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용 목사의 스티그마] 사과는 부족하고 용서는 미숙하다

2026. 6. 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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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유명 커피 회사가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맞춰 진행한 행사가 국민적 공분을 샀다. 5·18과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폄훼하고 의도적으로 모욕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대중의 거센 비판과 불매 운동이 확산됐고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회사는 즉각 행사를 중단했다. 기획 책임자와 대표를 전격 해임했고 회장은 해당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들의 사과는 부족했다.

그 회사의 사과문은 최고의 엘리트들이 머리를 맞대 세련되고 지적인 단어로 만든 것인지는 모르지만 시민들의 마음에 닿고 깊은 공감을 주지 못했다. 사과문 속 ‘부적절한 마케팅’이라는 일곱 글자는 5·18 민주화운동과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로 인해 평생 고통 속에 살아왔던 피해자들에게는 턱없이 부족한 사죄였다. ‘각자의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이라는 구절은 본심을 의심하게 하는 태도였다. 이후 행사를 기획했던 직원들이 경찰 수사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사과문의 진정성은 더욱 퇴색했다.

화해와 용서의 담론을 신학적으로 풀어냈던 로버트 슈라이터 교수는 가해자가 진정으로 사과를 하고자 한다면 첫째로 잘못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 즉 고백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유감이다’ ‘서로 생각이 달라서 발생한 오해였다’는 식의 사과는 안 된다. 무엇을 누가 어떻게 잘못했는지 사실에 근거해 매우 구체적으로 고백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변명을 포기하고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케팅의 실수였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됐다’는 식의 변명을 하거나 사회 분위기 탓으로 돌리지 말아야 하며 책임자는 분명히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선언이 필요하다.

셋째로 이 부분이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데 피해자 또는 공동체의 고통에 대해 공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피해자는 가해자로 인해 상처와 트라우마를 갖게 됐다. 그러나 그것을 단순히 언론 보도용 사과문으로 대체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고통에 깊은 정서적 공감을 가져야 하고 그것이 사과문에 충분히 기재돼야 하며 이를 위해 구체적인 사죄의 방안이 제시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의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약속의 실현이 있어야 한다. 사과문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배상 및 제도 변화, 교육, 사죄의 작업 등 행동이 있어야 진정한 용서를 구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그 커피 회사의 사과는 피해 당사자들과 모든 국민에게 용서를 받기에는 부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그 회사의 사과에 성숙한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 ‘용서를 받아들이자’는 것은 부족한 사과를 곧이곧대로 덮어주자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유한하고 한계가 있다. 사과하는 것도 그에 대해 용서를 하는 것도 모두 충분하지 못하다. 피해자는 가해자의 사과를 조건부 수용하고 긴 호흡을 가진 화해와 용서의 과정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물론 인류 역사 속에서 가해자이자 기득권자의 반복된 위선과 끊임없는 배신 때문에 용서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또 사회적 갈등이 봉합되지 않은 채 화해와 용서만을 강요할 때 발생하는 사회적 무관심과 방관의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걱정과 우려를 뛰어넘어야 한국사회는 지금의 갈등과 분열의 시대를 극복하고 화해의 공동체로 갈 수 있다.

용서는 기억을 지우는 것이 아니다.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용서를 구하는 자가 진정으로 사죄의 삶을 사는지를 지켜보는 도덕적 감시를 지속하겠다는 결단의 다른 모습이다.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마땅한 비판을 가해야 하되, 결코 그들을 혐오해서는 안 된다.

그 커피 회사의 사과문대로 마케팅을 준비한 실무진은 죗값을 분명히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회사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노동자에게까지 돌을 던져서는 안 된다.

그들의 사죄는 분명히 부족했다. 그렇다고 그들과 같이 미숙하게 용서하지는 말자.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비난하고 저주하는 이들까지도 용서하셨던 그리스도처럼 우리도 용서하되 그들이 변화하고자 하는 모습을 거룩한 눈으로 지켜봐야 한다. 그렇게 교회가 참된 화해와 용서를 보여주는 중재자가 되길 기대해 본다.

김주용 목사(연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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