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중심 함백산 일대…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주목 화사하게 수놓은 연분홍 철쭉
함백산에서 보는 바람의 언덕·운탄고도
만항재 야생화 속 편안한 고원 산책
영월 작약꽃밭 ‘왕사남’ 단종·정순왕후
지지리골 순백의 터널 속 피톤치드 향

한반도의 등줄기를 이루는 백두대간의 중심에 우뚝 솟은 함백산(1572.9m)은 강원도 태백시와 정선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남한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산이다. 고산 수목인 주목과 야생화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특히 5월 말에는 철쭉이 화려하게 능선을 치장한다. 해맞이 코스로도 많은 산행객들이 찾고 있다.
조선 영조 때 실학자 여암 신경준(1712~1781)이 편찬한 ‘산경표’에 함백산은 대박산으로 기록돼 있다. 대박(大朴)은 태백(太白)·함백(咸白)과 함께 ‘크게 밝다’는 의미다.
함백산은 높이에 비해 등산은 상대적으로 쉽다. 해발 1300m 부근까지 도로가 잘 닦여 있어서다. 등산로 입구에서 정상까지는 약 1㎞. 제법 가파르지만 넉넉잡아 1시간이면 오를 수 있다. 가파른 길이 부담스러우면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약간 둘러 올라갈 수 있다.
산 정상에 돌탑과 정상석, 방송 송신 시설 등이 있다. 동북쪽으로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설치된 매봉산 바람의 언덕이 보인다. 고랭지 배추밭으로 유명한 곳이다. 반대쪽으로는 바로 아래 만항재에서 새비재까지 이어지는 운탄고도가 눈에 들어온다. 해발 1000m 안팎의 능선을 따라 연결된 운탄고도 위 능선에는 풍력발전기가 줄을 이어 세워져 있다.
정상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두문동재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면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산다’는 주목(朱木) 군락지다. 군락지에는 살아서 푸른 잎을 자랑하는 나무가 있는가 하면 죽어서 잿빛의 앙상한 가지로만 남아 하늘을 향해 손짓하는 나무도 있다. 그 나무 옆은 연분홍 산철쭉이 절정을 지나고 있었다. 이른 아침 멀리 지평선을 붉게 물들이며 해가 솟아오르자 철쭉은 더욱 화사해진다.

함백산 입구에서 약 2㎞ 떨어져 있는 만항재는 태백 정선 영월의 경계 지점이다. 국내에서 포장도로가 통과하는 고개 중 가장 높다. 만항재는 봄부터 가을까지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나는 천상의 화원이다. 야생화 공원으로 조성돼 있어 꽃 속을 거닐며 편안하게 고원 산책을 즐길 수 있다.
만항재의 경계에 발을 담그고 있는 영월 땅은 상동읍이다. 상동읍 내덕리는 작약꽃 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과거 광업으로 번성했던 상동이 활짝 핀 작약꽃 밭을 매개로 지역 주민과 관광객이 함께 어우러지는 화합의 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지난달 말 축제는 끝났지만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인기를 반영하듯 꽃밭 안에 단종과 정순왕후 내외의 동상도 마련돼 있어 조용히 찾기에 좋다.

태백 황지동 함백산 자락에는 ‘지지리골’이 있다. 이름에 대한 안내판이 길 옆에 서 있다. 옛날 사냥꾼들이 이 골짜기에서 멧돼지를 잡아 구들돌처럼 넓적한 돌 위에 구워 먹었다. 물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 먹는 것을 ‘천렵’이라 하듯 멧돼지를 사냥해 돌판에 구워 먹는 것을 ‘지지리’라고 불렀단다. 이 골짜기에서 지지리를 많이 해먹었다고 해서 지지리골이란 지명이 붙여졌다는 것이다. 이 산골에 살았던 화전민들이 ‘지지리도’ 가난해서 마을 이름이 ‘지지리골’이 됐다는 얘기도 있다.
이 골짜기에 ‘지지리골 도시숲’이라 이름 붙여진 자작나무숲이 있다. 숲은 환경 복원 차원에서 조림됐다. 폐탄광인 함태 광산이 있던 자리에 자작나무를 심어 탄광으로 훼손된 생태를 복원하고, 사람을 불러들이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
이 자작나무숲은 ‘운탄고도1330’의 6길에 자리한다. 운탄고도1330은 영월, 정선, 태백, 삼척을 잇는 폐광지역 걷는 길이다. 그중 6길은 함백산 소공원에서 순직산업전사위령탑까지 약 16㎞ 구간으로, 장쾌한 풍경과 소박한 아름다움이 공존한다.
숲의 테마는 ‘연탄의 고장, 태백’이다. 입구에 영국의 탄광촌 출신 발레리노 얘기를 그린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주인공을 모티브로 만든 조형물 ‘탄광촌 소년상’이 설치돼 있고, 탄광 시절 운행하던 광차가 전시돼 있다.

바로 옆에 목교인 아리아리교가 계곡을 가로지른다. 그 아래로 폐광산의 갱도에서 나오는 침출수가 흐르고 있다. 다리를 건너면 자작나무숲으로 본격 접어든다. 좁은 숲 사이 산책로에는 야자 매트가 깔려 있다. 순백의 터널을 걸으면 나무들 사이에서 피톤치드 향이 가득 퍼지고,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폐 깊숙이 맑은 공기가 스며든다. 숲속에서 포토존과 조형물 등을 만난다. 일주문 등은 ‘사진발’ 잘 받는다는 소문이 나면서 소셜미디어 사진 명소로 떠올랐다.
해발 1100m 오투리조트 시원한 풍광
광부의 탄가루 씻어낸 물닭갈비 별미

함백산 등산로 입구에 10대가량 주차할 공간이 있다. 주목 군락지로 바로 가려면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가는 것이 좋다. 만항재에서 함백산 정상을 오른 뒤 두문동재까지는 약 7.7㎞다. 함백산 일대는 멧돼지가 서식하고 있어 밤에 혼자 산행은 위험하다.
만항재 아래 정선군 고한읍에는 '마을호텔 18번가'가 있고, 민박도 있다. 마을호텔 18번가는 고한18리 주민들이 힘을 합쳐 골목 상점을 마치 하나의 호텔처럼 운영한다. 민박집은 호텔 객실이고, 식당은 호텔 레스토랑, 마을회관은 호텔의 컨벤션 공간처럼 활용된다. 아기자기한 골목도 볼거리다.
태백에서는 함백산 자락 해발 1100m에 자리한 오투리조트가 손에 꼽힌다. 골프장 바로 위에 태백 시내를 굽어볼 수 있는 오투전망대도 마련돼 있다.
태백의 이색 먹거리는 물닭갈비다. 춘천 닭갈비처럼 볶아 먹는 게 아니라 국물이 많은 전골 같은 닭갈비다. 광부들이 지하에서 들이마신 탄가루를 씻어내기 위해 국물 있는 음식을 즐긴 것에서 유래했다. 고원 지대의 서늘한 기후 덕분에 한우도 이름나 있다. 과거 광부들이 임금을 받으면 찾던 실비식당도 시내 곳곳에 남아 있다.
태백·정선·영월=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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