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에 수갑 채운 英 경찰…‘백인 역차별’ 정쟁으로 번졌다

한지혜 2026. 6. 3.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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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흉기에 찔려 숨진 백인 대학생이 출동 경찰에 의해 가해자로 오인돼 수갑까지 채워진 사실이 드러나면서 인종차별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강경 우파 진영은 이를 “백인 역차별”의 사례라고 주장하며 공세를 강화했고, 사건이 발생한 사우샘프턴에서는 수백 명이 항의 시위를 벌여 일부가 경찰과 충돌했다.

2일(현지시간) 영국 남부 사우샘프턴의 중앙 경찰서 앞에서 사람들이 피해자 헨리 노박의 사진과 피 묻은 수갑을 들고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3일(현지시간) BBC 등에 따르면 논란은 전날 공개된 경찰 보디캠 영상에서 촉발됐다. 영상에는 지난해 12월 흉기에 찔린 헨리 노박(18)이 “숨을 쉴 수 없다”, “칼에 찔렸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모습이 담겼다. 그러나 경찰은 “찔린 것 같지 않은데”라고 응답했고, 노박은 약 1분간 수갑이 채워진 상태로 있었다. 이후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도 폭행 혐의 체포 고지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노박을 찌른 인도계 시크교도 비크럼 디그와(23)는 사건 당시 자신이 인종차별 공격의 피해자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디그와는 노박을 21㎝ 길이의 흉기로 살해한 혐의로 전날 최소 21년형의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체포된 범인 비크럼 디그와. AFP=연합뉴스


영상 공개 이후 정치권 공방은 즉시 격화됐다. 여론조사 선두를 달리며 차기 총리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강경 우파 성향의 나이절 패라지 개혁당 대표는 이날 영상 성명에서 “거짓 인종차별 주장이 죽어가는 사람보다 더 중요하게 취급됐다”며 경찰이 인종 문제를 지나치게 의식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사건이 “백인의 권리와 특권이 소수민족의 권리와 특권보다 덜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중적 문화(two-tired culture)”를 보여준다고도 비판했다.

특히 패라지는 사건을 2020년 미국에서 발생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과 비교하며 “백인의 생명도 흑인의 생명만큼 중요하다”고 말했다. 플로이드 사건은 국제적 분노를 불러일으키며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 확산의 계기가 됐다.

2020년 11월 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의 백악관 인근에 조 바이든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를 지지하는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BLM)’ 시위대가 자리했다. AFP=연합뉴스


같은 날 사우샘프턴에서는 경찰 대응을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수백명의 참가자들은 노박이 반복했던 “숨을 쉴 수 없다”를 외치며 경찰서를 향해 행진했고, 현장에서는 경찰을 향해 벽돌과 전동 스쿠터 등이 투척되며 충돌이 벌어졌다. 경찰은 폭동 진압 장비를 동원해 대응했다.

2일(현지시간) 영국 사우샘프턴 경찰서 앞에서 사람들이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2일(현지시간) 영국 사우샘프턴에서 열린 시위에서 경찰관들이 충돌에 동원됐다. 로이터=연합뉴스


영국 정부는 강경 우파 진영의 선동을 경계했다. 샤바나 마무드 내무장관은 이날 하원연설에서 “허위정보와 선동적 논평이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면서 야당 의원들이 이 사건을 정치화하는 것을 경고했다. “아들의 죽음이 분열과 증오를 만드는 데 이용돼선 안 된다”는 노박 유족 측 발언도 전했다.

실제 사건과 무관한 경찰관이 온라인에서 잘못 지목돼 살해 협박을 받고 거주지를 옮긴 것으로 전해졌다. 키어 스타머 총리는 “인종차별 주장이 의사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규명돼야 한다”며 독립경찰행위조사국(IOPC)을 통한 광범위한 조사를 약속했다.

현재 IOPC는 경찰이 노박에게 수갑을 채운 경위와 가해자·피해자 판단 과정, 응급처치의 적절성 등 초동 대응 전반을 조사하고 있다. 조사 결과는 향후 3개월 내 발표될 전망이다.

한지혜 기자 han.jee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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