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덕꾸러기서 전력 11% 책임지는 4위 에너지원 ‘우뚝’

신준섭 2026. 6. 3.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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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에너지 이야기]
⑤ 신·재생에너지, 굴곡의 40년사
전남 해남군 ‘솔라시도 태양광 발전소’ 뒤로 해가 지고 있다. 간척지에 설치한 이 태양광 발전소의 연간 발전량은 2만7000가구가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인 129기가와트시(GWh)에 달한다. 해남=권현구 기자


재생에너지의 장점은 연료 고갈 우려가 없다시피 하다는 점이다. 석유·석탄 등 유한한 자원과 달리 재생에너지는 태양·바람·물·땅 등을 발전 연료로 삼는다. 자원을 소모해가며 발전하지 않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무한에 가까운 생산이 가능하다. 지구 온난화를 부르는 온실가스 배출도 없다. 기후변화에도 최적화한 에너지인 셈이다.

장점이 많지만 한국 에너지 역사 속에서의 위상은 다르다. 재생에너지는 부침이 가장 많았던 에너지원으로 꼽힌다. 이명박정부의 지식경제부 고위직 중 한 명은 태양광·풍력 발전을 “절름발이 에너지”라고 평가했었다. 제주도에서 열린 한국신·재생에너지학회 학술대회에 지식경제부 대표로 참석해 내놓은 발언이라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학회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가 아닌 원자력을 해야 하는데 ‘야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최소한으로 할 거다’라는 식이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시대적 흐름은 재생에너지를 조금씩 키우는 데 무게를 실었다. 정부 지표누리에 따르면 2024년 연간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10.69%로 사상 처음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원자력과 액화천연가스(LNG), 석탄에 이은 4위 에너지원이란 위상도 얻었다. 다만 그 과정은 지난했다는 평가가 따라붙는다.

‘대체에너지’가 시작

한국에서 새로운 에너지원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태동한 것은 1·2차 석유 파동 이후다. 원자력과 액화천연가스(LNG), 석탄 외에 다른 에너지원도 필요하다는 움직임이 일었다. 이를 통칭해 대체에너지로 지칭했다. 산업통상부의 전신인 동력자원부는 1987년에 ‘대체에너지법’을 제정하고 대체에너지 육성에 나섰다.
전남 영암군 활성산 정상부에 40메가와트(㎿) 규모의 육상풍력발전소가 설치돼 있는 모습. 이곳에서는 연간 2만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이 생산된다. 영암=권현구 기자


대체에너지 육성은 이듬해 6월 ‘대체에너지 기술개발 기본계획’이 세워지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태양광과 풍력, 바이오에너지 등의 분류에서 출발해 시간이 흐를수록 분류가 늘어났다. 한국공학한림원의 한국산업기술발전사 에너지·자원 편은 태양광, 풍력, 수소·연료전지, 바이오·폐기물에너지, 태양열, 지열, 석탄가스화 복합발전(IGCC), 수력, 해양에너지까지 9가지 분류를 기존 화석연료와 대비되는 에너지원으로 꼽았다. 신·재생에너지로 부르는 분류이기도 하다.

목표는 88년 기준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0.22%였던 대체에너지 비중을 2001년에는 3%까지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80년대 전력 예비율이 50%를 넘어서면서 ‘전기가 남아돈다’는 인식이 비등한 탓이다.

새로운 발전설비를 짓지 말라는 정치권의 비판이 점점 커졌다. 야당이었던 신한민주당의 조영수 의원은 85년에 한국전력 외채 규모와 높은 예비율 등을 지적하며 효율이 낮은 발전설비를 처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슷한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91년에는 평화민주당의 조희철 의원은 발전소 과잉 설비로 엄청난 투자 재원과 자원 낭비가 초래된다며 발전설비 증대에 반대하고 나섰다. 민주정의당의 박우병 의원은 2006년까지 85기의 발전소를 짓는 계획이 60기면 충분하다고도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동력자원부 출신 관계자는 2일 “그때 정부는 발전설비 건설 계획을 최대 50%까지도 줄여버리는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90년대 중반 들어 더 많은 전력 수요 대응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겼지만 대체에너지 몫으로 돌아오지는 않았다. 남는 부지를 LNG 발전으로 채우는 데 주안을 둔 탓이다. 법이 만들어진 지 10여년이 흘러도 대체에너지는 천덕꾸러기로 남았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대체에너지의 새로운 이름인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은 2001년 기준 0.04%에 불과했다.

