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으로 만들었는데 이 정도... 한때 모로코 화폐에 새겨진 성

백종인 2026. 5. 30.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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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여행기 ⑤] 붉은 흙벽에 새겨진 천 년의 바람... 고대 요새 마을 ' 아이트 벤 하두'

지난 4월 2일부터 16일까지 15일 동안 모로코를 방문했습니다. <기자말>

[백종인 기자]

▲ 고대 아마지그족의 요새화된 전통 마을, 크사르 아이트 벤 하두는 장엄하고 이국적인 풍경 덕분에 1960년대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필두로 <글래디에이터>, <미이라>, <왕좌의 게임> 등 수많은 할리우드 역사 영화와 판타지 대작들의 촬영지가 되었다.
ⓒ 백종인
사막을 벗어났다고 했지만, 여전히 우리는 아틀라스산맥의 품 안에 있었다.

지리적으로도 아틀라스 남동쪽의 건조한 암석 지대였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 역시 메마른 검붉은 산과 갈색 흙집들 뿐이었다. 하이 아틀라스를 넘어 마라케시로 가기 전, 우리는 이틀 동안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자연과 하나 되어 살아가는 다데스(Dades) 계곡과 아이트 벤 하두(Ait Benhaddou)의 문화와 삶을 엿보았다.

다양한 얼굴을 한 다데스 계곡
▲ 다데스 계곡 높은 절벽을 이루는 바위들이 원숭이 손가락을 닮았다 하는 다데스 계곡이 내 눈에는 단단한 팽이버섯 묶음을 확대해 놓은 것처럼 보였다
ⓒ 백종인
다데스 계곡으로 하이킹하러 간다기에 붉은 바위산을 오를 것으로 생각하고 등산화 끈을 단단히 조여 맸다.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원숭이 손가락을 닮았다는 다데스 계곡이 내 눈에는 단단한 팽이버섯 묶음을 확대해 놓은 것처럼 보였다.
다데스 계곡은 수억 년 전 바다 바닥에 쌓였던 퇴적층이 솟아 오르며 형성된 지형이다. 이후 오랜 세월 아틀라스산맥의 눈 녹은 물과 폭우가 암석을 깎아내렸고, 살아남은 바위들은 사람마다 다른 형상을 떠올리게 했다. 누군가에게는 원숭이 손가락이었고, 또 다른 이에게는 촛농이 흘러내리다 굳은 모습이었다.
▲ 다데스 계곡의 변신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 다데스 계곡은 포플러와 올리브 나무 사이로 시냇물이 흐르고 길은 평탄했다. 그늘진 구간에서는 신발이 젖지 않을까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 백종인
지역 안내자를 따라 절벽 사이 길로 들어서자 다데스 계곡은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포플러와 올리브 나무 사이로 시냇물이 흐르고 길은 평탄했다. 그늘진 구간에서는 신발이 젖지 않을까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붉은 바위산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잊은 일행은 "이건 모과나무", "이건 유도화"라며 저마다 식물 이름을 아는 척하기도 했다. 바람에 갈대가 흔들리고, 진분홍 글라디올러스가 살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 다데스 계곡 절벽이 만들어 놓은 자연의 성 절벽 사이로 햇살이 비치고 햇살의 각도에 따라 바위는 각양각색으로 변화를 거듭했다
ⓒ 백종인
어느새 냇물을 지나 절벽이 만들어 놓은 자연의 성 안으로 들어갔다. 기암괴석 사이를 걷다가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절벽 틈을 헤치고 나가면 다시 큰 길이 나오고 냇물이 보이기도 했다. 절벽 사이로 햇살이 비치고 햇살의 각도에 따라 바위는 각양각색으로 변화를 거듭했다.
단단히 조여 맨 등산화가 제 몫을 하는 순간도 있었다. 어느 틈엔가 우리는 다시 '원숭이 손가락' 절벽을 내려다보는 산등성이에 올라 있었다. 시야가 사방으로 탁 트여 있었고, 앞에 보이는 능선 끝까지 발길이 이어졌다. 험한 길은 아니었지만, 부서진 바위 조각들 때문에 내리막은 제법 미끄러웠다.
▲ 흙집을 짓는 모습 나무 거푸집 안에 흙과 점토, 짚을 넣어 다지고, 물을 부어 상태를 확인한 뒤 다시 다지는 과정을 반복하며 집을 지어 올리는 모습은, 이제는 민속촌에서나 볼 수 있는 우리의 초가집을 떠올리게 했다
ⓒ 백종인
다데스 계곡의 마을은 수 세기 동안 사하라 사막을 건너온 카라반들이 하이 아틀라스를 넘어야 하는 힘든 여정을 앞두고 물이 흐르는 이곳에 집을 짓고 머물며 교역을 이어 나간 곳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낮의 열기와 밤의 추위를 견디기 위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흙과 점토, 짚으로 두께 50센티미터가 넘는 벽을 쌓고 작은 창문을 냈다. 나무 거푸집 안에 흙과 점토, 짚을 넣어 다지고, 물을 부어 상태를 확인한 뒤 다시 다지는 과정을 반복하며 집을 지어 올리는 모습은, 이제는 민속촌에서나 볼 수 있는 우리의 초가집을 떠올리게 했다.

