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영 먼저 찍고 약국 돌며 쓸어담는다" 글로벌 쇼룸 '명동의 부활'[K-관광로드]①
외국인 관광객 'K라이프스타일' 집결지
글로벌 체험 거점 활용
지난 26일 서울 중구 명동역 6번 출구 앞은 캐리어를 끈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볐다. 이들 관광객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올리브영. 커다란 쇼핑백을 든 관광객들은 매장 입구에서 안내도를 펼치고 동선을 확인한다. 선케어 제품을 손등에 바르고 사용감을 비교하는 일본인 관광객 무리와 더마코스메틱(Dermocosmetic·피부 과학과 화장품의 합성어) 성분표를 휴대전화 번역기로 확인하는 미국인 관광객이 눈에 띄었다. 20대 일본 관광객 유키씨는 "일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본 제품들을 직접 테스트해보고 싶어서 명동에 왔다"며 "예전에는 마스크팩 위주로 샀는데 이번에는 선크림과 피부 진정 제품을 많이 살 예정"이라고 말했다.

명동 상권이 외국인 관광객 회복과 함께 부활했다. 코로나19 이전 명동은 중국 단체관광객 중심의 화장품 대량 구매 상권이었다면, 최근에는 K뷰티·패션은 물론, 생활소품과 맛집을 함께 소비하는 '체험형 관광 상권'으로 재편됐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CJ올리브영이 지난 3월26일 서울 명동에 문을 연 '올리브영 센트럴 명동 타운'은 개점 한 달 만에 올리브영 주요 매장 가운데 최상위권 매출을 기록했다. 전체 매출과 외국인 매출 모두 '올리브영 명동 타운'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올리브영 전체 매출 상위 5개 매장 가운데 3곳이 명동에 자리했다. 성수·홍대 등 젊은층 유동인구가 많은 상권을 제치고 명동 매장들이 상위권을 차지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외국인 관광객 소비가 다시 명동으로 집중되고 있다는 신호로 보고 있다.
센트럴 명동 타운의 성과는 신규 매장 효과에 그치지 않는다. 올리브영에 따르면 센트럴 명동 타운 개점 이후 해당 매장을 제외한 명동 상권 내 올리브영 매장의 외국인 매출은 전월 대비 11.5% 증가했다. 새 매장이 외국인 고객을 끌어들이고, 이는 주변 명동 매장 매출 확대로 이어지는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명동 상권 회복의 배경에는 달라진 K뷰티 소비 방식이 있다. 과거 외국인 관광객은 마스크팩, 색조 등 화장품 로드숍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제품을 구매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더마코스메틱, 선케어, 소용량 색조, 프리미엄 브랜드로 수요가 넓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약국마저 외국인 관광객 쇼핑 코스로 자리 잡았다. 일본·중국 관광객들은 피부 연고와 선케어 제품, 비타민 등을 비교 구매했고 일부 약국은 중국어·일본어 안내판까지 설치했다. 대만에서 온 30대 관광객 린씨는 "한국 약국 제품이 효과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올리브영에서 화장품을 사고 약국에서 기능성 제품까지 같이 산다"고 말했다.
실제 올리브영에 따르면 센트럴 명동 타운의 기초화장품 매출 가운데 K더마 상품 비중은 약 90%를 차지했다. 센트럴 명동 타운을 제외한 명동 올리브영 매장의 더마 카테고리 매출도 전월 대비 24.3% 늘었다.

패션 브랜드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명동 메인 거리에는 이미스, 마리떼프랑소와저버, 마뗑킴 등 젊은층에서 인기 있는 K패션 브랜드들이 대형 매장을 잇달아 열었다. 성수동 중심으로 소비되던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외국인 관광객과 접점을 넓히기 위해 명동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명동 메인 거리에서는 마뗑킴·이미스 쇼핑백을 든 외국인 관광객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LF 헤지스도 명동 플래그십 스토어 '스페이스H 서울'을 중심으로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콘텐츠를 강화하고 있으며, 코오롱스포츠는 올해 1월 명동에 플래그십 스토어 '코오롱스포츠 서울'을 열었다. 이랜드월드가 운영하는 뉴발란스 명동점도 외국인 관광객 수요에 힘입어 매출이 2년 연속 증가했다. 해당 점포의 2024년 매출은 전년 대비 17% 증가했고, 2025년에는 2024년보다 46% 늘며 성장세를 이어갔다.
지난 1월 오픈한 '무신사 스토어 명동'도 방한 관광객의 필수 쇼핑 코스로 자리 잡고 있다. 무신사는 오는 9월 자체브랜드(PB) 제품을 파는 '무신사 스탠다드 명동중앙점'을 새로 오픈한다는 계획이다. 2024년 오픈한 무신사 명동점까지 총 3개 매장이 명동에 들어선다. 일본 제조유통일괄화(SPA) 브랜드 유니클로도 코로나와 노재팬 사태로 명동에서 철수한 지 약 5년 만에 명동에 국내 최대 규모의 매장을 열었다.

최근 명동에는 캐릭터 굿즈와 생활소품, 생활용품, 스포츠 브랜드까지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체험형 관광 코스로 변하고 있다.
명동역 인근 소품 매장 '미미라인'에서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직접 키캡과 키링을 조합해 자신만의 굿즈를 만들고 있었다. 매장 곳곳에서는 완성된 키캡을 촬영해 SNS에 올리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호주에서 온 관광객 에밀리씨는 "한국 캐릭터 디자인이 독특해서 친구 선물용으로 만들고 있다"며 "이런 체험은 일본이나 유럽에서는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아트박스 역시 외국인 관광객 필수 코스로 떠올랐다. 캐릭터 굿즈와 감성 문구류, 생활소품 등을 여러 개씩 구매하는 관광객들이 많았다. 과거 화장품 중심이던 K소비가 소품과 라이프스타일 영역까지 확대됐다는 의미다. 다이소 명동점에도 외국인 관광객 발길이 이어졌다. 여행용 소형 화장품 용기부터 간식, 생활용품까지 한 번에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먹거리도 관광 동선의 일부가 됐다. 미슐랭 가이드에 이름을 올린 명동교자 앞에는 점심시간이 지나도 긴 줄이 이어졌다. 명동성당 인근 카페와 디저트 매장 역시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볐다.
달라진 브랜드 전략…"글로벌 테스트베드로"업계에서는 명동이 새로운 형태의 관광 쇼핑 상권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코로나19 이전 명동의 핵심 고객은 중국 단체 관광객들인 반면, 최근 명동을 찾는 고객은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미주 관광객이 섞인 개별 관광객 비중이 높다. 이들은 여행 전 SNS와 온라인 콘텐츠를 통해 상품 정보를 확인하고, 현장에서 직접 제품을 비교하며 구매한다.
이 때문에 명동에 입점하는 브랜드들의 전략도 달라지고 있다. 상품만 판매하는 매장이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에게 브랜드를 알리는 체험형 거점으로 명동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명동의 변화는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외국인 고객을 상대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동시에 해외 진출 가능성을 점검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외국인 매출 비중이 높은 명동 핵심 점포는 앞으로 단순 매장보다 글로벌 마케팅 거점에 가까운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예주 기자 dpwngk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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