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이는 깊이에서 나온다
옥스퍼드의 깊은 샘, 케임브리지의 흐르는 강

영국 런던 빌리온소울하비스트(BSH) 대회를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다시 옥스퍼드를 거쳐 케임브리지에 와 있다. 이 도시를 처음 방문하면 사람들은 흔히 고풍스러운 건물과 잔잔히 흐르는 강, 그리고 자전거를 타는 학생들에게 먼저 눈을 빼앗긴다. 그러나 이 도시의 이름을 천천히 발음해보면, 놀랍게도 그 안에는 단순 지명을 넘어서는 깊은 상징이 숨어 있다. 케임브리지(Cambridge), 켐강 위의 다리.
이 단순한 어원은 묘한 상징성을 지닌다. 처음에는 자연 위에 다리를 놓으려 했지만 어느 순간 인간은 자신이 만든 다리의 이름으로 세계를 재정의하기 시작했다. 케임브리지는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인류의 지성이 ‘존재의 강’을 건너려 했던 장소였다. 철학은 의미의 다리를 놓으려 하고 예술은 아름다움의 다리를 놓으며, 과학은 창조의 질서를 회복시키는 다리를 세운다. 시간과 죽음, 고뇌와 희망, 질문과 침묵 사이에서 푸른 강은 여전히 흐른다. 오늘도 켐강 위로 저녁 안개가 천천히 내려앉고 있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의 역사는 단순한 학문의 역사가 아니다. 그것은 말씀을 향한 경외, 절대진리를 향한 순교적 사랑, 하나님과 깊이 호흡하는 영성, 그리고 그 생명을 세상 속으로 흘려보낸 문명의 역사이다. 이 흐름 중 하나는 깊은 우물을 판 옥스퍼드이고, 다른 하나는 그 물을 세상 속으로 흘려보낸 케임브리지이다.
옥스퍼드는 존재의 깊이를 형성한 영성의 샘이었고, 케임브리지는 그 깊이를 문명 속으로 확장한 흐르는 강이었다. 그리고 이 두 흐름 사이를 관통하며 말씀의 절대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인물이 바로 윌리엄 틴데일이다. 공교롭게도 BSH 대회를 마친 마지막 날은 틴데일 성경 번역 500주년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런던 시내에서는 수천 명이 참여한 예수 행진(Jesus March)이 진행되고 있었다.
옥스퍼드의 영성은 본질적으로 ‘존재의 형성(Formation)’에 관한 영성이다. 깊은 기도와 묵상, 경외와 거룩, 그리고 내면의 변화가 옥스퍼드 영성의 중심이었다. 14세기 옥스퍼드의 신학자 존 위클리프는 “성경은 교황보다 높다”고 선언했다. 그는 절대진리가 인간 권력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는 성경을 라틴어의 감옥에서 꺼내 민중의 언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단순한 번역 작업이 아니라 말씀의 회복 운동이며, 거룩한 리듬(Holy Rhythm)의 회복이었다. 위클리프의 흐름은 훗날 종교개혁의 불씨가 되었다.
틴데일은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를 모두 관통한 인물이다. 그는 위클리프의 홀리 리듬을 이어받아 성경의 절대진리를 발견했고, 라틴어에 갇혀 있던 말씀을 평범한 사람들의 언어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쟁기질하는 소년도 성경을 읽게 하겠다.” 그러나 당시 영어 성경 번역은 불법이었다.
틴데일은 유럽을 떠돌며 목숨을 걸고 성경을 번역했고, 그 말씀은 몰래 영국으로 퍼져나갔다. 결국 그는 체포되어 1536년 화형을 당했다. 죽기 전 마지막 기도는 이것이었다. “주여, 영국 왕의 눈을 열어 주소서.” 그리고 그의 기도는 역사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보여주었다. 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완전히 항복할 때, 그 홀리 리듬은 한 시대를 넘어 문명 전체를 바꾸는 강이 된다는 것을.
틴데일은 진리가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목숨으로 지키는 것임을 보여줬다. 그의 피는 영국 영성의 깊은 토양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틴데일하우스에서 ‘성경의 절대진리’ 선언문을 낭독했다.
18세기 영국은 산업혁명 속에서 급격히 무너지고 있었다. 술과 폭력, 빈곤과 영적 공허함이 사회 전체를 뒤덮었다. 그 한복판에서 예비하신 한 사람이 있었다. 존 웨슬리였다. 그의 인격과 전 삶에 자리 잡은 하나님의 임재, 그 홀리 리듬은 곧 홀리 플로(Holy Flow)가 되어 영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광산 노동자들이 회개했고 거리마다 찬양이 울려 퍼졌으며, 소그룹 공동체들이 전국에 생겨났다. 이 흐름은 노동개혁, 교육운동, 빈민구제, 노예제 폐지 운동으로 이어지며 영국 문명 자체를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많은 역사학자가 “웨슬리 운동이 없었다면 영국도 프랑스혁명 같은 피의 혁명을 겪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국은 폭력 혁명이 아니라 홀리 리듬의 혁명을 경험한 것이다.
옥스퍼드의 또 다른 흐름은 CS 루이스에게서 나타난다. 그는 차가운 이성과 세속주의 시대 속에서 복음을 다시 아름답고 상상력 있게 회복시킨 사람이었다. 그는 기독교를 종교가 아닌 ‘인간 존재 전체를 설명하는 참된 진리로 보여주었다. 그의 책 ‘순전한 기독교’를 통해 지성인들에게 “기독교는 가장 깊은 합리성의 진리”임을 설득했고, ‘나니아 연대기’를 통해서는 복음을 상상력과 경이 속에 심어주었다.
루이스는 현대인들에게 경이, 영원에 대한 갈망, 아름다움에 대한 목마름, 하나님 나라에 대한 그리움을 회복시켰다. 그는 “당신 안의 끝없는 갈망은 착각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흔적”이라고 했다. 위클리프가 말씀을 회복했고 웨슬리가 홀리 리듬을 회복했다면, 루이스는 현대 문명의 상상력 속에 다시 하나님을 흐르게 만든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깊은 통찰은 지금도 전 세계를 흐르고 있다.

