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은행만 다그쳐선 풀리지 않는 '포용금융'

권해영 2026. 6. 4.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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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금융을 위해 무슨 방안을 더 내놓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사실상 할 수 있는 대책은 이미 다 내놓은 상황이라, 결국 정부 정책의 윤곽이 나오면 그에 맞춰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최근 만난 한 시중은행 임원의 말이다. 청와대가 은행을 '준공공기관'으로 규정하며 금융의 공공적 역할을 거듭 강조하자 금융권의 긴장감도 커지고 있다. 인허가를 받아 제한된 경쟁 속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거두는 은행이 취약계층과 금융 소외계층을 위해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문제의식이다.

포용금융의 취지 자체를 부정하긴 어렵다. 금융회사가 회수 가능성이 낮은 연체채권을 헐값에 매각해 과도한 추심으로 이어지는 관행을 줄이고 정상적인 경제 활동이 어려운 채무자에게 재기의 기회를 제공하는 일은 필요하다. 금융의 손길이 조금만 더 닿아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람들이 있고 은행이 일정 부분 역할을 한다면 사회 전체의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정부가 특히 주목하는 건 채무자가 물에 빠진 뒤가 아니라 빠지기 직전 단계다. 중·저신용자의 자금 접근성을 가로막는 이른바 '금리 단층' 현상이 문제란 것이다. 고신용자에겐 낮은 금리를 적용하면서도 중·저신용자 구간에선 금리를 급격히 높이거나 아예 대출을 제한하는 구조가 금융 소외를 심화시킨다는 판단이다.

문제는 접근 방식이다. 최근 청와대의 메시지는 포용금융 확대를 넘어 은행의 영업 행태 자체를 바꾸겠다는 압박에 가깝게 들린다. 이재명 대통령은 중·저신용자에 대한 포용금융 실적을 평가해 불이익을 주는 방안까지 언급했다.

그러나 시장 원리를 한참 벗어난 포용금융은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 한 은행 관계자는 "신용도가 일정 수준 이하로 내려가면 부실률이 가파르게 뛴다. 건전성을 유지하면서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적정 금리를 찾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은행이 중·저신용자 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추고 그 부담을 고신용자에게 전가한다면 또 다른 왜곡을 낳을 수 있다.

더욱이 금융당국은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건전성 규제를 지속적으로 강화해 왔다. 은행이 리스크 관리 강화와 포용금융 확대 요구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은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다.

결국 금융위원회가 내놓을 포용금융 정책의 핵심도 신용평가체계 개편으로 수렴되는 분위기다. 과거 금융 이력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상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비금융 정보를 활용해 금융 이력이 부족한 차주의 접근성을 높이려는 것이다. 방향 자체는 옳다. 금융당국이 과거 추진했던 마이데이터(본인신용정보관리업) 사업 역시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지만 데이터 활용 범위와 법적·제도적 뒷받침의 한계로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포용금융의 성패는 은행의 팔을 비트는 데 있지 않다. 은행이 자발적으로 포용금융을 확대할 수 있도록 신용평가 인프라를 고도화하고 데이터 활용 기반을 넓히는 등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정부의 우선 과제다. 포용금융이 실적 압박의 대상이 되는 순간 은행은 실질적 지원보다 보여주기식 성과에 매달릴 가능성이 커진다. 금융의 공공성과 복지는 구분돼야 한다. 은행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순간 그것은 포용금융이 아니라 정부가 책임져야 할 복지의 영역이 된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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