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내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

권남영 2026. 5. 29. 00:1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창작가] 영화 ‘군체’… 연상호 감독
연상호 감독은 최근 개봉한 세 번째 좀비 영화 ‘군체’가 폭발적 흥행세를 보이는 것에 대해 “많이 관심 가져 주셔서 다행”이라며 “손익분기점(관객 300만명)만 넘어도 한시름 놓을 것 같다”고 말했다. 쇼박스 제공


연상호(48) 감독의 출세작은 단연 ‘부산행’(2016)이다. 달리는 KTX를 무대로 한 한국형 좀비 블록버스터가 전 세계 관객을 매료시켰다. ‘부산행’의 성공 이후 좀비물이 유행처럼 양산되면서 이 장르에 더는 새로울 게 없다는 비관이 번졌다. 그때 연 감독은 보란 듯 ‘반도’(2020)를 내놨다. 좀비 사태로 폐허가 된 한반도 배경의 포스트 아포칼립스(종말 이후) 작품은 처음 시도된 것이었다.

이후 6년 만에 선보인 세 번째 좀비 영화 ‘군체’는 또 새롭다. 괴성을 지르며 냅다 내달리고 인간을 물어뜯어 감염시키는 기존 좀비 설정에 머물지 않는다. ‘군체’의 좀비들은 진화한다. 네 발로 걷다 두 발로 뛰고 무리 지어 작전을 세우기까지 한다. 점액질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공유할 때마다 입을 벌린 채 고개를 쳐들고 ‘업데이트’하는데, 이 과정을 통해 이들은 집단 지성을 갖게 된다.

아포칼립스(세상의 종말)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연니버스’(연상호+유니버스)는 이렇게 또 한 차례 확장됐다.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연 감독은 “전작들이 클래식한 좀비물이었다면 ‘군체’는 내 영화 중 처음으로 좀비가 주인공인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내가 좀비 영화를 이렇게 여러 편 만들 줄은 몰랐다. 내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린 계기였다 보니 아무래도 좀비에 대한 각별한 마음은 있다”며 웃었다.

‘군체’는 비뚤어진 신념을 가진 생물학자 서영철(구교환)이 서울 도심의 대형 쇼핑몰에 신형 좀비 바이러스 감염 사태를 일으키며 벌어지는 아비규환의 상황을 그린다. 건물 안에 갇힌 생명공학자 권세정(전지현)과 보안요원 최현석(지창욱), 하반신 장애가 있는 현석의 누나 최현희(김신록) 등 생존자들은 탈출하기 위해 분투한다.

속도감 있는 전개와 다채로운 액션의 향연이 대중 오락영화로서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기존과 다른 좀비들의 집단 움직임은 수십 명의 현대무용수들을 통해 구현됐다. 연상호표 좀비물은 역시나 강력했다. 주연 배우 전지현은 연 감독을 “좀비들의 아버지”라고 칭했을 정도다. 지난 21일 개봉한 영화는 5일 만에 관객 200만명을 돌파하는 등 폭발적인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최고 흥행작 ‘왕과 사는 남자’보다도 관객 동원 속도가 빠르다.

연 감독은 “개봉 초기에 관객들이 많이 관심 가져 주셔서 다행스럽다. 손익분기점(300만명)만 넘어도 한시름 놓을 것 같다”며 미소를 보였다. 그는 “어제 초등학교 5학년인 딸과 함께 극장 4DX관에 가서 봤는데 딸도 재미있어 하더라”며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을 나오는데 극장이 엄청 시끌시끌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한동안 침체해) 그리웠던 극장 분위기를 접해 좋았다”고 말했다.

‘군체’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속도감이었다. 처음 쓴 시나리오는 무려 168페이지에 달했는데 곁가지 내용을 덜어내고 100페이지로 대폭 줄였다. 촬영을 마친 뒤에도 수차례 테스트 시사를 거치며 편집을 거듭했다. 최종 러닝타임은 122분으로 맞춰졌다. 연 감독은 “방탈출 게임 같은 요소를 영화적으로 녹여냈다. 극장 체험형 영화여서 빠른 전개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집단 지성을 가진 좀비라는 기발한 발상은 인공지능(AI)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보편적 사고의 총합’인 AI가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람들의 의식이 빠르게 연결되며 소수 의견은 배제되는 시대적 상황을 ‘하나의 군체를 이룬 좀비’에 비유한 것이다. 이를 통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개개인이 지닌 ‘개별성’이라는 메시지를 띄운다.

