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돔 없는 K팝 종주국]상암 잔디, 고척 야구에 묶인 K팝…국가대표 '다목적 돔' 만들어야
국내는 체육 시설 대관 의존…기상·민원 등 한계
공연 우선 설계…다목적 가동률 고려해 운영
국가급 1호 돔, 지역 안배 아닌 산업 수요 기준

하루 5만명 이상을 모으는 초대형 공연을 한국에서 열기 위해선 결국 축구장이나 야구장을 빌려야 한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축구장이고, 고척스카이돔은 야구장이다. 잠실주경기장은 리모델링 공사로 장기간 폐쇄됐다. 글로벌 K팝 투어 규모가 커질수록 한정된 대형 시설을 둘러싼 공연계와 스포츠계의 충돌도 반복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제 한국에도 스포츠 일정이나 잔디 상태를 걱정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대형 공연을 치를 수 있는 '공연 우선형 다목적 돔'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4일 공연·스포츠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초대형 공연은 음악 전문 시설이 아닌 스포츠 경기장에 임시 무대를 설치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 과정에서 잔디 훼손, 경기 일정 충돌, 기상 변수, 음향 한계 등 각종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월드컵경기장이다. 6만6704석 규모의 이 경기장은 축구 국가대표 A매치와 대형 문화행사를 모두 수용할 수 있는 다목적 시설이지만 운영의 최우선 기준은 어디까지나 잔디 보호다.
실제 지난해 아이유와 임영웅 등 대형 콘서트가 잇따라 열린 뒤 잔디 훼손 논란이 불거졌고, 대한축구협회가 잔디 상태를 이유로 국가대표 경기를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일까지 벌어졌다. 결국 서울시는 올해부터 서울월드컵경기장 콘서트 대관 시 그라운드석 판매를 금지했다. 공연 대관 자체를 제한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실행하지는 못했다. 서울시 역시 "서울 시내에 2만명 이상을 수용할 대형 공연장이 부족한 현실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공연 인프라 부족을 행정 당국이 인정한 셈이다.
고척스카이돔 역시 근본적인 해법은 아니다. KOPIS 기준 객석 수는 1만6744석 수준에 불과하다. 프로야구 정규시즌이 진행되는 4~10월에는 장기 대관 자체가 쉽지 않다. 대형 K팝 공연은 무대 설치와 철거까지 포함해 최소 일주일 이상의 일정 확보가 필요하지만 스포츠 경기 일정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결국 한국의 초대형 공연은 축구장과 야구장에 임시 무대를 얹는 방식에 머물러 있다. 공연계는 스포츠 일정과 시설 관리 문제를 의식해야 하고 관객들은 날씨와 제한적인 시야, 심야 귀가 문제를 감수해야 한다.
반면 해외 주요 국가는 초대형 공연 수요를 산업 인프라 차원에서 흡수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 도쿄돔이다. 5만5000명을 수용하는 도쿄돔은 야구 경기뿐 아니라 대형 콘서트와 전시까지 소화하는 복합 시설이다.
도쿄돔의 경쟁력은 공연장 자체에만 있지 않다. 주변 '도쿄돔 시티'에는 호텔과 쇼핑몰, 테마파크가 결합돼 있다. 관객들은 공연 전후로 인근 상권에 머물며 소비를 이어가고, 공연장은 도시 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거점으로 기능한다.
일본 엔터테인먼트 기업 아뮤즈 관계자는 일본 돔 공연장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배경에 대해 "대규모 관객 동원에도 음향, 무대 반입·반출, 관객 동선, 굿즈 판매, 교통, 숙박 인프라가 높은 수준으로 구축돼 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이어 "야구장 특유의 반향 문제를 제어하는 음향 기술이 오랜 시간 축적됐고, 백야드 설계가 잘 갖춰져 있어 대형 세트의 설치와 철거도 신속하게 이뤄진다"며 "5만명이 한꺼번에 이동해도 마비되지 않는 교통 체계와 공연 전후 소비를 흡수할 상업·숙박 시설 역시 중요한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은 공연장 생태계도 체계적으로 구축돼 있다. 수백 명 규모의 라이브하우스에서 시작해 홀, 아레나, 돔·스타디움으로 이어지는 성장 경로가 뚜렷하다. 아뮤즈 관계자는 "팬과 아티스트가 성장의 궤적을 함께 공유하는 구조"라고 평가했다. 그는 "라이브하우스의 밀도 높은 경험이 홀과 아레나를 거치며 확장되고, 최종적으로 돔과 스타디움에서 수만 명의 팬과 성취를 나누게 된다"며 "이 같은 흐름이 팬과의 중장기적 유대감을 더욱 깊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일본 싱어송라이터 스다 케이나 역시 공연장 생태계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일본에서는 라이브하우스, 홀, 아레나, 돔으로 이어지는 공연장 환경이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그것이 결코 당연하지 않은, 감사한 환경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다"고 돌아봤다. 이어 "라이브하우스에서는 가장 뒤에 있는 관객과도 눈을 마주칠 수 있지만 공연장이 커질수록 그런 소통은 물리적으로 어려워진다"며 "그럴수록 어떤 연출을 할지, 어떤 자세로 무대에 설지 팀 전체가 더욱 세밀하게 준비하게 된다"고 전했다.
