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 '공약의 청구서' 담긴 투표함이 열렸다
투표는 끝났지만 지방정치의 숙제는 이제 시작이다. 6·3 민심은 승패보다 공약의 실행가능성을 묻고 있다. 6월 3일 오후 6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가 끝났다. 오후 6시 15분 공개된 지상파 3사 공동 예측조사는 오늘 밤 정치권이 가장 먼저 붙잡을 숫자다. 방송사공동예측조사위원회는 선거 당일전국 595개 투표소 출구조사에 사전투표자 2만8500명 전화조사를 더해 예측조사를 산출한다고밝혔다. 사전투표 비중이 커진 선거에서, 본투표 현장만 보고 민심을 읽을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하지만 이 숫자를 곧바로 정권 지원론이나 견제론으로만 접어 넣으면 지방선거의 절반을 놓친다. 시민은 정당에 표를 던졌지만, 동시에 공약에도 표를 던졌다. 집을 몇 채 짓겠다는 말, 공항과 철도를 놓겠다는 말, 데이터센터를 유치하겠다는 말, 안전도시를 만들겠다는 말은 선거 전에는 약속이었다. 투표함이 닫힌 뒤부터는 청구서가 된다. <기자말>
[김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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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인 3일 서울 잠전초등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잠실본동 제4,5,6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
| ⓒ 연합뉴스 |
예측조사의 숫자보다 먼저 읽어야 할 것
6·3 지방선거의 첫 숫자는 민심의 방향을 비교적 선명하게 가리켰다. 지상파 3사 출구조사 기준으로 전국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11곳, 국민의힘은 1곳에서 우세를 보였고, 4곳은 경합으로 분류됐다. 숫자만 놓고 보면 민주당의 압승, 국민의힘의 참패다. 그러나 이 결과를 단순한 의석수의 증감이나 정당 승패표로만 읽는다면 이번 선거가 던진 메시지의 절반밖에 보지 못한다.
가장 상징적인 곳은 역시 서울이다. 서울시장 선거 출구조사에서 민주당 정원오 후보는 51.4%,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는 46.0%를 기록했다. 서울은 언제나 전국 민심의 압축판이었다. 보수와 중도, 자산시장과 생활정치, 정권 안정론과 견제론이 가장 복잡하게 충돌하는 공간이다. 그런 서울에서 민주당 후보가 오세훈 후보를 앞섰다는 것은 단순한 지방권력 교체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유권자들이 중앙정치의 구호보다 생활 행정의 체감도, 정권 심판론보다 지역 변화의 가능성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경기는 더 분명했다. 경기지사 출구조사에서 민주당 추미애 후보는 60.4%, 국민의힘 양향자 후보는 34.1%를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 최대 광역단체인 경기에서 격차가 크게 벌어진 것은 민주당 지지층의 결집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중도층과 무당층 일부가 야당 견제보다 현 정권과 여당에 힘을 실어주는 쪽으로 이동했거나, 적어도 국민의힘 대안론에 충분한 신뢰를 보내지 않았다는 뜻이다. 서울과 경기의 동시 우세는 수도권 표심이 이번 선거에서 국민의힘에 매우 엄격한 평가를 내렸음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지점은 영남이다. 부산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전재수 후보는 50.2%,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는 48.3%로 초접전 양상을 보였다. 대구시장 선거 역시 국민의힘 추경호 후보 49.9%, 민주당 김부겸 후보 49.1%로 1%포인트 미만의 박빙이었다. 부산과 대구는 오랫동안 보수 정당의 핵심 기반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이번 출구조사에서 두 지역 모두 사실상 경합권에 들어갔다는 것은, 영남 보수의 일방적 결집 구조가 더 이상 자동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경고음이다. 특히 대구에서 김부겸 후보가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였다는 사실은 지역주의의 균열이라기보다, 기존 보수 정치에 대한 피로감과 인물 경쟁력의 재평가가 동시에 작동한 결과로 읽힌다.
