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메모리 2배”…5년 걸리는 증설, 그새 더 뛰는 HBM 몸값

대만을 찾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앞으로 5년 안에 전체 웨이퍼 생산능력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2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컴퓨텍스 2026’ SK하이닉스 부스에서 취재진과 만나 “새 메모리 팹을 짓는 데는 막대한 투자와 최소 3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메모리 병목 현상은 2030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SK그룹이 생산능력 확대 목표를 구체적으로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SK하이닉스는 현재 청주 M15X·P&T7,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미국 어드밴스드 패키징 공장 등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며 생산능력 확충에 나서고 있다. 업계에서는 최 회장의 발언이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메모리 수요 급증에 선제 대응하는 동시에 삼성전자와의 격차를 좁히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D램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 38.5%, SK하이닉스 28.8%로 집계됐다.
최 회장은 급등하는 메모리 가격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어서 내가 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면서도 “가격이 갑자기 급등하는 현상은 AI 산업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해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생산능력 확대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AI 데이터센터와 AI 팩토리는 자금·에너지·그래픽처리장치(GPU)·메모리 등 다양한 병목에 직면해 있다”며 “장비와 전력, 용수까지 확보해야 하는 만큼 메모리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생산능력을 적기에 늘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날 최 회장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부스를 둘러보며 주요 전시 제품을 살폈다. 황 CEO는 SK하이닉스가 준비한 HBM4E(7세대 고대역폭메모리) 실물 웨이퍼에 ‘Please Make More(더 만들어 달라)’는 위트 있는 문구를 남겼다.
이처럼 메모리 공급 부족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HBM이 끌고 범용 D램이 미는 ‘쌍끌이’ 가격 상승 구조가 한층 강화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이날 보고서에서 “2027년 HBM 계약 가격이 몇 배로 급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렌드포스는 전체 D램 웨이퍼 투입량에서 HBM 비중이 지난해 18%에서 올해 22%, 2027년에는 30%까지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플랫폼 ‘베라 루빈’과 구글 텐서처리장치(TPU) 등 주문형 반도체(ASIC) 확산으로 HBM이 AI 반도체의 핵심 부품으로 자리 잡으면서 공급업체들도 생산 확대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HBM 생산 확대는 범용 D램 공급 감소로 이어진다. HBM은 칩 크기가 크고 수율도 낮아 동일한 웨이퍼에서 생산할 수 있는 칩 수가 적기 때문이다. 트렌드포스는 “HBM 세대가 진화할수록 베이스 다이(base die·HBM의 아랫부분) 크기가 커지기 때문에 범용 D램 생산 여력은 더욱 줄어들 것”이라며 “공급업체들의 가격 협상력이 한층 강화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영근 기자 lee.youngk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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