우리는 산길을 안내했던 지역 안내자의 집에 들러 모로코의 전통 차 문화와 이와 관련된 결혼 풍습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타진과 더불어 이곳의 전통 요리인 쿠스쿠스를 먹었다. 마치 옛날 잔칫날처럼 이웃 사람들이 함께 음식을 준비하는 분위기였다. 엄마를 따라온 열 살 남짓한 아이 하나가 다가와 악수를 청하며 영어로 인사했다. 아마 저 아이는 자라서 이곳을 떠나게 될 것이다.

이튿날, 모로코의 할리우드라 불리는 아이트 벤 하두로 향하는 길은 '카스바의 길'이라 불렸다. 메마른 암석 지대와 녹색 오아시스, 그리고 진흙으로 지어진 요새 마을의 카스바와 크사르가 끊임없이 교차하는 풍경이었다. 길 초입은 프랑스 점령 시절 조성된 장미 계곡이기도 했는데, 우리가 탄 차량은 그곳에서 장미꽃 한 다발을 선물 받기도 했다.

모로코 화폐에 새겨진 진흙성채
▲ 스쿠라 마을의 아마리딜 카스바 17세기의 역사적인 요새 가옥인 아마리딜 카스바는 모로코에 남아 있는 수많은 진흙 성채 중에서도 가장 보존 상태가 뛰어나고 건축미가 독보적이어서 모로코 화폐에 새겨졌을 정도의 국가적인 문화유산이다
ⓒ 백종인
사하라를 향하며 미들 아틀라스를 지나면서 보았던 수많은 대추야자와 올리브 숲이 다시 펼쳐졌다. 우리는 오아시스 마을인 스쿠라(Skoura)에 멈춰 아마리딜(Kasbah Amridil) 카스바로 안내 되었다. 17세기의 역사적인 요새 가옥인 아마리딜 카스바는 모로코에 남아 있는 수많은 진흙 성채 중에서도 가장 보존 상태가 뛰어나고 건축미가 독보적이어서 모로코 화폐에 새겨졌을 정도의 국가적인 문화유산이다.

일반적으로 카스바는 지역의 부족장이나 부유한 가족이 소유한 요새화된 대저택을 뜻한다. 아틀라스산맥 기슭에는 카스바 외에 여러 가문과 부족 구성원들이 외적과 사막의 약탈자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공동으로 가꾼 요새화된 마을인 크사르(Ksar)도 있는데, 두 가지 모두 흙과 짚을 섞어 지은 아마지그족의 전통적 요새 건축물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아마리딜 카스바는 외적의 침입을 막는 '요새'의 기능과 영주 가문이 품격 있게 살아가는 '대저택'의 기능을 완벽하게 결합했다. 정사각형 구조의 성채 네 모퉁이에는 높은 감시탑이 솟아 있었고, 주변의 붉은 진흙, 짚, 석회, 자갈을 섞어 거푸집에 넣고 다져 올린 두꺼운 벽은 앞서 다데스 계곡에서 본 공법과 일치했다.

