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총통이 트럼프에게 'TSMC 창업자 자서전' 건네려 한 이유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임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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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일(현지시간) 정리원 대만 국민당 주석의 미국 방문을 앞둔 기자회견 현장에 국민당 깃발과 대만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대만 제1당이자 제1야당인 국민당의 정리원 주석은 미국으로 떠나기 전 "미국으로부터 더 깊은 신뢰를 얻고 싶다"고 밝혔다. |
| ⓒ AFP 연합뉴스 |
미국도 변수가 되고 있다. 대만 안보의 핵심 후원자였던 미국이 트럼프식 거래 외교 속에서는 언제든 대중 협상의 한 항목처럼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대만 무기 판매 문제를 논의한 뒤에도 명확한 결정을 내놓지 않았다.
대만은 약 140억 달러(21조 3000억 원) 규모의 미국 무기 판매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이 결정이 순수한 안보 판단이 아니라 미중 협상의 흐름 속에서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대만의 처지를 말해준다. 대만은 지금 중국의 압박과 미국의 불확실성이라는 두 겹의 위기 앞에 서 있다.
그러나 대만은 강대국의 장부에 적힌 거래 항목이 아니다. 트럼프는 대만이 미국의 반도체 산업을 가져갔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대만의 반도체는 단순한 흥정거리가 아니다. 그것은 미국과 일본, 유럽과 한국의 첨단산업이 함께 기대고 있는 세계 공급망의 핵심이다.
대만은 이 점을 알고 있다. 라이칭더 대만 총통이 TSMC 창업자 모리스 창의 자서전을 트럼프에게 전달하려 한 것도, 대만 반도체 산업이 미국의 것을 빼앗은 결과가 아니라 함께 얽힌 산업 질서의 일부라는 점을 설명하려는 행동이었다. 대만은 미국에 보호만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대만의 안정이 미국의 이익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설득하려 하고 있다.
대만 문제는 미중 관계의 부속물이 아니다. 반도체 공급망, 서태평양 해상 질서, 중국과 다른 민주주의 중국어권 사회의 존재가 그 안에 함께 놓여 있다. 대만이 흔들리면 대만만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 일본, 유럽과 한국의 산업과 안보도 함께 흔들린다.
그래서 대만의 문제는 단순히 누가 대만을 지켜줄 것인가에 그치지 않는다. 더 중요한 질문은 강대국이 대만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느냐이다. 최근의 전쟁들은 압도적 힘을 가진 나라들도 원하는 결말을 쉽게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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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일(현지시간) 러시아의 공습으로 인해 우크라이나 키이우 하늘 위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
| ⓒ AP 연합뉴스 |
최근 전황도 단순한 러시아의 완승과는 거리가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의 거의 5분의 1을 통제하고 있지만, 진격 속도는 둔화됐고 우크라이나도 일부 지역을 되찾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겨울이 오기 전 평화협상에서 진전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러시아가 새 대규모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공개된 러시아 쪽 전후 여론 관리 문건은 이 상황의 의미를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 문건은 키이우 점령도 없고, 우크라이나의 항복문서도 없고, 젤렌스키가 그대로 권좌에 남아 있을 가능성까지 전제한다. 그러면서도 제한적 평화 합의와 점령지 확보를 "푸틴의 위대한 승리"로 설명할 논리를 마련한다.
이것은 러시아가 패배를 인정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강대국도 전쟁의 결말을 자기 뜻대로 만들기 어렵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영토를 차지하는 것과 상대의 항복을 받아내는 것, 전장을 버티는 것과 전후 질서를 안정시키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다.
미국도 이란 앞에서 비슷한 한계를 마주했다. 미국은 이란의 군사시설을 타격할 수 있었고, 실제로 큰 피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타격은 전쟁을 끝내지 못했고, 결국 미국은 휴전 연장과 협상의 자리로 돌아왔다.
문제는 그 협상이 전쟁 전보다 쉬워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미국과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핵물질, 제재 해제, 동결 자금 문제를 놓고 여전히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트럼프는 합의가 거의 됐다고 말했지만, 곧이어 해협 재개방과 핵물질 문제에서 더 강한 문구를 요구하며 협상은 다시 흔들렸다.
