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엄마가 준 혼수 이불, 수십 년 만에 빛 본 사연

임지화 2026. 5. 29.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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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이불 살까 고민 끝에 '솜 트는 가게'로... 다시 되살린 어머니의 목화솜 이불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임지화 기자]

문득 환절기 이불을 사 볼까 싶었다. 남편과 서울 종로5가 광장 시장으로 갔다. 먼저 평소 이용하던 약국에서 소독제와 상비약 몇 가지를 샀다. 녹두전, 순대 등 즐비한 먹거리 가게를 비집고 이불 가게로 갔다. 이불 입구에서 힐끔 거리며 탐색했다.

"뭐 찾으세요?"
"그냥 구경할게요."

두 번째 이불 가게를 거쳐 세 번째 가게에서는 생각을 바꿨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이불을 겉만 보고 고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환절기 덮을 얇은 이불 있어요?"
"이리 들어 오세요. 여기 많아요."

주인은 미소로 반기며 발길을 잡아당겼다. 60수, 모달, 알러지케어 솜 등 처음 듣는 단어를 쓰며 설명했다. 주인 설명을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 이불의 홑청과 다른, 세련된 모양 커버, 색깔 등은 한눈에 확인 할 수 있었다.

혼수 이불을 버리지 못한 이유
▲ 1981년산 혼수이불 요 45년 동안 보관하고 있었는데, 겉표면은 얼룩이 있지만 솜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 임지화
우리 집 봄 이불은 30년도 넘었다. 낡아서 버릴 정도가 아니고 유행을 따를 의지가 없는 주인 때문이다. 거기에 다른 이유가 있다. 친정 어머니가 마련해준 혼수 이불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 기억이 안 나는데, 막연하게 솜을 틀어 덜어내고 고쳐 덮어야지 마음은 먹었지만 실천은 못하고 여태 미뤄 왔다.

두꺼운 이불이 불편해도 다시 만들 생각을 못했다. 첫째가 태어나면서 아기 이불 덤으로 우리 부부 이불도 얇은 것으로 샀다. 그리고 혼수 이불에 든 목화솜의 좋은 점, 엄마 마음이 담겨 있다는 사실 등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깊이 생각하고 귀함을 인지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러갔다.

내가 갖고 있는 물건 중에는 이불만큼 오래된 물품이 또 있다. 바로 한산 모시 천이다. 한산 모시 천도 옷장 서랍 가장 구석진 곳에 두어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존재 자체를 잊고 살았다. 어느 날 시누이가 모시 천으로 만든 옷을 입은 모습을 보고, 나도 옷을 만들 생각을 했다.
▲ 모시 남방셔츠 모시 천이 남아서 남방도 하나 추가로 만들었다. 원피스보다 자주 입는 편이다.
ⓒ 임지화
그게 내 나이 60이 다 되어서다. 불현듯 어머니가 무르팍으로 모시를 삼고, 베틀에 앉아 베를 짰던 모습이 떠올랐다. 순간 어머니의 손길이 얼마나 많이 닿았는지 생각하니 도저히 모시 천 뭉치를 보따리에 싼 채로 두고 볼 수가 없었다. 한복집을 수소문해서 가깝고 가격이 적당하다고 판단된 곳을 골랐다.
실용성을 감안해 변형한 스타일로, 원피스와 저고리 대용인 볼레로(재킷), 남방셔츠를 맞췄다. 남편 것으로 남방을 맞추자고 권해도 싫다고 했다. 내 옷 세 가지에 35만 원 품삯을 주고 주문했다. 실용성을 따지자면 품삯이 적지 않아서 고민했지만, 결단을 내리니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
▲ 모시로 만든 원피스와 볼레로 내 나이 60이 넘어 어머니가 남긴 한삼 모시로 원피스와 볼레로를 만들었다
ⓒ 임지화
몇 년째 매년 7월 초순에서 8월 중순에는 외출할 때마다 애써 모시옷을 입고 나간다. 또래 친구들은 옷 탄생 스토리를 듣고는 잘했다고 한 마디씩 한다. 하지만 하필 그 시기에 비가 자주 온다거나 하면 본의 아니게 한 번도 입지 못하고 여름을 넘긴 해도 있었다. 풀 먹이고 다림질하는 옷 손질의 어려움은 마음먹기 나름이라 문제 되지 않았다. 또 이 모시옷은 내 인생 마지막 옷으로도 정했다. 아이들의 고민을 덜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번 두꺼운 솜이불은 조금 다른 것 같다. 광장 시장에서 이불에 대해 알아보기 몇 년 전에도 솜을 틀어 다시 이불을 만드는 가게, 현관문에 붙은 전화번호로 두 번 문의했다. 공장으로 보낸 솜이 오롯이 내 이불로 탄생할지 회의적이었다. 비용도 살균 소독 등의 공정으로 예상보다 만만하지 않았다. 그렇게 보류한 게 지금까지 왔는데, 엊그제 우연히 옆 동네 재래시장을 들렀다가 '솜 틀어 드립니다' 문구가 걸린 이불 가게를 발견하고 나도 모르게 가게 안으로 향했다.

그동안 문의한 어떤 가게보다 낮은 가격을 말했다. 또한 남의 솜과 섞이지 않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내 솜을 주고도 최소한 이불 커버까지 17만 원은 줘야 이불 하나 가질 것 같았다. 광장 시장에선 15만 원으로 그냥 좋은 이불을 살 수 있었다.

결국 솜 트는 이불 가게로
▲ 45년 묵은 혼수이불의 변신 두껍고 무거웠던 요 하나의 솜을 틀어 덜어 내고, 덮은 봄이불로 만들었더니 가볍고 푹신하다
ⓒ 임지화
모시옷은 인생 옷으로 끝까지 의미 있게 쓰일 것이지만, 이불은 내가 없어지면 생명이 끝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남편한테 마지막으로 물었다.

"장모님이 주신 이불이고, 여태 보관해 왔으니 하나만 만들어 덮지."

나는 더 이상 따지지도 묻지도 않고 솜 트는 이불 가게로 향했다. 남편은 20대에, 나는 40대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나는 시어머니를 사진으로만 봤고, 남편은 장모를 15년 이상 봤다. '가정의 달' 5월이 다 가기 전에 다시 살린 어머니의 목화솜 이불 때문에, 우리는 어머니를 꿈 속에서라도 만나기를 기대하며 잠을 청할 수 있게 되어 설렜다.

덧붙이는 글 | 하늘 나라에서 어머니를 만난다면, 다시 살린 이불과 모시옷 이야기도 꼭 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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