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축제 ‘미친 라인업’에… 학생증 대여·재학생 인증 퀴즈까지

김다연 2026. 5. 30. 00:0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유명 연예인 경쟁적으로 섭외
누가 오느냐가 학교 만족도 직결
외부인 유입 늘자 출입 통제 강화
인증 퀴즈 대응 ‘퀴즈 족보’ 판매
10만∼15만원에 학생증 대여도
지난 14일 서울대학교 봄축제 루미네스에서 아이돌그룹 트리플에스의 김채연이 관객들과 셀카를 찍고 있다. 서울대 페이스북


“올해는 개교 몇 주년인지 말해주세요.” “필수교양 이수학점이 몇 학점인가요?”

최근 서울 소재 한 대학에 재학 중인 A씨(25)는 학교 축제에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 있던 중 학생회 관계자에게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하자 학생회 측은 A씨의 입장을 막았고, 이후 대학생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 ‘에브리타임’ 인증을 거친 뒤에야 축제를 즐길 수 있었다.

이달 대학 축제 시즌이 본격화하면서 주요 대학이 외부인 출입 통제에 나서고 있다. 유명 아이돌 공연을 보기 위한 외부인 유입과 암표 거래가 늘어나자 학교 측과 총학생회가 재학생 인증 절차를 대폭 강화한 것이다. 학생증 확인을 넘어 학교 관련 정보를 묻는 이른바 ‘재학생 인증 퀴즈’까지 등장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온라인 사이트에서 대학별 인증 질문과 답변을 정리한 ‘퀴즈 족보’를 유료로 판매하기도 한다.

소셜미디어에는 대학 축제 기간 학생증을 대여해준다는 글도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게시글에는 ‘학생증 앱 로그인 가능’ ‘학교 포털 인증 가능’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학생증 대여 비용은 통상 10만~15만원 수준이며, 인기 대학 축제의 경우 최대 50만원까지 제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가 지난 28일 열린 한양대 축제에 입장하기 위해 오픈채팅방에서 학생증 대여를 문의하자 한 재학생은 “지난해에도 별다른 의심 없이 바로 팔찌를 줬다”며 10만원을 요구했다.

일부 대학은 공지를 통해 “타인의 학생증 사용과 신분증 위조 행위는 형법상 공문서 부정행사 및 주민등록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며 강경 대응 방침을 내세웠지만 거래 자체를 막지는 못하는 분위기다. 다른 대학 축제에 학생증을 빌려 입장해봤다는 한 대학생은 “얼굴 확인을 해도 학생증 사진 화질이 흐린 경우가 많아 검사 자체가 애매하다”며 “그냥 본인이라고 주장하면 넘어가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대학 축제의 상업화가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학 축제가 연예인 중심의 대형 콘서트 형식으로 변질되면서 외부인 유입이 심화했다는 것이다.


주요 대학은 축제 운영 업체를 선정할 때 ‘연예인 섭외 능력’을 핵심 평가 요소로 반영하고 있다. 동국대는 홈페이지에 올린 입찰공고에서 올해 축제 행사 용역 제안 요청서에 ‘최정상급(S급) 아이돌 2팀, 정상급(A급) 아이돌 1팀 이상’을 요구하면서 에스파·아이브·올데이 프로젝트 등 특정 그룹명을 예시로 언급했다. 경북대도 행사 기획업체에 ‘싸이·권은비 등 워터밤형 가수 포함’ ‘S급 2팀, A급 2팀 이상 섭외’ 등의 조건을 제시했다.

축제에 들어가는 비용도 당연히 올라간다. 경북대는 오는 20~22일 열리는 축제 사업비로 지난해 2억2000만원보다 59.1% 증가한 3억5000만원을 책정했다. 최근 한양대 내부에서 유출된 ‘축제 라인업 및 예상 소요 비용’ 문건에는 약 3억4500만원이 투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예인 섭외에 열을 올리는 건 소위 ‘축제 라인업’이 학교 만족도로 직결된다는 인식 때문이다. 서울 소재 대학 재학생 윤모(23)씨는 29일 “다른 학교보다 라인업이 약하면 상대적으로 비교하게 되고 박탈감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외대의 한 재학생도 “유명 연예인을 많이 부른다는 건 결국 학교 예산이나 규모가 크다는 의미여서 다른 학교와 비교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축제에 누가 출연하느냐가 학생들의 관심과 반응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다 보니 주최 측인 총학생회도 적지 않은 부담을 느낀다. 한 대학 총학생회 소속의 정모(26)씨는 “축제 아티스트 라인업에 따라 학생들의 여론이 크게 갈리기 때문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학 축제가 학생 공동체 문화를 형성하는 목적이 아닌 유명 연예인 중심의 행사가 되면서 여러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수억원의 축제 예산 대부분이 연예인 섭외에 집중되면서 학생 복지나 장학금, 동아리 활동 등 학생 지원이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대중의 인기에 영합해 연예인을 경쟁적으로 섭외하기보다 대학생들이 직접 주도하고 미래세대로서의 고민과 대학 축제의 의미를 담아낼 수 있는 방향이 필요하다”며 “토론회나 창의적인 참여형 프로그램처럼 사회적으로 의미를 보여줄 수 있는 행사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다만 연예인을 부르는 행위를 과시 경쟁으로만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취업난과 불확실한 미래, 치열한 스펙 경쟁 속에서 대학생들이 느끼는 불안과 피로감을 축제에서 해소하려는 취지도 반영돼있다는 것이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지금의 대학은 예전처럼 마음껏 낭만을 즐기는 공간이라기보다 취업 과정의 연장선처럼 여겨지는 측면이 크다”며 “축제가 학생 만족도 및 대외 이미지를 높일 수 있는 대표적인 이벤트인 만큼 학교들도 이런 축제 문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김다연 기자 ya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