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가격제’에…정유사는 왜 걱정 앞설까

최창원 매경이코노미 기자(choi.changwon@mk.co.kr), 장보석 매경이코노미 인턴기자(jbs010117@naver.com) 2026. 6. 2. 21: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벌 수 있을 때 벌어야 하는데…

정부가 유가 급등에 대응해 석유 최고가격제를 현 수준에서 동결했다. 지난 3월 13일 첫 시행 이후 4번째 동결이다. 석유 최고가는 정유사 공급가격 기준 ℓ당 휘발유 1934원·경유 1923원·등유 1530원이다. 당분간 최고가격제는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5월 27일 기자간담회에서 석유 최고가격제 종료 관련 질문에 “전쟁 종료와 호르무즈 해협 상황이 안정되고, 유가가 적정 수준인 (배럴당) 90달러대 정도가 되면 (검토)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앞서 양기욱 산업부 산업자원안보실장도 “호르무즈 해협 상황이 안정되고 국제유가 역시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수준으로 안정돼야 출구 전략을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5월 27일 기준 영국 런던 ICE선물거래소의 7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종가는 배럴당 94.2달러다.

단호한 정부의 태도에 국내 정유 4사(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는 불안한 눈치다. 올해 1분기 미국·이란 전쟁 → 유가 급등에 따른 ‘반짝 특수’로 6조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거뒀지만, 3월 이후 최고가격제로 기회 손실이 커지고 있어서다. 더군다나 정부의 손실 보전 기준은 ‘원가’로 초점이 맞춰지는 분위기다. 국제가격 기준으로 놓친 이익보다 실제 원가 이하 판매분만 보전하겠다는 입장으로 풀이된다. 업계는 상승기 마진 기회를 충분히 누리지 못한 상태에서 향후 유가 하락 국면까지 겹치면 정유사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지난 5월 8일 페르시아만 북부에 위치한 이란의 핵심 원유 수출 기지 하르그섬 서쪽 해안에 커다란 기름띠가 퍼져 있는 모습. 최소 3000배럴 이상의 원유가 유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AFP=연합뉴스)
최고가격제에 막힌 ‘마진 상방’

역래깅 시점 부담 확대

정유업은 본질적으로 변동성이 큰 산업이다.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인(국제유가)이 지배해서다. 이에 유가 상승기에 돈을 벌어 유가 하락기를 버티는 구조에 가깝다.

올해 1분기 정유 4사가 호황을 누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래깅효과(lagging effect)에 따른 추가 마진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정유사의 수익 구조(선입선출 처리 방식 기준)를 단순화하면, ‘제품 판매 가격-원유 매입 가격’ 차이다. 예를 들어, 원유가 배럴당 100달러일 때 제품가격이 110달러라면 마진은 10달러다. 이후 유가가 올라 원유가 110달러, 제품가격이 120달러가 돼도 마진은 여전히 10달러다. 하지만 실제 정유업은 이렇게 단순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원유를 들여와 저장·정제·판매하기까지 수개월 시차가 발생한다. 유가 상승기에는 과거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확보한 원유가 높은 제품가격으로 판매된다. 100달러에 들여온 원유를 120달러에 판매하는 식이다. 기본 마진(10달러)에 재고 시차에 따른 래깅효과 마진(10달러)이 붙는 형태다.

그런데 3월부터 시행된 최고가격제는 래깅효과 마진을 제한하는 요소다. 유가 상승으로 제품가격이 급등해도 국내 공급가격은 정부가 정한 상한 이상으로 올릴 수 없어서다. 쉽게 말해 원래라면 유가 상승기에 ‘120달러 가격’을 받아야 할 제품을 정부 정책 때문에 더 낮은 가격에 공급하는 식이다. 정유 업계 입장에서는 상승기에 벌어야 할 돈을 충분히 벌지 못하는 상황이다.

물론 최고가격제는 단순 가격 통제 정책이 아니다. 정부가 정유사 손실을 사후 보전해주는 구조까지 포함돼 있다.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소비자 부담은 정부가 가격 상한으로 막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정유사 손실은 재정으로 메워준다. 정부는 이를 위해 4조2000억원 규모 예산도 편성했다. 첫 손실 보전금 지급은 이르면 6월 중 이뤄질 전망이다.

