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 명가 명성 이젠 로봇·AI로 잇는다 [CEO 라운지]
LG전자 주가가 6년 만에 장중 상한가를 기록하며 시장의 시선을 끌었다. 삼성전자 파업 사태 이후 로봇 대체 수요 확대 기대감이 번지며, 로봇 밸류체인 핵심 기업으로 LG전자가 부각된 결과다. 이 같은 시장 반응 뒤엔 취임 이후 가전을 넘어 AI·로봇 플랫폼 기업으로의 체질 전환을 추진해온 류재철 LG전자 대표(59)의 구상이 자리 잡고 있다.

연구원 출신…H&A 1위 이끌어
류재철 대표는 1989년 금성사 가전연구소로 입사해 세탁기·냉장고 등 생활가전 연구개발(R&D)에만 20여년을 쏟아부은 정통 기술자 출신 경영자다. 재직 기간의 절반가량을 연구 현장에서 보낸 그는 이후 사업부장을 거치며 기술 이해를 경영 역량으로 전환했다. 2021년부터 LG전자 최대 캐시카우인 H&A(생활가전)사업본부장을 맡아 단일 브랜드 기준 세계 1위 자리를 공고히 한 공을 인정받아 지난해 말 CEO에 올랐고, 올 3월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그가 H&A사업본부장으로 재임한 3년간 LG전자 생활가전 사업 매출의 연평균 성장률은 7%에 달했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트랙라인에 따르면, LG전자는 지난해 미국 주요 가전 6개 품목(세탁기·건조기·냉장고·식기세척기·레인지·마이크로웨이브 오븐) 매출 기준 점유율 22%로 2년 연속 1위를 지켰다.
올 취임 첫 주주총회에서 류 대표는 “근원적 경쟁력에 기반한 고성과 포트폴리오 전환을 통해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성장 기반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단순한 가전 제조·판매를 넘어 AI와 로봇, B2B 솔루션을 망라하는 플랫폼 기업으로의 전환을 선언한 것이다.
가전 넘어 B2B·전장으로
1분기 매출 역대 최대
올 1분기 LG전자는 연결 기준 매출 23조7272억원, 영업이익 1조6737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1분기 사상 최대,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32.9% 급증했다. 주력인 생활가전과 TV뿐 아니라 B2B 사업이 전사 매출의 36%를 차지하며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특히 전장(VS) 부문의 질주가 눈에 띈다. 1분기 VS사업본부 매출은 3조644억원, 영업이익은 2116억원으로 매출과 이익 모두 분기 사상 최대였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의 수주 기반 사업 구조가 안정적 성장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평가다.
전장 사업의 경쟁력은 텔레매틱스에서 두드러진다. 텔레매틱스는 차량 통신 장치를 통해 위치·운행 정보를 실시간으로 송수신하는 기술이다. LG전자는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의 기반이 되는 텔레매틱스 분야에서 통신 장치(NAD)와 안테나, 시스템을 자체 설계하며 통합 솔루션 역량을 확보하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테크인사이츠에 따르면, LG전자는 글로벌 텔레매틱스 시장에서 점유율 23%로 세계 1위다(지난해 4분기 기준). 류 대표는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을 넘어 인공지능 중심(AIDV) 차량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차량용 인포테인먼트·디스플레이·콘텐츠 플랫폼 등 강점 영역을 중심으로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4대 미래 전략 가속 페달
로봇·AIDC·스마트팩토리·AI홈
류 대표가 올해 가장 집중하는 분야 중 하나는 로봇이다. 올해를 ‘로봇 사업 본격화의 원년’으로 선언한 그는 두 가지 방향으로 로봇 사업을 키우고 있다.
첫 번째는 부품 공급 사업이다. 로봇 원가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액추에이터(로봇 관절·팔다리를 움직이는 핵심 구동 부품)’를 직접 설계·생산해 글로벌 로봇 제조사에 공급하는 B2B 사업을 본격화한다. 올 1월 CES에서 액추에이터 브랜드 ‘LG액추에이터 악시움’을 공개했다. 연간 4500만대 수준의 가전 양산 인프라와 모터 기술력을 무기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두 번째는 완성 로봇이다. 올 초 CES에서 공개한 홈 로봇 ‘클로이드’는 양팔과 다섯 손가락으로 수건을 개고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는 고난도 동작을 시연해 주목받았다. 애초 내년으로 잡았던 기술검증(PoC) 계획을 올 상반기로 앞당겼다. 2028년 홈 로봇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산업용 휴머노이드 가능성도 함께 탐색 중이다.
AI 데이터센터 냉각솔루션도 새 먹거리로 떠올랐다. AI 서버 수요 급증으로 고성능 냉각 수요가 폭발하는 가운데, LG전자는 초대형 냉동기 ‘칠러’와 냉각수 분배장치(CDU)를 AI 데이터센터향 핵심 제품으로 육성하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데이터센터향 칠러 수주 실적은 2024년 대비 3배 수준으로 급증했다. 스마트팩토리 사업도 2년 만에 5000억원 규모 수주잔고를 확보하며 성장 궤도에 올랐다.
류 대표는 취임 이후 이 4대 미래 전략 사업(로봇·AIDC 냉각솔루션·스마트팩토리·AI홈)의 진척도를 점검하는 ‘사업기술점검회의’를 신설해 주 최대 3회씩 직접 주재하고 있다. CEO 일정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할 정도다.

시장은 ‘체질 전환’에 베팅
LG전자가 마주한 대외 환경은 녹록지 않다.
LG전자는 1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2분기 전망과 관련해 “지정학적 갈등 장기화에 따른 유가 변동 및 원자재 가격 인상 압력, 공급망 차질로 인한 글로벌 수요 변동 리스크로 사업 운영의 부담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주력인 가전(HS) 부문은 글로벌 거시경제 불확실성과 중동 전쟁발(發) 물가 상승으로 수요 개선이 쉽지 않다는 판단이다. 중동향 해상 물동량 비중은 전체의 5% 내외지만, 전쟁 할증료 등으로 전체 해상 물류비가 기존 예상 대비 10% 이상 늘어날 것으로 회사 측은 내다봤다. 미국 관세 부담도 변수다. 다만 LG전자는 미국 내 수입 관세 납부분이 환급 대상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관련 절차를 진행 중이다.
이에 회사 측은 개발도상국 시장을 타깃으로 매출 성장 모멘텀 확보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구체적으로는 선행 재고를 통한 생산 안정성 및 원가 경쟁력 강화, 대형 화주로서의 협상력을 활용한 물류 비용 최소화 전술을 펼 예정이다.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서도 연초 대비 주가가 2배 이상 급등하는 등 최근 LG전자에 대한 시장의 기대는 상당하다. 로봇 신사업을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며 성장성이 부각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김민경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내년으로 예정했던 클로이드 PoC 계획을 올 상반기로 앞당긴 것으로 미뤄봤을 때, 적극적으로 로봇 사업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데이터센터 쿨링 사업의 신규 수주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엔비디아와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 모빌리티 관련 협업을 논의하는 등 AI 관련 사업 본격화에 따른 모멘텀도 있다”고 분석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62호(2026.06.03~06.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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