따라서 이번 선거의 핵심은 민주당이 몇 곳을 이겼느냐가 아니라, 국민의힘이 왜 자기 텃밭에서도 방어선을 장담하지 못하게 됐느냐다. 출구조사 수치가 보여주는 민심은 냉정하다. 수도권에서는 정권 안정과 생활정치에 대한 기대가 민주당 쪽으로 쏠렸고, 영남에서는 보수 일당 구도에 대한 균열이 확인됐다. 유권자들은 거창한 이념보다 체감 가능한 변화, 낡은 동원보다 설득 가능한 후보, 정당의 간판보다 지역의 미래를 기준으로 표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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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선대위 지도부가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개표종합상황실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
| ⓒ 공동취재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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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동혁 국민의힘 상임선거대책위원장등 지도부가 3일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 마련된 개표상황실에서 방송사 출구조사 발표 뒤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
| ⓒ 공동취재사진 |
서울시장 선거의 핵심 쟁점은 집과 길이었다. 주요 후보들은 2031년까지 30만 호 이상 주택 공급을 약속했다. 정원오 후보는 정비사업 기간 단축을 통해 36만 호 착공을 말했고, 오세훈 후보는 인허가와 규제 개선을 통해 31만 호 공급 물량을 확보하겠다고 했다.
두 후보 모두 청년 주거와 교통사각지대 해소를 앞세웠다. 유권자가 이 공약에 귀를 기울인 이유는 단순하다. 집값과 전세, 출퇴근 시간은 이념이 아니라 매일 겪는 생활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30만 호'라는 숫자는 질문의 시작일 뿐이다. 어디에 지을 것인가.
정비사업 속도를 높이면 세입자 보호는 어떻게 할 것인가. 철도와 도로를 늘리면 공사 기간의 안전과 소음, 지하 공간의 위험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집과 길은 개발 공약이면서 동시에 안전 공약이다.
공항·철도·산단, 지방경제의 약속어음인가
비수도권에서는 대형 사회간접자본 공약이 선거판을 달궜다. 부산은 가덕도신공항과 항공물류 허브를, 대구·경북은 통합신공항과 후적지 개발을, 여러 지역은 철도 지하화와 광역철도, 트램, 산업단지 조성을 내세웠다. 지역에서 이런 공약이 힘을 얻는 이유는 분명하다. 청년이 떠나고 상권이 비고 대학이 줄어드는 현실 앞에서, 주민들은 '큰 판'의 변화를 원한다.
그러나 대형 SOC 공약은 늘 같은 벽을 만난다. 돈이다. 철도 지하화는 상부 개발이익으로 사업비를 마련하겠다는 구상이 많고, 신공항은 이전 부지와 배후단지 개발을 함께 묶어 설명된다. 부동산경기와 민자 유치가 흔들리면 공약은 장기 표류로 바뀐다. 선거 때마다 반복된 장밋빛 조감도가 이번에도 통하려면, 당선인은 착공식 사진보다 먼저 재원표를 내놓아야 한다. 어느 예산으로, 어느 기관이, 어느 위험을 감수할지 공개하지 않는 SOC는 지방 창생이 아니라 다음 선거로 미뤄지는 약속어음에 가깝다.
AI 수도가 너무 많은 나라, 데이터센터 공약의 빈칸
이번 지방선거의 새로운 풍경은 AI였다.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 후보들은 AI 수도, AI 허브,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 반도체 클러스터를 경쟁적으로 말했다.
그런데 AI 공약의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빈칸이었다. 녹색전환연구소·참여연대·환경정의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개 공약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광역·기초단체장 후보 624명 중 77명, 12.3%가 데이터센터 유치 공약을 냈다. 반면 재생에너지 공급 대책을 함께 제시한 후보는 4명에 그쳤다.
데이터센터는 전기와 물을 많이 쓴다. 지역 전력망이 버틸 수 있는지, 냉각수는 어디서 확보할지, 주민에게 어떤 방식으로 설명하고 동의를 받을지, 실제 고용은 얼마나 생길지 따져야 한다. '데이터센터가 오면 청년 일자리가 생긴다'는 말은 반만 맞다. 서버가 들어온다고 지역 청년의 일자리가 자동으로 생기지는 않는다. 지방대학의 교육과정, 지역 중소기업의 AI 활용, 공공조달, 직업전환 훈련이 함께 움직여야 비로소 지역경제의 일자리로 이어진다.