외양간과 창고가 있는 1층, 남녀 공간이 엄격히 구분된 2층, 화장실 문화, 그리고 주변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옥상까지, 그 안에는 몇 백 년 전 귀족적인 삶의 방식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특히 전시된 농기구와 부엌 도구, 자물쇠 등은 우리의 옛 물건들과도 놀랄 만큼 닮아 있었다.
▲ 아틀라스 영화 스튜디오가 있는 와르자자트 'OSCAR HOTEL'이라 쓰여 있는 간판 뒤편으로 우주 영화에나 나옴 직한 번쩍이는 투명한 광채가 횃불처럼 번쩍이고 있는 것은 누르 와르자자트 태양열 발전 단지(Noor Ouarzazate Solar Complex)다
ⓒ 백종인
아마리딜 카스바를 떠나 조금 더 서쪽으로 가자 아틀라스 영화 스튜디오가 있는 와르자자트 (Ouarzazate)에 도착했고 'OSCAR HOTEL(오스카 호텔)'이라 쓰여 있는 간판 뒤편으로는 우주 영화에나 나옴 직한 번쩍이는 투명한 광채가 횃불처럼 번쩍이고 있었다. '누르 와르자자트 태양열 발전 단지(Noor Ouarzazate Solar Complex)'라 하였다.
태양광 패널 방식과 다른, 거울로 태양 빛을 모아 발생하는 '열'을 이용해 터빈을 돌리는 집중형 태양열 발전(CSP)인데, 10여 년 전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직접 전기를 공급할 목적으로 태양열 발전을 건설할 계획이란 기사를 접한 적이 있어 귀를 쫑긋 세울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정치·경제적 문제로 모로코 단독 개발 형태로 이어지고 있으며, 일부 시설은 이미 전력을 생산 중이라고 했다. 황량한 붉은 황톳빛 대지 위에 최첨단 시설이 11세기의 카스바와 함께 나란히 서 있는 셈이었다.
▲ 성채로 올라가는 길 우니라강의 진흙물을 외나무다리로 건너 성채 마을로 올라가면, 가파른 암석 언덕 위에는 한때 카스바였을 유적이 남아 있고 언덕 건너편에는 겹겹이 쌓인 또 다른 진흙 성채들이 보였다
ⓒ 백종인
와르자자트 외곽의 황량한 암석 사막 길을 뚫고 들어가니, 메마른 우니라(Ounila)강이 흐르고 있었고 그 너머로 붉은 진흙 벽돌 성채들이 층층이 쌓여 하나의 거대한 산처럼 우뚝 솟은 장엄한 마을이 나타났다. 고대 아마지그족의 요새화된 전통 마을, 크사르(Ksar)였다. 이곳이 바로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이트 벤 하두였다.

오늘날 사람들은 아이트 벤 하두를 고대 요새 마을보다는 영화 촬영지로 더 많이 알고 있다. 장엄하고 이국적인 풍경 덕분에 1960년대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필두로 <글래디에이터>, <미이라>, <왕좌의 게임> 등 수많은 할리우드 역사 영화와 판타지 대작들의 촬영지가 되었다.

영화가 촬영되면서 허물어졌던 성문이나 일부 벽면이 복원되었고 크사르 마을도 기념품 가게를 제외하면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현대식 건물로 이주하여 그야말로 모로코의 문화유산 박물관이 되었다. 우리는 우니라강의 진흙물을 외나무다리로 건너 성채 마을로 올라갔다. 길 위에서는 당나귀를 탄 마을 사람과 마주치기도 했다. 가파른 암석 언덕 위에는 한때 카스바였을 유적이 남아 있었다.

언덕 건너편, 겹겹이 쌓인 또 다른 진흙 성채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작스러운 회오리바람이 몰아쳤다. 몸이 휘청일 만큼 거센 바람이었다. 바람은, 천 년 전 이 성채를 쌓던 시대에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아프리카 대륙 북서쪽, 대서양과 지중해를 끼고 있는 모로코에 대하여 우리는 얼마나 알까? 카사블랑카라는 도시가 있는 나라, 축구가 좀 강한 나라,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들이 사는 나라, 영화 <글래디에이터>, <왕좌의 게임> 등 고대 로마 시대부터 <스타워즈>, <인터스텔라> 등 외계 행성까지 품을 수 있는 특이하고 다양한 자연 환경 덕에 수많은 영화가 촬영된 나라. 모로코는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나라이다. 15일 동안 모로코 곳곳을 찾아다녔다. 페스와 마라케시 등의 고대 도시부터 사하라 사막. 고도 4000m가 넘는 아틀라스 산맥 기슭의 마을까지 다니며 그들의 독특한 문화와 삶의 지혜를 보고 듣고 배웠다. 이렇게 습득한 모로코의 면면을 앞으로 6회에 걸쳐 정리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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