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증맞은 고양이발 호랑이 상, 꼬리 연출도 기가 막히다

정재학 2026. 6. 3.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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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아리의 거룩한 장도] 금산천내리용호석과 진악산 물굴

박물관 학예연구사이자 20여 년 동안 문화유산을 연구하고 탐방해 온 문화유산 전문 여행 작가입니다. '거룩한 장도, 한국 호랑이를 찾아서'라는 주제를 지속적으로 다룹니다. <기자말>

[정재학 기자]

▲ 금산천내리용호석의 꼬리 금산에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호랑이 꼬리가 있다.
ⓒ 정재학
현실 세계에서 호랑이의 맞수는 사자라지만 동양에서 호랑이의 진정한 맞수는 용(龍)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용호상박(龍虎相搏)'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용과 호랑이가 서로 맞붙어 싸울 정도로 실력이 막상막하인 두 강자의 대결을 가리킨다. 이는 중국 삼국시대 조조와 마초의 싸움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용과 호랑이의 상징은 그 역사가 더 유구하다. 1987년 중국 하남성 복양 서수파에서 한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놀라운 장면이 보고 되었다. 인골을 중심으로 양쪽에 조개껍질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그 형상이 좌측에는 용이, 우측에는 호랑이를 표현하고 있는 게 아닌가. 조성 시기가 대략 6400년 전이라고 하니 이미 '좌청룡 우백호'라는 관념이 있었다는 걸 입증하고 있었다. 현실 속의 절대강자 호랑이와 가상으로 만든 영물인 용이 맞서는 셈이니, 이 어찌 멋진 상상력이 아닌가.

이런 관념이 우리에게도 오래전부터 회자되어 다양한 문화유산을 만들었는데, 아주 흥미로운 용호상박의 현장이 충남 금산에 있다고 해서 지난 5월 25일 탐방길을 나섰다.

호랑이 형상의 조각상, 호석
▲ 금산천내리용호석 전경 금강변 제원대교 가까운 곳에 용석이, 이곳에서 230미터 더 떨어진 천내들 안쪽에 호석이 자리하고 있다.
ⓒ 정재학
첫 번째 목적지는 금산천내리용호석이었다. 이곳은 금강이 전북 장수 수분리 뜬봉샘에서 발원하여 금산 적벽의 층암절벽 사이를 뚫고 흐르는 적벽강을 지나 봉황천과 천내강이 만나는 넓은 충적 들판을 휘감아 흐르는 지형으로 바로 제원면 천내리(川內里) 천내들이다. 이곳 금강변 제원대교 가까운 곳에 용 형상의 조각상인 용석(龍石)이, 이곳에서 230미터 더 떨어져 천내들 안쪽에 호랑이 형상의 조각상인 호석(虎石)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조성 내력이 참 재미있다. 