올해 1월 22일부터 인공지능기본법과 디지털포용법이 시행됐다. 법은 이미 지방정부에 숙제를 던졌다. AI를 산업 유치 구호로만 쓸 것이 아니라, 주민의 권리와 안전, 접근성을 함께 설계하라는 뜻이다. 복지 신청에서 배제되는 고령층을 누가 찾아갈지, 재난 예측 데이터가 위험 신호를 냈을 때 누가 공사를 멈출지, 데이터센터 입지 결정 과정에서 주민 의견을 어디에 기록할지 정하는 일이 지방정부의 몫으로 넘어왔다.
선거 막판을 흔든 안전, 사고는 이미 투표용지에 들어와 있었다
이번 선거에서 안전은 뒤늦게 끼어든 의제가 아니었다. 투표일을 이틀 앞둔 6월 1일, 대전 유성구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공장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해 직원 5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5월 26일에는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서소문 고가차도 철거 현장에서 구조물이 무너져 3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 이 고가차도는 안전등급 D 판정을 받아 철거 중이었고, 사고 당시에는 안전점검이 진행되고 있었다.
안전을 확인하러 간 사람들이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은 선거 막판의 모든 구호를 무겁게 만들었다. 안전은 사고 뒤의 사과문이 아니라 사고 전의 공개, 멈춤, 재검증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사회가 되지 않으려면, 지방정부의 안전행정은 선거용 문구가 아니라 조직과 예산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GTX-A 삼성역 복합환승센터 철근 누락도 같은 질문을 남겼다. 보도에 따르면 전체 기둥 218개 가운데 80개에서 철근 누락이 확인됐고, 이 중 50개는 설계 기준에 미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누락규모는 약 178톤에 달했다. 더 큰 문제는 철근 누락 같은 중대한 구조 부실이 발견된 단계에서 발주처나 관계기관에 즉시 보고해야 한다는 명확한 규정이 사실상 공백이라는 지적이다. 이쯤 되면 안전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문제다.
공약의 시간은 끝났고, 검증의 시간이 왔다
6·3 지방선거의 심층해부는 개표방송의 색깔표에서 끝나면 안 된다. 내일 아침 시민은 다시 지하철을 타고, 전세 대출 이자를 계산하고, 부모 돌봄을 걱정하고, 비 예보를 확인하고, AI가 바꿀 일터를 불안하게 바라본다. 이 평범한 하루를 지키지 못하는 지방정부라면 어떤 거창한 공약도 오래가지 못한다. 지방정부의 첫 일은 주민을 살아 있게 하고, 일할 수 있게 하며, 떠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만드는 일이다.
선거운동 기간 후보들은 저마다 더 나은 도시, 더 강한 지역, 더 안전한 내일을 약속했다. 이제 그 말은 행정문서가 되어야 한다. AI 데이터센터는 전력·용수·주민동의표를 붙여야 하고, 신공항과 철도지하화는 재원표를 붙여야 하며, 안전 공약은 위험 공개와 작업중지 권한을 붙여야 한다. 그래야 공약이 구호에서 제도로 건너간다.
투표함은 닫혔다. 그러나 공약의 속살은 이제 열려야 한다. 오늘 밤 당선 예측 화면에는 승자와 패자가 갈리겠지만, 시민의 삶은 화면 밖에서 계속된다. 6·3 지방선거가 정당의 승패로만 기록될지, 지역 주민의 일상과 안전을 바꾼 선거로 남을지는 오늘 밤 이후 4년의 행정이 결정한다. 민심은 표로 말했고, 이제 지방정부가 답할 차례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영근은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겸 인문학과동아시아문화산업과정 교수이며, 사회재난안전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도쿄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 박사를 취득한 후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및 계명대학교 일본학과 조교수를 역임하였다. "AI시대의 안전경제학: 글로벌 불확실성 및 위기관리" 및 "북핵 리스크 관리와 국제안보레짐의 변용", 『포스트 제국주의』(공저), 『한일관계사 1965-2015. II: 경제』(공저), 『한일 관계의 긴장과 화해』(편저) 등 다수의 논문과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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