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 벽치기 유세에 “맞지예” 추경호·朴 동행에 “마음 가네예” [대구 르포]

31일 오후 2시 50분 대구 봉무동의 한 아파트단지. 섭씨 33도의 땡볕에 유세차가 멈춰섰다. 이윽고 밀짚모자를 쓰고 어깨띠를 둘러맨 남성이 아파트 창문을 향해 “우리 아들·딸들을 위해 AI를…”이라며 독백을 시작했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였다. “필요하면 정부와 얘기해서 한 10년 간 세금도 확 깎아가 대기업을 유치하겠습니다!”
5분여 뒤 슬리퍼를 신은 주민들이 삼삼오오 맞은편 길가에 모이기 시작했다. 선거운동원이나 선거송 없이 유세차를 타고 골목골목을 누비는 ‘벽치기 유세’가 효과를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중년의 부부, 아이들의 손을 잡은 가족, 홀로 나온 장년층까지 다양했다. 이 지역을 지나갈 대구 4호선을 모노레일 방식으로 추진하겠다는 김 후보의 말에는 박수가, “이제는 대구가 변화해야 합니다”라는 외침에는 “맞지예”하는 호응이 터져나왔다.

단지 초입에 앉아 김 후보의 유세를 지켜보던 김기주(59)씨는 “연설을 들어보니 김 후보가 잘할 것 같다. 정부도 밀어주겠다고 하니까 이제는 바뀌어야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이모(50)씨도 “이재명 정부에서도 국민의힘 시장이 당선되면 우리 아이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앞이 컴컴합니더”라고 했다. 이날 출근길에 중앙일보와 만난 김 후보는 “시민들의 체념이 조금씩 희망으로 바뀌는 걸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며 “사람 많은 데만 다니기 보다는 민원이 있는 지역을 집중적으로 다니면서 벽치기로 내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추경호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는 대구 서문시장 곳곳을 누비며 상인들과 장을 보러 나온 시민들에게 연신 손을 내밀었다. 추 후보가 국민의힘 후보로 확정된 뒤 서문시장을 찾은 건 이번이 세 번째다. 기호 2번과 승리를 상징하는 ‘브이(V)’자를 그리며 손을 흔드는 추 후보에게 상인과 시민들은 사진 촬영 요청으로 화답했다.

선거기간 내내 “보수 결집”을 호소해 온 추 후보는 시민들에게 “투표 꼭 하이소”라고 독려했다. 추 후보는 중앙일보와 만나 “지지자들이 빠르게 결집하고 있다는 것을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고 있다”며 “오만한 권력을 견제해 달라, 그리고 경제를 좀 살려달라는 절절한 목소리에 제가 진심으로 보답할 것”이라고 했다.
추 후보는 오후 4시쯤 등장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이 시장 동2문 입구에 나타나자 미리 운집해 있던 시민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하기 시작했다. 일부는 박 전 대통령을 더 잘 보기 위해 인근 식당에 놓인 의자를 밟고 올라가 까치발을 들었다. 최종석(64)씨는 “박 전 대통령을 보니까 너무 좋다”며 “아직 투표를 안 했는데, 박 전 대통령 때문에 추 후보에게 마음이 간다”고 했다. 식당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원래 쉬는 날인데 (박 전 대통령을 보려고) 출근했다”며 “마음 속으로 응원하고 있습니데이”라고 했다. 추 후보는 오후 7시 30분 수성못에도 박 전 대통령과 동행했다. 몇몇 시민들은 태극기를 들고 박 전 대통령 연호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을 보는 대구 시민들의 시선은 엇갈렸다. 박 전 대통령이 거주하는 달성군 유가읍의 김종열(81)씨는 “박 전 대통령이 나서니 이제야 균형이 맞는 느낌”이라며 환영했지만, 유가읍 주민 손옥희(64)씨는 “추 후보가 오죽 급하면 조용히 쉬고 싶어하시는 박 전 대통령을 선거판에 끌어들였겠는교”라며 “국민의힘이 잘 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겁니더”라고 했다. 지난 23일 박 전 대통령이 훑고 간 대구 칠성시장 상인 최모(65)씨는 “박 전 대통령이 정치하는 것도 아니고, 힘이 있는 것도 아니잖느냐”며 눈살을 찌푸렸지만, 또 다른 상인 이옥랑(51)씨는 “박 전 대통령을 보니 없던 감정도 생기더라”며 “안타까운 마음에 보수가 잘 돼야 한다는 감정이 끓어올랐다”고 했다.
한편, 두 후보는 이날 오전 나란히 달성공원 새벽시장을 찾았다가 조우했다. 두 손을 맞잡은 두 사람은 밝은 표정으로 서로를 격려했다. 다만, 시장 한켠에서는 추 후보의 지지자가 김 후보 지지자에게 “진짜 대구 사람이 맞느냐”고 따지는 등 양측의 신경전이 팽팽했다. 가족과 함께 놀러 온 김주한(45)씨는 “나도 국민의힘 당원이지만 고립된 대구의 현실을 생각하면 변화에 대한 갈망이 크다”고 말했다. 반면, 정연광(64)씨는 “우리 같은 서민들이 마음 놓고 살 수 있으려면 자꾸 독재로 가려고 하는 현 정권을 견제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대구의 지난달 29~30일 사전투표율은 전국 최저치인 18.65%였다.

대구=하준호·류효림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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