은 방향을 향하지는 않았다. 출구조사에서 경합으로 분류됐던 대구에서 막판 보수가 결집하며 예측을 뒤집은 것이 그 단적인 예다. 전국 최고 수준의 오전 투표율을 기록했던 대구의 그 표들이 과연 계엄에 분노한 각성의 표였을까, 아니면 지역 기반의 이익을 지키려는 결집의 표였을까?

복잡한 세상에서 이익은 곧잘 가치로 포장된다. 이익을 포기하는 것은 대인배로 여겨질 수 있지만, 가치를 포기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잃는 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높은 투표율이 반드시 높은 시민 의식을 의미하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고, 그것이 이번 선거 결과를 마냥 설렘으로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은 어디로 갔는가

2010년 지방선거가 만들어낸 인물들을 떠올려보자. 경남의 들판에서 무소속으로 기성 정치를 뒤집은 김두관, 혁신교육으로 교육계를 뒤흔든 진보 교육감들. 그들은 당시 분명히 다른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듬해인 2011년에는 시민운동가 출신 박원순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당선되며 그 흐름을 이었다.

15년이 지난 지금, 그 얼굴들은 대부분 국회에 있다. 지방에서 중앙으로, 자치에서 당으로, 현장에서 여의도로 이동했다. 김두관은 경남지사직을 임기도 채우지 않고 대선 경선에 나섰다가 낙마한 뒤 국회의원이 됐다. 지방을 바꾸겠다던 사람들이 지방을 발판 삼아 중앙으로 올라갔다. 그것이 잘못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떠난 자리에 남은 지방자치는, 16년 전보다 얼마나 더 나아졌을까?

이번 선거에 나온 후보들을 보면 그 답의 윤곽이 보인다. 광역단체장 후보군의 상당수는 전직 국회의원이거나 당의 공천을 받은 정치인이다. 지역에서 오랫동안 현장을 일궈온 사람보다, 중앙 정치의 흐름에 따라 내려온 사람이 더 많다. 지방선거가 지방의 이야기가 아니라 중앙 정치의 연장전으로 치러진다는 느낌은 이번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2010년 지방선거가 설렜던 건 후보들에게서 정책의지가 보였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지역을 바꾸고 싶다는 의지. 16년이 지난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느꼈던 피로감의 정체도 어쩌면 거기에 있는지 모른다. 정책의지는 사라지고,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권력의지만 선명하게 남은 선거,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익숙한 기성 정치인들이었다.

586의 긴 그림자

이 문제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세대의 문제다. 필자 역시 그 세대의 일원으로서, 자기 성찰 없이 이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586세대는 이후 한국 정치의 주류를 형성했다. 그들의 헌신과 희생은 분명히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30년이 넘도록 한국 정치의 중심 자리를 지켜온 결과, 70년대생과 80년대생은 자신의 정치적 목소리를 온전히 내기 어려운 구조 속에서 성장해야 했다.

신경과학자 이언 로버트슨은 저서 <승자의 뇌>에서 권력이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공감 능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밝혀냈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정치를 시작한 사람도 한 번을 넘어 두 번, 세 번을 하게 되면 권력에 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10년 지방선거 이후 재선·삼선을 거쳐 국회까지 자리를 잡은 그들에게도, 그 법칙이 예외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90년대생은 잠깐 주목받은 적이 있다. "90년대생이 온다"라는 말이 유행했고, 젊은 세대의 감각과 요구가 주목받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소비 트렌드와 직장 문화에 관한 이야기였지, 정치권력의 교체와는 거리가 멀었다. 30대 국회의원은 여전히 손에 꼽히고, 지방 단체장 후보 중 40대 이하는 주목받는 예외에 속한다.

권력은 자발적으로 물러나지 않는다. 선거로 선출된 권력은 더욱 그렇다. 스스로 내려놓을 수 없다면 제도로 제한하는 방법도 있다. 단임제가 그중 하나다. 대의민주주의의 아이러니는 여기에 있다. 민심을 대변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시간이 지날수록 기득권을 재생산하는 구조로 굳어진다.

다음 세대에게 정치를 돌려주려면?

어게인 2010을 꿈꾼다면, 단순히 젊은 후보를 더 많이 내보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2010년의 설렘이 가능했던 것은 후보의 나이 때문이 아니라, 그 선거가 기성 정치에 대한 유의미한 문제 제기였기 때문이다. 진짜 변화는 권력이 순환하는 구조를 만드는 데서 시작된다. 스스로 내려놓지 않는 권력을 제도로 제한하는 것, 단임제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임기를 마친 자리에 새로운 세대가 들어서는 것이 반복될 때, 비로소 정치는 특정 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라 시민 모두의 것이 된다. 그것이 세대 갈등을 완화하는 길이기도 하다.

물론 단임제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지방선거가 지방의 이야기가 되려면, 중앙 정치의 공천 구조와 자원 배분 방식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 지역에서 오래 현장을 일군 사람이 당 공천 없이도 경쟁할 수 있는 구조, 당선 이후에도 여의도가 아니라 지역을 바라보며 임기를 채울 수 있는 구조. 그것이 2010년 그 설렘의 본질에 더 가깝다.

2010년 투표소 앞에서 셀카를 찍던 청년들은 이제 중년이 됐다. 그중에는 필자도 있다. 우리 세대가 민주화를 위해 싸웠다면, 지금 해야 할 싸움은 우리 세대가 쥐고 있는 자리를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는 것일지 모른다. 그것이 어게인 2010이 진짜로 의미하는 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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