고려말 홍건적의 난으로 개경이 함락되자 공민왕은 안동까지 피난길을 떠났고, 그 와중에 풍수지리에 밝은 지관에게 자신의 능묘 자리를 찾도록 명하였다. 이에 지관은 금산 동쪽 20리 지점 태백산 지맥에 '평사낙안부사도강(平沙樂雁浮莎渡江)'의 명당이 있다고 하였으며, 왕은 그곳을 자신의 능소로 낙점하고 석물을 제작하도록 했다. 하지만 그 후 난이 평정되어 개경으로 환도하였고 이를 잊고 방치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는 사연이란다.
▲ 용석 제원대교 근처에 있는 용석은 높이 138cm의 조각상이다.
ⓒ 정재학
▲ 용석 세부 여의주를 움켜쥔 입 양편으로 아가미와 수염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다.
ⓒ 정재학
하여튼, 본격적으로 용석을 살펴보면 70×80cm의 부정형 받침 위에 높이 138cm로 우뚝 서 있었다. 소용돌이 모양의 과형(過形) 돌기 사이로 꿈틀거리는 몸체가 생동감 있게 조각되었고, 여의주를 움켜쥔 입 양편에는 아가미와 수염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었다. 비록 크기는 아담했지만 그 표정만큼은 강물을 노려볼 정도로 위압적이었다. 용이 물의 신이자 비를 관장하는 존재이니 강변 가까이에 자리 잡은 이유이다.
▲ 호석 전경 호석은 높이 140cm 화강암 호랑이로 몸체는 서쪽을 향하고 고개는 북쪽으로 돌리고 있다.
ⓒ 정재학
▲ 호석의 입구 주름 호석은 입을 크게 벌려 주위로 3중 주름을 표현했는데 으르렁거리기보다 해맑게 웃는 표정이다.
ⓒ 정재학
▲ 호석의 혀를 날름 내민 표현 호석이 입을 크게 벌리고 혀를 날름 내미는 표현이 재미있다.
ⓒ 정재학
다음은 호석이다. 높이 140cm의 화강암 호랑이는 110×65cm의 장방형 받침 위에 앞발을 세우고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몸체는 서쪽을 향하고 있으나 고개는 북쪽으로 비틀었다. 산의 정기가 모이는 내륙에 호석을 놓은 것은, 백호는 산줄기의 정기를 등에 업고 들판을 수호해야 한다는 풍수 논리에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눈앞의 호석은 어딘가 무섭지 않았다. 짧고 둥글넓적하게 조각된 귀, 입을 크게 벌려 주위로 생긴 3중 주름, 혀를 날름 내민 표현 등은 으르렁거리기보다 해맑게 웃는 표정에 가까웠다. 또한 발은 어떤가. 위협적이라기보다는 영락없는 앙증맞은 고양이발이었다.
▲ 호석의 꼬리 엉덩이에서 시작한 꼬리는 몸을 감싸고 올라와 왼쪽 앞발까지 감싸고 있다.
ⓒ 정재학
▲ 호석의 꼬리 끝 왼쪽 앞발을 감싼 꼬리는 끝 부분도 한번 더 꼬아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꼬리 표현을 완성하고 있다.
ⓒ 정재학
하지만 정말 기막힌 장면은 꼬리의 연출이었다. 엉덩이에서 시작한 꼬리는 몸을 감싼 것도 모자란 듯 급기야 왼쪽 앞발을 감싸고 있는 게 아닌가. 또 꼬리 끝 처리는 어떤가. 한번 더 꼬아 놓은 모습이 사랑스럽지 않은가. 감히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호랑이 꼬리라고 말하고 싶다.

