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증맞은 고양이발 호랑이 상, 꼬리 연출도 기가 막히다
박물관 학예연구사이자 20여 년 동안 문화유산을 연구하고 탐방해 온 문화유산 전문 여행 작가입니다. '거룩한 장도, 한국 호랑이를 찾아서'라는 주제를 지속적으로 다룹니다. <기자말>
[정재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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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산천내리용호석의 꼬리 금산에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호랑이 꼬리가 있다. |
| ⓒ 정재학 |
하지만 용과 호랑이의 상징은 그 역사가 더 유구하다. 1987년 중국 하남성 복양 서수파에서 한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놀라운 장면이 보고 되었다. 인골을 중심으로 양쪽에 조개껍질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그 형상이 좌측에는 용이, 우측에는 호랑이를 표현하고 있는 게 아닌가. 조성 시기가 대략 6400년 전이라고 하니 이미 '좌청룡 우백호'라는 관념이 있었다는 걸 입증하고 있었다. 현실 속의 절대강자 호랑이와 가상으로 만든 영물인 용이 맞서는 셈이니, 이 어찌 멋진 상상력이 아닌가.
이런 관념이 우리에게도 오래전부터 회자되어 다양한 문화유산을 만들었는데, 아주 흥미로운 용호상박의 현장이 충남 금산에 있다고 해서 지난 5월 25일 탐방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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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산천내리용호석 전경 금강변 제원대교 가까운 곳에 용석이, 이곳에서 230미터 더 떨어진 천내들 안쪽에 호석이 자리하고 있다. |
| ⓒ 정재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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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석 제원대교 근처에 있는 용석은 높이 138cm의 조각상이다. |
| ⓒ 정재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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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석 세부 여의주를 움켜쥔 입 양편으로 아가미와 수염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다. |
| ⓒ 정재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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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석 전경 호석은 높이 140cm 화강암 호랑이로 몸체는 서쪽을 향하고 고개는 북쪽으로 돌리고 있다. |
| ⓒ 정재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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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석의 입구 주름 호석은 입을 크게 벌려 주위로 3중 주름을 표현했는데 으르렁거리기보다 해맑게 웃는 표정이다. |
| ⓒ 정재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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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석의 혀를 날름 내민 표현 호석이 입을 크게 벌리고 혀를 날름 내미는 표현이 재미있다. |
| ⓒ 정재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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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석의 꼬리 엉덩이에서 시작한 꼬리는 몸을 감싸고 올라와 왼쪽 앞발까지 감싸고 있다. |
| ⓒ 정재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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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석의 꼬리 끝 왼쪽 앞발을 감싼 꼬리는 끝 부분도 한번 더 꼬아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꼬리 표현을 완성하고 있다. |
| ⓒ 정재학 |
고양이의 '번팅(bunting)'이라는 것이 있다. 친밀감과 애정을 표현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보통 헤드번팅으로 머리를 사람들 다리 사이로 비벼댄다. 그런데 이 호랑이 보소. 스스로 셀프번팅을 하는 게 아닌가. 소위 꼬리번팅이 아닐런지. 이 기상천외한 장면 앞에서 한참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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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산 진악산 충남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으로 금산 사람들은 이 산을 오랫동안 고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여겼다. |
| ⓒ 정재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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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삼저수지 아름다운 수변 풍경을 자랑하고 있다. |
| ⓒ 정재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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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굴봉 빨간 밧줄 구간 물굴봉 가는 길은 파란 밧줄과 빨간 밧줄 구간이 나오는데 가파르고 암석으로 구성되어 힘든 구간이다. |
| ⓒ 정재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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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머리굴 용머리 바위라고 하지만 뿔과 여의주가 없어 이무기처럼 보인다. |
| ⓒ 정재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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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악산 물굴 호랑이 머리를 집어 넣어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
| ⓒ 정재학 |
여기에는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중 <산천> 조에 '물소리가 요란하여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세상에 전하는 이야기로는 용이 사는 곳이라 하는데 날이 가물 때 비가 오기를 빌면 영험이 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그런데 여기에 온 진짜 이유는 용 이야기 때문만은 아니다.
바로 금산에 가뭄이 나면 호랑이 머리를 이 굴에 넣었다는 침호두(沈虎頭) 기우제 때문이었다. 호랑이 머리를 굴에 넣으면 용이 화가 나서 천둥과 번개, 구름을 불러 비를 내렸다는 전설로 가뭄이 오면 금산군수가 직접 관음굴에 가서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용과 호랑이의 관계를 활용한 이 기막힌 상상력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 험한 길을 마다하고 기도하러 온다니 뭔들 안 들어줄까. 그 정성이 눈물겹다.
그래서 미리 준비한 음료수를 꺼냈다. 오는 내내 갈증으로 마실 유혹도 끝내 물리치고 지켜온 음료수다. 세 번에 걸쳐 고수레를 외치며 사방에 뿌렸다. 그랬더니 날씨가 화창했는데도 불구하고 입구 바위틈을 타고 물방울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전 세계의 전쟁이 종식되고 평화의 빗줄기가 터져 뜨거워진 세상의 가뭄이 해갈되길 기원했다.
하산 길에 들어보니 물소리가 유난히 우렁차고 요란했다. 계곡을 따라 흘러내리는 물은 개삼저수지로, 다시 금강으로 흘러들 것이다. 그 물길 끝 어딘가에 용호석이 서 있겠지. 용은 물을 거느리고, 호랑이는 산을 지킨다. 둘은 서로 다른 세계에서 왔지만, 늘 함께 어우러져 나아갔다.
오늘의 여정은 그 이치를 몸으로 증명하는 길이었다. 금강변 천내리에서 용과 호랑이를 돌로 만났고, 진악산 물굴에서 치열한 용과 호랑이의 울음소리를 가슴으로 들었다. 고려의 왕이 능소로 낙점했다 버리고 간 자리에 석수로 남아 마을을 지켰고, 조선 기우제의 성소가 참배객을 맞는다.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용과 호랑이는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용과 호랑이는 오늘도 치열하게 상박(相搏)하고 있지만 또한 서로 각자 맡은 영역을, 그리고 이 땅을 나란히 지키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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