연 감독은 “‘군체’의 좀비를 초고속 정보 교류 시대에 마주하는 집단 지성의 산물이라고 보면 실질적 공포로 다가온다”고 했다. 그는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을 만들 때 집단성에 대한 위기감과 공포심에 집중하다가 명확한 주제 의식이 떠올랐다”면서 “상업 대중영화에서 다루기에 쉬운 주제는 아니지만 ‘보편성의 총합이 언제나 옳은가’라는 생각을 작품에 담고 싶었다”고 부연했다.

‘군체’의 세계관은 영화가 아닌 다른 형식으로 확장될 전망이다. ‘군체’의 설정을 다룬 그래픽 노블을 집필했고 이를 바탕으로 한 게임 개발을 논의 중이다. 관객 참여형 이머시브 공연 ‘인사이드 더 플레이: 군체’도 진행되고 있다. 영화와 연극이 결합된 형태로, 영화 속 상황을 일부 차용해 관객이 공연에 들어간 듯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향후 중국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연상호 감독의 첫 번째 좀비 영화 ‘부산행’(2016), 초저예산 영화 ‘얼굴’(2025),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2’(2024), 두 번째 좀비 영화 ‘반도’(2020)의 한 장면. NEW·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넷플릭스 제공


연 감독의 창작 커리어는 가히 독보적이라 할 만하다. 애니메이션과 영화, 드라마, 그래픽 노블을 아우른다. 애초에 그는 ‘돼지의 왕’(2011) ‘사이비’(2013) 등 애니메이션 영화로 주목받았다. 좀비물만 만드는 것도 아니다. 초능력 소재의 영화 ‘염력’(2018), AI 전투용병이 주인공인 넷플릭스 영화 ‘정이’(2023),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2021) 등을 두루 연출했다.

쉬지 않고 작품을 내놓는 다작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대체 언제 쉬세요?” 그의 인터뷰에선 종종 이런 질문이 나온다. 그러면 그는 “저녁에 퇴근하고 쉰다”며 머쓱하게 웃곤 한다. 끊임없는 창작의 동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감사하게도 함께 작업을 하자는 제안을 여기저기서 받는데 그때마다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해내고 싶다’는 생각이 저를 또 움직이게 하는 거죠.”

올해 공개를 앞둔 작품만 2편이나 된다. 제작비 5억원의 저예산 영화 ‘실낙원’과 각본 및 책임 프로듀서로 참여한 일본 넷플릭스 시리즈 ‘가스인간’이다. 최근에는 메디컬 좀비 소설 ‘닥터 아포칼립스’를 진건우 작가와 함께 집필하기도 했다. 연 감독은 “다양한 작업을 해볼 수 있다는 게 창작가로서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지친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오히려 (바쁘게 일하는) 요즘이 제일 재미있다”며 웃어 보였다.

제작 규모를 넘나드는 연 감독의 자유로운 창작 활동도 계속된다. 지난해 사비 2억원을 들여 만든 초저예산 영화 ‘얼굴’로 비평과 흥행 면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 그가 200억원짜리 대작 ‘군체’에 이어 다시 작은 영화 ‘실낙원’을 선보이는 것이다. 연 감독은 “‘얼굴’ 작업 이후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면서 “언젠가는 다시 인디(독립영화계)로 돌아가고 싶다”고 고백했다.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작업하는 것이 참 재미있더라고요. 예를 들면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영화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제 나이 이제 쉰이 다 돼가는데, 지난 10년 가까이 넷플릭스와 극장용 대형 작품을 위주로 산업 내에서 영화 만드는 일을 해왔다면 앞으로 10년은 신기한 작업들을 많이 해보고 싶습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