고양이의 '번팅(bunting)'이라는 것이 있다. 친밀감과 애정을 표현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보통 헤드번팅으로 머리를 사람들 다리 사이로 비벼댄다. 그런데 이 호랑이 보소. 스스로 셀프번팅을 하는 게 아닌가. 소위 꼬리번팅이 아닐런지. 이 기상천외한 장면 앞에서 한참을 웃었다.

금산 진악산 물굴봉
▲ 금산 진악산 충남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으로 금산 사람들은 이 산을 오랫동안 고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여겼다.
ⓒ 정재학
천내리를 뒤로하고 두 번째 여정인 금산의 진산(鎭山)인 진악산(進樂山)으로 향했다. 해발 732m로 충청남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으로 금산 사람들은 이 산을 오랫동안 고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여겨왔다고 한다.
▲ 개삼저수지 아름다운 수변 풍경을 자랑하고 있다.
ⓒ 정재학
시작은 금산 인삼의 발원지로 알려진 개삼터 공원이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수변 풍경을 자랑하는 개삼저수지를 지날 때만 해도 앞으로 닥칠 역경을 미처 알지 못했다. 개삼저수지 게시판에 적힌 정보로는 물굴봉까지 1.7km 구간이었다. 보통 산행코스려니 생각하고 가볍게 오른 길이었다. 그리고 시작은 아주 평범한 숲길로 이어져 더욱 그러했다.
▲ 물굴봉 빨간 밧줄 구간 물굴봉 가는 길은 파란 밧줄과 빨간 밧줄 구간이 나오는데 가파르고 암석으로 구성되어 힘든 구간이다.
ⓒ 정재학
그런데 점점 가팔라지더니 공포의 계단길이 이어졌다. 그나마 여기도 비교적 수월한 편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밧줄 구간이 등장했다. 처음에는 파란 밧줄이길래 여기는 밧줄을 파란색으로 쓴다고 착각했다. 그런데 조금 더 올라가니 본격적으로 빨간 밧줄이 나오는 게 아닌가.
아하! 더 위험한 경고의 색으로 구분했구나. 그런데 계속해서 빨간 밧줄을 잡고 곡예하듯이 올라가야 했다. 이게 뭐야. 이런 곳에 물굴이 있다고. 되돌아가기엔 너무 늦었고 갈수록 힘이 부쳐 후회막심했다.
▲ 용머리굴 용머리 바위라고 하지만 뿔과 여의주가 없어 이무기처럼 보인다.
ⓒ 정재학
겨우겨우 어떻게 물굴봉과 물굴의 갈림길까지 왔다. 여기서 물굴봉까지는 400m, 물굴까지는 200m였다. 목적지는 물굴이니 200m를 더 가야 했다. 이 또한 길이 험하기는 매한가지였다. 하여튼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곳이 용머리굴이었다.
안에는 회색질의 용머리가 입을 떡 벌리고 있고 용머리 양쪽으로 좁은 틈이 있는데 왼쪽은 막혔고 오른쪽은 끝을 알 수 없는 좁다란 동굴이 남쪽으로 뻗어 있었다. 그리고 앞쪽에 옹달샘처럼 맑은 물이 고여 있었다. 용머리 바위라고 하지만 뿔과 여의주가 없기에 이무기처럼 보인다고 한다.
▲ 진악산 물굴 호랑이 머리를 집어 넣어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 정재학
거기서 조금 더 철제 계단을 올라가야 마침내 물굴에 다다를 수 있었다. 물굴은 아랫물굴과 윗물굴로 나눠져 있는데, 아랫물굴은 예로부터 기도처로 쓰이던 아담한 석굴이고, 더 위로 오르면 비교적 규모가 큰 윗물굴, 곧 관음굴이 나타난다.

여기에는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중 <산천> 조에 '물소리가 요란하여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세상에 전하는 이야기로는 용이 사는 곳이라 하는데 날이 가물 때 비가 오기를 빌면 영험이 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그런데 여기에 온 진짜 이유는 용 이야기 때문만은 아니다.

바로 금산에 가뭄이 나면 호랑이 머리를 이 굴에 넣었다는 침호두(沈虎頭) 기우제 때문이었다. 호랑이 머리를 굴에 넣으면 용이 화가 나서 천둥과 번개, 구름을 불러 비를 내렸다는 전설로 가뭄이 오면 금산군수가 직접 관음굴에 가서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용과 호랑이의 관계를 활용한 이 기막힌 상상력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 험한 길을 마다하고 기도하러 온다니 뭔들 안 들어줄까. 그 정성이 눈물겹다.

그래서 미리 준비한 음료수를 꺼냈다. 오는 내내 갈증으로 마실 유혹도 끝내 물리치고 지켜온 음료수다. 세 번에 걸쳐 고수레를 외치며 사방에 뿌렸다. 그랬더니 날씨가 화창했는데도 불구하고 입구 바위틈을 타고 물방울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전 세계의 전쟁이 종식되고 평화의 빗줄기가 터져 뜨거워진 세상의 가뭄이 해갈되길 기원했다.

하산 길에 들어보니 물소리가 유난히 우렁차고 요란했다. 계곡을 따라 흘러내리는 물은 개삼저수지로, 다시 금강으로 흘러들 것이다. 그 물길 끝 어딘가에 용호석이 서 있겠지. 용은 물을 거느리고, 호랑이는 산을 지킨다. 둘은 서로 다른 세계에서 왔지만, 늘 함께 어우러져 나아갔다.

오늘의 여정은 그 이치를 몸으로 증명하는 길이었다. 금강변 천내리에서 용과 호랑이를 돌로 만났고, 진악산 물굴에서 치열한 용과 호랑이의 울음소리를 가슴으로 들었다. 고려의 왕이 능소로 낙점했다 버리고 간 자리에 석수로 남아 마을을 지켰고, 조선 기우제의 성소가 참배객을 맞는다.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용과 호랑이는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용과 호랑이는 오늘도 치열하게 상박(相搏)하고 있지만 또한 서로 각자 맡은 영역을, 그리고 이 땅을 나란히 지키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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