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산책]혈통보다 오래 남는 것은 붓끝이다
혈통의 이름보다 오래 버틴 것은 손의 기억
흙에서 온 색과 소나무에서 온 먹으로 그려낸 오늘의 풍경
혈통은 사람을 설명하는 데 편리하다. 그러나 때로는 작품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장막이 된다. 김영화 화백 앞에 붙는 말, '단원 김홍도 9대손'도 그렇다. 그 말은 너무 커서, 정작 그의 작업실 한쪽에서 마르는 먹과 분채, 흰 캔버스 위로 막 내려앉은 푸른 선을 가린다.

그는 2층에 살고, 아래층에서 작업하고, 바깥에는 카페와 갤러리를 둔다. 출퇴근이 없다. 그림을 그리러 가는 사람이 아니라, 그림 속에서 사는 사람에 가깝다. 인터뷰 도중에도 그는 자꾸 붓을 잡고 스케치를 이어갔다. 말이 막히는 순간이 아니라, 말이 넘치는 순간에 손이 먼저 움직였다. 작업실에는 완성된 그림보다 아직 시작되지 않은 화면이 더 많아 보였다. 포장된 캔버스, 선반 위의 둥근 판, 마른 물감 자국, 비닐에 싸인 작품들이 서로의 몸을 기대고 있었다. 전시장은 그림을 보여주지만, 작업실은 그림이 왜 생겼는지를 보여준다.
김영화가 자주 꺼낸 말은 'DNA'였다. 위험한 말이다. 예술에서 DNA는 쉽게 신화가 된다. 단원 김홍도, 도요 김윤태, 그리고 김영화. 조선의 풍속화, 도자의 흙, 현대의 먹과 분채. 잘못 쓰면 족보가 작품을 대신한다. 그러나 작가에게 가계는 적어도 하나의 물성으로 남아 있다. 아버지가 흙으로 삶을 남겼다면, 딸은 흙에서 온 색과 소나무에서 온 먹으로 화면을 세운다. 혈통보다 중요한 것은 여기다. 이름이 아니라 재료. 계보가 아니라 손의 습관.
김홍도는 씨름판을 그렸다. 왕이 보지 못한 백성의 몸짓을 그렸다. 김영화는 골프장을 그렸다. 처음엔 이상하게 들린다. 골프와 산수라니. 그러나 그가 본 골프장은 스포츠 시설이 아니었다. 현대인이 실패하고, 다시 치고, 무너지고, 회복하는 작은 세계였다. 공이 해저드에 빠졌을 때 사람은 실력보다 성격을 먼저 드러낸다. 18홀은 풍경이 아니라 태도다. 김홍도의 씨름판에 남성들의 몸과 구경꾼의 표정이 있었다면, 김영화의 골프장에는 오늘 사람들의 습관과 욕망, 그리고 다시 시작하려는 몸의 선이 있다.
그가 골프공 위에 사람 얼굴을 7000개쯤 그렸다는 말은 지나치게 기이해서 오히려 중요하다. 대작보다 이 작은 공들이 작가를 설명한다. 둥근 표면 위에 얼굴을 그리는 일은 정확한 관찰을 요구한다. 곡면은 거짓말을 허락하지 않는다. 조금만 틀어져도 얼굴은 무너진다. 그 손이 무령왕 표준영정으로 갔다. 3년, 12차례 심의, 눈썹과 눈동자와 보이지 않는 손까지 따지는 시간. 그는 그 일을 "도를 닦는 시간"이라고 했다. 과장처럼 들리지만, 전통 초상에서 '혼을 넣는다'는 말은 결국 형태의 끝까지 가본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말이다.

그래서 그의 화면에서 산은 산이면서 산이 아니다. 검은 먹은 산맥처럼 지나가고, 금빛 선은 화면을 가른다. 주황과 붉은색은 하늘이 아니라 기운의 온도처럼 놓인다. 흰 여백은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먹이 아직 닿지 않은 숨의 자리다. 전통 산수의 어휘를 빌렸지만, 화면의 구조는 훨씬 더 빠르고 낯설다. 동양화의 선 위에 서양화의 면을 얹고, 오방색 위에 현대적 직선을 세운다. 이것을 융합이라고 부르면 너무 쉽다. 차라리 충돌에 가깝다. 오래된 선이 오늘의 색을 만나 버티는 장면이다.
김영화는 자신의 시간을 네 가지 색으로 나눴다. 그레이, 그린, 골드, 화이트. 회색은 사람과 인체의 시간, 초록은 골프와 자연의 시간, 금색은 우주와 빛의 시간, 흰색은 마지막에 도착하고 싶은 비움의 시간이다. 작가의 자기 설명은 때로 너무 크다. '생명', '에너지', '우주', 'K-아트' 같은 말들은 쉽게 작품을 덮는다. 하지만 그의 그림 앞에서 그 말들을 조금 걷어내면 남는 것이 있다. 검은 선 하나, 금빛 띠 하나, 푸른 면 하나가 화면을 붙잡는 힘이다. 좋은 그림은 큰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버티는 선이 있으면 된다.
그는 AI 시대의 그림을 묻자, 작가 자신이 먼저 닦여야 한다고 했다. 대답은 다소 종교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손으로 그리는 일이 더 이상 재현의 우위를 주장할 수 없는 시대라면, 남는 것은 결국 태도다. 사물을 닮게 그리는 일은 기계가 더 잘할 수 있다. 사람의 붓이 아직 할 수 있는 일은 닮음 너머의 압력이다. 선이 지나간 뒤 화면에 남는 미세한 떨림, 먹이 번지는 속도, 손이 멈춘 자리의 망설임. 그 흔적은 아직 자동화되지 않았다.

김영화의 작업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그가 전통을 말하면서도 정작 전통적인 주제에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단원 김홍도의 후손이라는 말은 그에게 귀한 자산이지만, 동시에 벗어나야 할 벽이다. 그래서 그는 씨름판 대신 골프장으로 갔다. 도자의 흙 대신 캔버스 위의 분채와 먹을 택했다. 왕의 얼굴을 그린 뒤에는 다시 우주의 빛을 그렸다. 계보를 잇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계보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작업실에서 그는 작게 몸을 숙이고 붓을 들었다. 흰 캔버스 위에 푸른 선이 내려앉았다. 그 장면은 거창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일상적이었다. 그러나 예술이 오래 살아남는 방식은 대개 그런 곳에 있다. 큰 이름이 아니라 작은 반복. 혈통이 아니라 손. 선언이 아니라 선. 김영화의 그림은 그 사이에서 묻는다. 오늘의 산수는 어디에 있는가. 어쩌면 그것은 산속이 아니라 골프장, 카페, 작업실, 낯선 얼굴, 아직 마르지 않은 먹의 가장자리 같은 곳에 있을지 모른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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