휴전은 이란에도 시간을 주었다. 위성사진 분석 보도에 따르면, 이란은 휴전 기간 동안 미군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막혔던 지하 미사일 시설 출입구 상당수를 다시 열기 시작했다. 공습이 이란의 미사일 능력을 영구적으로 제거한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 묶어둔 데 그쳤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전쟁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문제들이 전쟁 이후 협상 의제로 다시 쌓였다.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와 재개방, 에너지 가격 불안, 미사일 시설 복구, 핵물질 처리, 제재 완화의 순서가 모두 새 부담이 됐다. 미국이 얻은 것은 전술적 타격이었지만, 미국이 원한 것은 이란의 정치적 굴복이었다. 그 차이가 이 전쟁을 성공이라고 부르기 어렵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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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월 14일(현지시간) 대만 타이베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베이징 회담 장면이 방영되는 텔레비전 화면 옆으로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
| ⓒ EPA 연합뉴스 |
영국의 국제문제전략연구소(IISS)는 대만을 둘러싼 미중 충돌이 핵 긴장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양측이 상대의 지휘·통신 시설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고, 그런 공격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에 대한 안전장치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대만 전쟁은 중국과 대만만의 전쟁으로 머물기 어렵다.
봉쇄도 간단한 선택지가 아니다. 미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대만 봉쇄 모의실험은 중국의 봉쇄가 세계 무역을 흔들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해상 전투로 번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 피해는 대만과 중국에만 머물지 않고 미국, 일본, 세계 반도체 공급망으로 번질 수 있다.
결국 중국의 고민은 공격 능력의 유무가 아니다. 대만을 폐허로 만들면 통일의 의미가 사라지고, 피해를 줄이려 하면 대만의 저항과 미국, 일본의 개입 가능성을 감수해야 한다. 중국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은 '대만을 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친 뒤 원하는 상태로 끝낼 수 있느냐'다.
대만이 배워야 할 것은 강대국을 믿는 법이 아니라, 강대국이 자신을 함부로 거래하지 못하게 만드는 법이다. 미국의 지원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지원이 언제나 대만의 뜻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믿는 순간, 대만의 안보는 남의 계산에 맡겨진다.
대만의 길은 세 가지다. 첫째, 중국이 짧은 시간 안에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도록 방어 비용을 높여야 한다. 둘째, 대만이 흔들리면 세계 반도체 공급망과 해상 질서가 함께 흔들린다는 사실을 더 단단히 만들어야 한다. 셋째, 내부 민주주의의 신뢰를 지켜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군비 확장의 문제가 아니다. 대만은 미국에 보호를 요청하는 동시에, 미국이 대만을 지키는 것이 미국 자신의 이익이라는 사실을 계속 입증해야 한다. 중국을 향해서는 공격의 비용을 높이고, 국제사회에는 대만의 안정이 공동의 이익이라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이 질문은 한국에도 낯설지 않다. 한국은 대만과 다르다. 국방력도 더 강하고, 미국과 공식 동맹을 맺고 있으며, 국제적 지위도 훨씬 안정적이다. 그러나 방위비, 주한미군, 반도체, 조선, 배터리, 대중 전략이 모두 거래의 언어로 바뀔 수 있는 시대라면, 한국도 같은 질문을 피할 수 없다.
동맹은 감정이 아니라 필요의 관계다. 미국이 대만을 지키는 이유가 단지 약속 때문이라면 그 약속은 거래의 언어 앞에서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대만이 무너지면 미국의 산업, 일본의 안보, 세계 반도체 질서가 함께 흔들린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때 대만은 보호받는 대상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할 조건이 된다.
대만의 위기는 여기서 다시 길이 된다. 강한 나라는 약한 나라를 압박할 수 있지만, 언제나 원하는 결말을 얻는 것은 아니다. 현대전의 교훈은 이 단순한 사실에 있다. 대만이 살아남는 길은 강대국의 선의를 기다리는 데 있지 않다. 강대국도 대만을 함부로 사고팔 수 없게 만드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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