언제부터 신·재생에너지가 됐을까

대체에너지라는 이름이 신·재생에너지로 바뀐 시점은 노무현정부 초기였다. 2003년 발생한 ‘세녹스 사건’이 계기가 됐다. 휘발유에 메틸알코올과 톨루엔 등을 혼합한 세녹스는 휘발유보다 싼 대체연료로 각광받았다. 여기서 ‘대체 연료’란 표현이 들어가면서 대체에너지와 혼용될 가능성이 생겼다.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고 한다. 대법원이 2004년 8월 세녹스를 불법으로 확정판결하면서 판매가 금지된 영향도 컸다. 정부는 같은 해 법안명을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로 변경했다. 태양광과 태양열, 풍력, 수력, 지열, 바이오매스까지를 재생에너지로 분류하고, 나머지는 새로운 에너지 즉 신에너지로 통칭하는 방식이다.

신·재생에너지 중에서 가장 먼저 덩치를 키운 것은 태양광이다. 한·일 월드컵이 열렸던 2002년부터 시작한 발전차액지원제도(FIT) 영향이 컸다. FIT는 신재생에너지 사업자가 생산한 전력 가격이 정부가 고시한 기준보다 낮으면 차액을 보전해주는 제도다. 즉 사업자 입장에서는 손해 볼 일이 없다. 게다가 한전이 의무적으로 해당 회사에서 생산한 전력을 사야 하는 기간도 15~20년으로 규정했었다.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하다 보니 태양광을 앞세운 재생에너지가 급격히 늘었다. 2002년 0.07%에 불과했던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은 2011년에 3.46%까지 급격히 증가했다.


다만 제도를 유지하기에는 예산의 한계가 있었다는 증언이다. FIT에 맞춰 지급한 보조금은 2002년 33억원에서 5년 후엔 1194억원으로 대폭 늘어났다. 2011년에는 3689억원까지 폭증하기도 했다. 이는 제도 개편 필요성을 키웠고 FIT는 2012년까지만 운영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대신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 제도(RPS)를 도입했다. 발전설비용량이 500메가와트(㎿) 이상인 발전사업자는 발전량의 일정 부분을 신·재생에너지로 발전하도록 규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자체적으로 발전할 수 없으면 다른 발전사업자에게서 재생에너지인증서(REC)를 사 와서라도 채워야 하도록 강제했다. 현재 정부가 운영 중인 체계가 구축됐다.

정권 교체기마다 휘둘려

체계가 구축되기는 했지만 재생에너지 보급이 급속도로 늘거나 줄거나 하는 일은 제도와 상관이 없었다. 그보다는 대통령을 위시한 정권 성향이 중요했다는 증언에 무게가 실린다. 2004년에 한국에너지공단 초대 신·재생에너지센터장을 역임한 이성호 박사는 “노무현정부는 다른 나라처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열심히 해보자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진보·보수로 나눌 수 없는 흐름이 눈에 띈다. 이 박사는 “문재인정부는 재생에너지 많이 한다고 했지만 사실 재생에너지 온갖 규제를 제일 많이 만든 정부”라고 평가했다. 이때 정부는 지방자치단체가 태양광 이격 거리를 규제할 수 있도록 허용했었다. 태양광을 설치할 수 있는 부지가 그만큼 줄어들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 박사는 “산지 태양광도 사실상 설치할 수 없게끔 했다”며 “윤석열정부 들어서는 아예 대출을 차단해 쐐기를 박았다”고 평가했다.

반면 박근혜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 측면에서 합리적이었다는 평가다. 이 박사는 “그래도 재생에너지에 대한 선입견은 없었던 거 같다”며 “REC를 확대하고 지자체가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겠다고 하면 합리적 조건으로 허용했다”고 밝혔다. 당시 산업통상자원부에 근무했던 이들의 평가도 비슷하다. 익명을 요구한 산업통상자원부 퇴직자는 “박근혜정부 때인 2016년 9월에 경주 지진이 나면서 전력 정책에 안전과 환경 고려를 법적으로 의무화했고 재생에너지도 늘렸다”고 밝혔다. 실제 2011년 3.46%였던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은 박근혜정부 중기인 2015년에 6.65%까지 급속도로 늘었다. 2013~2014년 신·재생에너지 연간 투자액이 2009년(3422억4700만원)의 배를 상회하는 7000억~8000억원이었던 점도 눈에 띈다.


의견이 엇갈리는 정권은 이명박정권이다. 이 박사는 FIT를 폐지하고 RPS를 도입한 점을 패착으로 지적했다. 하지만 관료 사회에선 2035년까지 신·재생에너지 11% 보급 목표를 세운 점을 들어 재생에너지 확대에 노력한 정부로 회자된다.

재생에너지를 기후에너지환경부 소관으로 개편한 이재명정부의 성적표는 아직이다. 다만 결국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해가 지거나 바람이 불지 않으면 발전을 못 하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해소가 첫 번째다. 두 번째는 태양광도 핵심광물이나 소재 면에서 중국 의존도가 높다는 점이다. 공급망 위기가 있다는 것이다. 전 동력자원부 관계자는 “이같은 취약성은 에너지 전환이 빨라질수록 더욱 뚜렷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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