옥스퍼드가 깊은 우물이었다면, 케임브리지는 흐르는 강이었다. 케임브리지 영성은 절대진리를 세상 속으로 흘려보내는 영성이다. 16세기 케임브리지에서는 ‘오직 성경’이라는 선언이 목숨의 문제가 되었다. 라티머 리들리 크랜머는 권력보다 진리를 선택했고, 그들은 화형대 위에서 복음의 촛불을 지켜냈다.
19세기에는 자유주의 신학과 회의주의가 성경의 권위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때 등장한 인물들이 라이트풋 3인방이었다. 그들은 초대교회 문헌과 헬라어 사본을 집요하게 연구하며 성경의 역사성과 원형을 지켜냈다. 그들의 연구는 가장 정직한 학문이 오히려 절대진리를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 흐름은 결국 틴데일하우스로 이어진다. 틴데일하우스는 오늘날까지 성경 원문 연구와 사본학, 역사적 검증과 고대 언어 연구를 통해 복음의 절대 권위를 수호하는 세계적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그곳 학자들에게 연구란 진리를 향한 경외와 충성이며 지성적 순교에 가깝다.
케임브리지 영성의 가장 놀라운 특징 중 하나는 영성과 지성의 통합이다. 그 상징적 인물이 바로 제임스 맥스웰이다. 그는 현대 물리학의 아버지 중 한 명으로 전자기학 통합이론을 세워 현대 통신기술과 정보 문명의 기초를 놓았다.
놀라운 점은 그가 자연과 과학을 ‘하나님의 질서가 담긴 책’으로 바라봤다는 것이다. 맥스웰의 정신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씀은 시편 111편 2절이다.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들이 크시오니 이를 즐거워하는 자들이 다 기리는도다.” 그에게 연구란 세상을 통제하는 행위가 아니라 창조 질서를 읽는 행위였다. 과학은 곧 예배적 탐구였다.
그 깊은 영성에 기초해 1874년 설립된 캐번디시연구소는 단순한 기술 연구소가 아니었다. 그것은 진리를 탐구하는 공동체이며 경이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전자 발견, 원자 구조 연구, DNA 구조 발견 등이 이어지며 30명 이상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우리는 이 연구소 앞에서 ‘과학의 기초가 성경 말씀’이라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 다시 입증된 것에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이 놀라운 역사의 현장에서 우리는 과학이 다시 창조주와 연결되어야 한다는 ‘제2의 과학혁명‘ 선언을 했다.

케임브리지 영성은 결국 선교로 흘러갔다. 그 절정이 바로 ‘케임브리지 7인’이다. 이들은 당대 영국이 가장 부러워하던 청년들이었다. 명예와 학문, 부와 미래를 가진 엘리트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중국과 열방으로 떠났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절대진리였기 때문이다. 1880년대 DL 무디의 집회와 영국 대학가를 뒤흔든 영적 각성은 그들의 심장에 거룩한 불을 지폈다. 7인 중 한 명인 CT 스터드는 말했다. “한 번뿐인 인생, 곧 지나가리라.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 한 일만 영원하리라.”
그들의 선교는 지배가 아니라 사랑이고 성육신이었다. 그들의 헌신은 전 세계 청년운동과 선교운동에 폭발적인 영향을 미쳤다. 수많은 젊은이가 그들의 삶을 보고 아프리카와 인도, 중국과 중동으로 떠났다. 그들은 보여주었다. 진리는 삶 전체로 증명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결국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영성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다. 옥스퍼드는 깊은 영성의 샘이었다. 케임브리지는 깊이 흐르는 영성의 강이었다. 영성신학자 리처드 포스터는 “피상성은 이 시대의 저주”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아놀드 토인비는 한 문명의 멸망은 대부분 문화가 ‘천박성‘을 보일 때 일어난다고 했다.
문제는 열심히 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전략이 없어서도 아니다. 영성의 깊이가 없어서다. 영성의 뿌리가 얕아서 문제다. 옥스퍼드는 깊은 샘을 팠다. 진리 기반 문명, 하나님 나라 생태계, 사랑과 존중의 문화가 바로 그 열매이다. 케임브리지는 그 물을 세상 속으로 흘려보냈다. 그 흐름 속에는 순교자들의 피와 말씀을 향한 경외, 과학자의 탐구와 선교사의 헌신, 절대진리를 사수한 지성과 하나님과 깊이 호흡하는 영성이 함께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깊은 샘과 흐르는 강이 다시 하나가 될 때, 영성은 다시 깊이를 회복하고 과학은 다시 경외를 회복하며, 문명은 다시 빛을 향해 흐르기 시작할 것이다. 넓이는 깊이에서 나온다. 강이 깊어야 광활한 평원을 넉넉히 적실 수 있다. 문명을 바꾸는 힘은 언제나 깊은 샘에서 시작된다.

황성주 (주)해밀리 회장·사랑의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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