싱가포르도 비슷한 전략을 택했다. 5만5000명을 수용하는 싱가포르 내셔널 스타디움은 개폐식 지붕과 가변형 좌석 시스템을 갖춘 복합 시설이다. 싱가포르는 이 인프라를 바탕으로 테일러 스위프트의 동남아 독점 공연 6회를 유치해 30만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정부는 이를 단순한 콘서트가 아니라 관광·항공·유통 산업을 동시에 활성화하는 국가 프로젝트로 접근했다.
올해 개장한 홍콩 카이탁 스포츠파크 역시 공연과 스포츠의 공존 모델로 꼽힌다. 개폐식 지붕과 잔디 보호 시스템을 갖춘 이 시설에서는 콜드플레이 공연과 K팝 시상식 '마마 어워즈(MAMA AWARDS)'가 열렸다. 스포츠와 공연을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핵심 산업으로 함께 운영하는 방식이다.
업계에서는 한국 역시 단순히 '큰 공연장'을 짓는 수준을 넘어 공연 중심으로 설계된 다목적 돔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해외 사례가 보여주듯 초대형 공연장은 단순한 집객 시설이 아니라 관광과 소비, 도시 브랜드를 연결하는 산업 인프라라는 이유에서다.
특히 5만석 규모 공간의 가동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스포츠 경기와 국가 행사, 대형 전시를 함께 유치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다목적이라는 이유로 공연의 기본 조건이 뒷전으로 밀려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상급 음향 설계와 천장 리깅 하중, 대형 트레일러 진입 동선, 백스테이지와 MD 판매 공간 등 공연 인프라를 설계 단계부터 반영해야 한다는 의미다. 운영은 다목적으로 하되 설계만큼은 철저히 공연 중심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입지 선정 역시 핵심 과제로 꼽힌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방정부와의 협의를 통한 입지 검토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업계에서는 국가를 대표할 공연돔을 지역 안배 논리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KOPIS에 따르면 2025년 대중음악 티켓 판매액은 서울이 4934억5000만원으로 전체의 50.3%를 차지했다. 경기(2036억원), 인천(1234억원)을 합친 수도권 비중은 83.6%에 달한다. 글로벌 관객 접근성과 교통, 숙박, 물류 효율까지 고려하면 결국 시장 수요가 집중된 지역을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방 거점 도시의 문화 인프라 확충 역시 중요하다. 특히 공항과 컨벤션 시설을 갖춘 부산은 장기적으로 제2의 공연 거점으로 성장할 잠재력이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국가를 대표하는 첫 번째 5만석 공연돔은 글로벌 관객과 물류가 가장 효율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곳에 자리해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5만석 규모 공연돔 건립은 단순한 지역 랜드마크 사업이 아니라 국가 단위 산업 프로젝트"라며 "지역 유치 경쟁이 아니라 K팝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경제성과 광역 교통망을 기준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아뮤즈 관계자는 "한국에 5만명 규모의 돔 시설이 생기면 아시아 전체 라이브 엔터테인먼트 시장 확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세계적인 톱 아티스트가 월드투어를 기획할 때 아시아에서 5만명 규모의 실내 공연장을 연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며 "한국에 대형 돔이 들어서면 일본의 돔, 한국의 돔, 중화권과 동남아시아의 대형 스타디움을 연결하는 새로운 아시아 투어 루트가 형성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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