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 이소라의 맨발 워킹을 보며... 나에게도 '악착'이 있을까
짧은 숏폼 콘텐츠가 대세인 시대에 느림에 주목합니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성공보다는 태도'를 보여주는 드라마나 예능에서 마음의 위로를 얻고 인생의 지혜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김지은의 그거 봤어?'에서 다루는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김지은 기자]
여기 중년의 여자 둘이 있다. 그들은 젊은 시절 품었던 꿈에 다시 도전하려고 한다. 30년이 훌쩍 넘게 지난 지금, 그 도전은 승산이 있을까. 1세대 모델인 이소라와 홍진경이 파리 패션 위크 무대에 도전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소라와 진경> 이야기다. 그들은 나이가 들었고 워킹 또한 예전 스타일이다. 두 사람 스스로도 이 도전이 가능할지 의심한다. 2화까지만 해도 그들의 도전은 조금 무모해 보였다.
하지만 최근 어린 모델만 선호하던 패션 업계에 다양한 인종과 체형, 나이의 모델을 캐스팅하는 흐름이 생겼다. 게다가 두 사람의 몸매는 당장 런웨이에 서도 될 정도로 잘 관리되어 있다. 그들이 여전히 프로라면, 아주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았다. 자, 그들의 도전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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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직 모델들에게 워킹을 배우며 연습하는 이소라와 홍진경 워킹 연습을 하며 자신의 자세를 다듬는 소라와 진경의 모습. |
| ⓒ 소라와 진경 (MB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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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혜진의 조언 장면 해외 런웨이 경험이 풍부한 한혜진이 파리 무대에 도전하는 홍진경에게 조언하는 모습 |
| ⓒ 소라와진경(MBC) |
"난 다 떨어져도 본전이야. 그냥 파리 가서 에펠탑 구경하고. 어차피 예능이잖아. 가서 재밌게 있다가 오면……."
한혜진은 단호하게 홍진경의 말을 끊었다.
"그런 마인드로 가시면 안 될 것 같아요."
홍진경은 다 떨어지면 너무 창피하다며 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니니 그런 마인드로 가야 한다고 변명하듯 말했다. 홍진경은 이미 파리 무대에 도전했다 실패한 아픈 경험이 있다. 예쁘고 어린 친구들이 가득한 파리 패션계에서 또다시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안 돼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면 과정은 편할지라도 내가 나를 물렁하고 헐렁하게 만들어서 더 열심히, 악착같이 할 나를 스스로 배제하는 거예요."
한혜진은 그런 마인드로 간다면 비행기 타고 한국 들어올 때 땅을 치고 후회할 거라고 덧붙였다. 한혜진의 그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이소라는 온라인 영어 면접을 위해 성시경을 만났다. 성시경은 이소라에게 뻔한 이야기지만 자신은 정말로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엄청난 결과를 바라고 하는 것보다, 뜨겁게 도전하는 과정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한혜진과 성시경의 말이 일상에서도 가끔 생각났다. 사실 나는 공모전에 몇 번 떨어진 후, '결과와 상관없이 과정이 중요하다'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다. 이렇게 살다 아무 성과 없이 죽어도, '과정이 중요하니까 다 의미가 있다'는 말을 붙들며 실패감을 희석하고 있었다.
한혜진과 성시경의 말을 듣고 그제야 알게 됐다. 처음부터 '안 돼도 과정 자체가 의미가 있는 거니까'라고 생각하는 도전은 미지근하다. 과정에 의미가 있다는 말은 목표를 향해 뜨겁게 도전했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비록 원하는 결과에 가닿지 못하더라도 그렇게 밀어붙인 시간은 그 사람을 이전과 다른 자리로 옮겨 놓을 것이 분명하다. 나는 이소라와 홍진경의 도전을 더 응원하게 됐다.
그 둘은 모든 에너지와 자원을 활용해 면접 준비를 하고 온라인 면접을 본 후, 결과를 기다렸다. 에이전시에서 연락이 오지 않으면 여기서 도전은 끝이다. 이소라와 홍진경은 희망과 절망을 오가는 마음을 붙잡고 워킹 연습을 했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불안감을 떨쳐냈다. 마침내 기다리던 에이전시의 연락이 왔고, 그들은 파리로 떠났다. 이들의 도전은 더 이상 무모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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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다리는 동안 워킹을 했다는 홍진경 스튜디오에서 당시 자신의 마음을 말하고 있는 홍진경 |
| ⓒ 소라와진경(MB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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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발이 없어서 맨발로 워킹하는 이소라 신발이 없는 돌발상황에서 맨발로 워킹하며 캐릭터 디렉터의 미소를 이끌어낸 이소라. |
| ⓒ 소라와진경(MBC) |
지난 24일 5회차 방송을 보며 문득 궁금해졌다. 사람들은 왜 누군가가 목표에 도전하는 프로그램을 좋아할까. 여러 오디션뿐 아니라 체력의 한계나 장사에 도전하는 등의 수많은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시청자들은 참가자들이 목표에 도전하며 때때로 좌절하지만, 끝내 포기하지 않는 모습에서 용기를 얻는 게 아닐까. 설령 그들이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어쩌면 사람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아가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도전에 쉽게 감정 이입을 하고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는 것일지도.
<소라와 진경>의 유튜브 댓글에는 비슷한 나이대 여성들의 응원이 유독 많다. 여타의 도전 프로그램과 <소라와 진경>의 다른 점은 '중년에 다시 하는 도전'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그 도전은 현역일 때도 이루지 못했던 목표다. 아직 결과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여정을 지켜보건대, 결과와 상관없이 이소라와 홍진경은 이미 예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그들의 도전은 이미 뜨겁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 TV를 껐다. 조용한 정적이 흘렀다. 가만히 나 자신을 들여다봤다. 내 안에도 혹시 아직 만나지 못한 '악착같이 할 수 있는 내가'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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