다만 ‘손실 기준’이 불명확하다. 기준을 두고 정유 업계와 정부 간 입장 차이도 존재한다. 업계는 국제 제품가격(싱가포르 국제 석유제품 가격)을 기준으로 기회비용 손실까지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관련 업계는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 기회손실 비용이 최소 4조~5조원 수준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정부는 원가 이하로 공급한 부분만 보전하겠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기회손실까지 포함할 경우 재정 부담이 커져서다. 정부는 최근 정유 4사의 유가·운송비·공정 운영비 등 원가 산정 자료를 전달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손실 보전 기준을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유가가 안정화를 넘어 하락 국면으로 전환되면 정유사 부담이 커진다. 비싼 가격에 확보한 원유를 낮아진 가격에 팔아야 해서다. 이른바 ‘역래깅’ 구간이다. 이 경우 마진 악화뿐 아니라 장부상 손실인 재고평가손실도 발생할 수 있다. 재고자산에 저가법(LCM method)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저가법은 취득원가와 시장 가치(순실현가능가치) 중 낮은 금액으로 재고자산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원유를 배럴당 100달러에 구매했는데, 정제 후 팔 수 있는 제품 가격이 크게 떨어져 해당 재고의 순실현가능가치가 80달러 수준으로 낮아졌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재고자산 가치는 기존 취득원가 100달러가 아니라 80달러로 조정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20달러 차이는 재고평가손실로 처리된다. 해당 손실은 회계상 매출원가에 반영돼 수익성에 영향을 준다.

유독 주가 등락 컸던 에쓰오일, 왜?

정유 집중 구조에 FIFO 회계 겹쳐

정유사에 투자한 주주들도 불만이 크다.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 주가가 이렇다 할 반등을 못하고 있어서다. 최고가격제 시행 전인 3월 3일 14만1300원이던 에쓰오일 주가는 5월 27일 10만8100원으로 23.4% 떨어졌다. 같은 기간 SK에너지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 주가는 11.8% 하락했다. GS칼텍스 가치가 반영되는 GS 주가는 6% 상승했다.

증권가는 최고가격제가 유독 에쓰오일 주가에 직격탄이 된 이유를 두 가지로 본다. 일단 사업 구조다. 에쓰오일은 정유·윤활유·석유화학 중심 구조다. 반면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와 소재 사업 계열사 가치가 뒤섞여 반영된다. GS 역시 유통·발전·건설 등 다양한 사업부의 가치가 주가에 반영된다. 또 하나는 재고자산을 다루는 회계 처리 방식의 차이다. 에쓰오일은 재고자산 원가 산정 시 FIFO(선입선출·First In First Out) 방식을 사용한다. 반면, 다른 곳들은 평균법을 사용한다.

FIFO는 먼저 사들인 원유가 먼저 매출원가로 인식되는 구조다. 평균법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다. 과거에 싸게 산 원유와 최근 비싸게 산 원유를 섞어 평균 원가를 낸다. 이 차이는 유가 변동기에 실적 민감도를 키운다. 유가 상승기에는 FIFO 방식이 유리하다. 과거 낮은 가격에 매입한 원유가 먼저 매출원가로 반영되는 반면, 제품은 오른 가격에 판매되기 때문이다. 래깅효과가 선명해지는 꼴이다. 평균법은 과거 저가 원유와 최근 고가 원유가 섞이기 때문에 이익 증가폭이 상대적으로 완만하다.

반대로 유가 하락기에는 FIFO의 부담이 커진다. 비싼 가격에 확보한 원유가 이후 낮아진 제품 가격과 맞물려 역래깅 효과가 뚜렷해지기 때문이다. 평균법은 여러 시점의 매입 가격을 섞어 원가를 계산하기 때문에 충격이 상대적으로 분산된다. 결국 에쓰오일은 최고가격제 국면에서 FIFO의 장점은 충분히 누리지 못한 반면, 향후 유가 하락기에는 역래깅과 재고평가손실 부담이 더 부각될 수 있는 구조다.

그럼에도 증권가는 에쓰오일 목표주가를 높이고 있다. ➊ 종전 이후에도 정유설비 복구에 시간이 필요해 2027년 중반까지는 ‘공급 부족’에 따른 고유가 흐름이 이어질 수 있고 ➋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 증손자회사인 만큼 원유 수급이 안정적이란 점이 근거다.

