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블루칼라의 귀환, 뉴칼라의 등장

20년 넘은 아파트에 살다 보니, 공구를 잡을 일이 많다. 하지만 몇 가지에선 ‘기술 장벽’에 막힌다. 대표적인 게 배관이다. 두어 달 전부터 심상찮더니 결국 누수 사고가 났다. 겨우 공사 날짜를 잡은 날, 아내가 말했다. “배관 기술자는 인공지능(AI)이나 로봇이 대체하기 어렵지 않을까. 이래서 기술을 배워야 하나 봐.”
현실에선 이미 AI가 직업관을 바꾸고 있다. 육체노동과 정밀한 숙련도를 갖춘 블루칼라가 화려하게 귀환하는 중이다. 채용 플랫폼 진학사 캐치에서 최근에 Z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걸쳐 태어난 세대) 구직자 1800명을 설문했더니, 응답자의 68%가 블루칼라를 긍정 평가했다. 이유로는 연봉이 높아서(66%)가 압도적 1위였다. 이어 기술 보유로 해고 위험이 낮아서(8%), AI 대체 가능성이 작아서(6%) 등을 들었다. 일본에선 사무직에서 현장직, 화이트칼라에서 블루칼라로 이직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도쿄 인력개발업체 레바레지즈가 블루칼라 종사자 724명을 조사해 보니, 5명 중 1명꼴(20.4%)로 화이트칼라 출신이었다.
여기에다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 사이에 자리하는 ‘뉴칼라(New-collar)’가 출현하고 있다. 지식·기술과 인간 고유의 역량을 결합한 새로운 직업군 정도로 정의할 수 있다. 미국에선 변호사, 심리학자, 천문학자 등 전문성을 갖춘 고학력 인재가 긱 워커(Gig Worker, 초단기 근로자)로 주목받는다. 이들은 건당 계약을 맺고 시급 250달러가량을 받으며 AI를 가르친다. 육체노동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고 창의적 문제 해결력을 요구하는 마케팅 매니저, 헬스 서비스 매니저, 아트 디렉터 등도 뉴칼라로 진입 중이다.
다양하게 분출하는 노동시장 지각변동의 종착지가 일자리 멸종일지, 새로운 일자리의 출현일지, 아직은 알기 어렵다. 다만 빠르고 강력하게 진행될 것이고, 안착으로 가는 여정에서 대규모 실업자가 발생할 수 있다. 이들을 지원하는 건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도덕적 의무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찬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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