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완의 시선] 국민연금은 증시 부양의 도구가 아니다

주정완 2026. 6. 3.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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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완 논설위원

국민의 노후자금이 ‘고위험, 고수익’ 성격의 주식투자를 대폭 늘리기로 했다. 정부가 지난달 28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에서 의결한 사항이다. 이날 기금위는 국민연금 기금의 국내 주식투자 목표 비중을 20.8%로 높이기로 결정했다. 지난해까지 국내 주식투자 목표치가 14.4%였던 점을 고려하면 파격적인 행보다.

「 “연금으로 주식투자 대폭 확대”
결정 근거, 회의 내용은 비공개
투자 위험은 누가 책임질 건가

일단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예상된 수순이었다. 그런데 기금위는 한 발 더 나갔다. 단기적으로는 목표치(20.8%)에 얽매이지 않고 국내 주식을 더 많이 살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줬다. 이른바 ‘전략적 자산배분’의 허용 범위를 대폭 확대한다는 기금위 결정이다.

기존에는 이 범위가 5%포인트였다. 이번 회의에선 구체적인 수치를 철저한 비공개로 돌렸다. 기금위는 “기금운용 업무의 공정한 수행과 금융시장 안정에 영향을 미칠 우려”를 비공개의 이유로 들었다. 그렇다면 기존에는 어떤 이유로 이 수치를 공개했는지 묻고 싶다. 한마디로 하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식이다.

어쨌든 시장에선 이 범위를 10%포인트 정도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게 맞는다면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투자 비중이 30%를 조금 넘겨도 문제 삼지 않겠다는 얘기다. 국민연금 기금은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320조원 넘는 국내 주식을 보유 중이다. 여기서 추가로 100조원 이상 국내 주식 보유액을 늘릴 수 있게 된 셈이다.

주식 투자자들은 국민연금의 투자 확대에 박수를 보내겠지만, 국민 전체의 노후를 생각하면 어딘가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기금위원장인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 기금의 수익성과 안정성을 제고하면서도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고려한 결정”이라고 했지만,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다. 국민연금을 증시 부양의 수단으로 동원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시각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번 결정이 중장기적으로 국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에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 단정하기 어렵다. 앞으로 국내 증시가 더 오를지, 아니면 떨어질지 아무도 확실하게 장담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주가가 계속 오르면 다행이지만, 언젠가 주가가 하락세로 돌아서 국민연금이 손해를 보면 국민 전체가 그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지난해와 올해 1분기 성적표만 놓고 보면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투자에서 ‘대박’을 낸 것은 사실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주식투자 수익률이 항상 높을 수는 없다. 고위험과 고수익은 ‘동전의 양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15년간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투자 수익률을 찾아봤다. 매년 꾸준히 수익을 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실제로 3년에 한 번꼴로 손해를 봤다. 두 자릿수 넘는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경우도 세 차례나 된다. 2011년(-10.34%)과 2018년(-16.77%), 2022년(-22.76%)이다. 야구에 비유하면 아무리 강타자라도 때로는 삼진이나 내야 땅볼로 아웃을 당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한 가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지난달 28일 회의에서 기금위가 도대체 무슨 근거로 주식투자 확대를 결정했는지, 위원들 사이에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 전혀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연금 전문가 모임인 연금연구회가 긴급 성명서에서 “국내 주식 비중 상향이 재정 추계와 장기적인 수익·위험 분석을 토대로 한 전략적 선택인지, 아니면 당장 눈앞의 매도 부담을 피하기 위한 임기응변인지 불투명하다”고 비판한 이유다.

이번 기금위 회의록은 4년 뒤인 2030년 5월 말에나 공개된다. 현 정부의 임기가 거의 끝날 무렵이다. 사실상 다음 정부에서나 회의록을 열어볼 수 있다는 뜻이다.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했다는 게 복지부 설명이지만,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와 비교해 보자. 복지부 논리대로 하면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통위 회의록도 오랫동안 공개하지 말아야 한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금통위는 통상적으로 20일 안에 인터넷 홈페이지에 회의록을 올려 누구나 볼 수 있게 한다. 회의 당일에는 한은 총재가 기자회견을 열고 상세한 배경을 설명한다. 회의록도 공개하지 않고, 기자회견도 없는 기금위와는 전혀 딴판이다.

이번 기금위 회의에 대해 연금연구회는 “국민연금이 국내 증시 변동성 완화나 주가 관리, 환율 방어를 위한 편의적인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부디 이런 의혹이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만일 사실이라면 청년 세대와 미래 세대에 큰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정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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