5월에만 8곳의 증권사가 목표주가를 상향 조정했다. 특히 유안타증권은 17만5000원까지 눈높이를 높였다. 황규원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전쟁 과정에서 글로벌 수요의 3%에 해당하는 정유 설비(280만 b/d)가 파손됐다. 정상 복구까지 12~18개월이 필요할 것”이라며 글로벌 정유설비 공급 부족 장기화를 점쳤다. 그러면서 “또 에쓰오일은 아람코 증손자 회사 지위 덕분에 홍해 얀부 항구를 통해 필요한 원유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있다”고 짚었다.

다만 증권가 역시 최고가격제는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진호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현 시점의 가장 큰 변수는 최고가격제의 종료 시점과 손실 보전 규모와 시점”이라며 “정부와 정유 업계 간 손실 산정 기준을 둘러싼 협의가 진행 중인 만큼, 확정 내용에 따라 3~4분기 실적은 위아래로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창원 기자)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유가 정보가 표시되어 있다. (매경DB)
최고가격제 뒤 숨은 ‘자영 주유소’ 그림자

단기 지원금은 미봉책, “카드 수수료 인하해야”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 개인이 운영하는 ‘자영 주유소’도 시름하고 있다. 한국석유관리원(Kpetro)에 따르면, 영업 중인 주유소 수는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 이전(2월 말) 1만646개에서 4월 말 1만597개로 줄었다. 두 달 새 49곳이 영업을 중단했다. 주유소 대부분이 자영 주유소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계 상황에 내몰린 영세 사업장이 본격적인 휴·폐업 수순에 들어간 것으로 풀이된다.

현장에선 휴·폐업 요인으로 직영·자영 주유소 간 역전된 가격 구조를 꼽는다. 최고가격제 시행 이전에는 직영 주유소 가격이 자영보다 높았다. 하지만 최고가격제와 함께 정부의 가격 안정화 압박이 커지면서 정유사들은 직영 주유소 판매 가격을 대폭 낮췄다. 정유 업계 관계자는 “최고가격제로 공급가가 공표되는 데다, 정부 압박이 있어 직영 주유소 판매 가격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자영 주유소의 설 자리는 좁아졌다. 경기도에서 자영 주유소를 운영하는 A씨는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 경쟁 직영 주유소들이 워낙 저렴하게 판매해 가격을 올리면 당장 손님이 끊기는 구조”라며 “경영 여건이 너무 어려워져 최근 오래 함께 일하던 직원들을 대폭 내보내고 영업시간도 단축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주변 주유소 역시 영업이익이 평균 20~30%, 많게는 50%까지 급감해 정말 어려워한다”고 덧붙였다.

A씨는 “폐업하고 싶어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영업을 이어가는 곳이 다수”라고도 토로했다. 폐업에도 막대한 비용이 발생해서다. 주유소 폐업을 위해서는 위험물 시설 철거, 토양 오염도 조사 및 정화 작업이 필수적인데, 이 비용만 평균 1억원 이상이 소요된다. 규모와 토양 오염 정도에 따라 수억원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는 게 A씨 설명이다.

이처럼 막대한 정화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폐업 신고조차 하지 못한 채 방치되는 ‘휴업 주유소’도 고려하면 서류상 집계되지 않은 실질적 폐업 상태의 주유소는 통계치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SK에너지 등 일부 정유사가 자영 주유소에 지원금을 지급하는 움직임을 보이고는 있으나, 이 역시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게 현장 목소리다. 오히려 카드 수수료를 인하해달라는 의견이 거세다.

인천에서 자영 주유소를 운영하는 B씨는 “가장 현실적이고 절실한 대책은 현재 1.5%인 카드 우대 수수료율을 1% 이하로 낮추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해당 수수료율은 기름값이 훨씬 저렴했던 수십년 전에 책정된 기준”이라며 “기름값이 ℓ당 2000원대를 넘나드는 현재, 타 영세 업종의 수수료가 인하되는 동안 주유소만 1.5%에 묶여 있어 카드사만 배를 불리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한국주유소협회에 따르면, 현재 주유소 평균 영업이익률은 1.4%에 불과하다. 현장에서 마진율보다 카드 수수료율(1.5%)이 더 높아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주유소협회 관계자는 “마진보다 수수료 비용이 더 큰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와 국회에 카드 수수료 인하를 강력히 건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보석 인턴기자)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장보석 인턴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62호(2026.06.03~06.09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c) 매경AX.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