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결말, 사이다가 없어서 더 좋았다

이인혜 2026. 5. 29.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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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ENA <허수아비>

[이인혜 기자]

보통의 범죄물은 범인을 잡는 이야기가 서사의 중심이다. 누가 범인인지 밝혀지는 순간이 클라이맥스고, 시청자는 그 쾌감을 기다리며 화면 앞에 선다. 그렇게 보면 ENA <허수아비>는 꽤 독특한 드라마다. 범인이 누구인지는 극 초반부터 알려져 있어서다. 오히려 이 드라마가 집중하는 부분은 그 이후, 사건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지난 26일 종영한 ENA <허수아비>는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을 배경으로,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을 수사하던 형사 강태주(박해수)가 자신이 혐오하던 검사 차시영(이희준)과 뜻밖의 공조 관계를 맺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진범을 쫓는 수사극이라는 설정만 보면 통쾌한 '사이다' 결말을 기대하게 되지만, 박준우 감독은 그 기대에 응하지 않았다. 이춘재 사건은 현실에서 단 한 번도 속 시원하게 마무리된 적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관련 경찰들은 공소시효가 지나도 처벌받지 않았고, 실제 재심이 됐어도 사건화가 되지 못했다. 현실이 그러한데 드라마만 개운하게 끝낼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허수아비> 스틸컷
ⓒ ENA
이 다짐의 출발점은 반성이었다. 박 감독은 2021년 SBS 〈모범택시〉를 마치며 한 비판을 마주했는데, 실제 사건 피해자들을 생각하지 않고 드라마적 소재로만 소비한다는 지적이었다. 복수의 판타지는 주면서 현실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는 자각, 그 아쉬움이 <허수아비>로 이어진 게 아닐까.

많은 범죄 드라마가 실화에 기댄다. 실제 사건의 무게가 서사에 긴장감을 더해주기 때문인데, 그 자체가 나쁜 선택은 아니다. 다만 현실이 해결하지 못한 고통을 허구의 사이다로 봉합할 때, 드라마는 자칫 피해자보다 시청자를 먼저 보게 된다. 시청자는 개운한 채로 채널을 끄고, 실제 피해자들의 시간은 그 쾌감 뒤로 밀려난다.

〈허수아비〉는 그 방향을 틀었다. 박 감독은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씨, 딸의 죽음을 수십 년간 실종으로 처리당한 고 김용복씨를 직접 찾아가 만났다. 자료가 아니라 사람을 먼저 만난 셈이다. 그리고 그 만남 이후에야 '범죄 사건으로 시대를 보여주는 드라마'라는 방향이 구체화됐다.

드라마는 사이다를 주지 않는다. 30년 만에 임석만(전석찬)은 무죄를 선고받지만, 차시영은 끝까지 거짓 증언을 택한다. 가해자들은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받지 않는다. 드라마는 그 씁쓸함을 안은 채로 끝을 향해 간다. 강태주는 내내 악몽에 시달리다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곤한 잠에 빠지는데, 꿈속에는 사건이 없다. 마을 사람들이 한자리에 앉아 웃는 평범한 하루가 펼쳐진다. 이지현 작가는 그것을 "우리가 보내는 애도의 방식"이라고 했다. 연쇄살인 사건이 없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일상이 소소하고 온전했을까, 그 상상을 화면에 담았다.

사이다는 시청자의 감정을 해소한다. 하지만 이 결말은 그 해소를 목표로 하지 않았다. 그렇게 보면 꿈속의 평범한 하루는 시청자가 아닌 피해자들을 위로한 것일 테다.

<허수아비>가 보여준 것은 드라마 한 편의 성공이 아니라, 대중문화가 실화를 다룰 때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다. 쾌감을 설계하는 대신 불편함을 유지하는 용기, 시청자의 개운함보다 피해자의 시간을 먼저 생각하는 태도, 아무도 사과하지 않은 현실 앞에서도 드라마 안에서만큼은 누군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으려 하는 이야기를 끝까지 써내는 의지. 그 선택들이 모여 이 작품의 무게를 만들었다. 시대를 담는 드라마가 많아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누구를 향해 쓰는가가 중요하다. 〈허수아비〉는 그 방향을 보여준 셈이다.
 <허수아비> 스틸컷
ⓒ ENA

덧붙이는 글 | 이 칼럼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글쓴이(이인혜)는 12년차 대중문화 에디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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