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딱 4시간만 여는, 여의도 밀크티 가게의 비밀[한우물보고서]

백재연 2026. 5. 29.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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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밀키웨이 밀크티' 사장 최선경(44)씨가 자신이 만든 밀크티를 들어보이고 있다. 권현구 기자


지하의 냄새는 보통 무겁기 마련이다. 지난 21일 찾은 서울 여의도 정우빌딩 지하 1층 식당가도 마찬가지였다. 해장국 떡볶이 삼계탕 칼국수…. 크고 작은 식당 약 20곳이 모여있는 이곳도 점심시간이 다가올수록 온갖 냄새가 뒤섞였다.

그런데 복도 안쪽으로 걸어 들어갈수록 묵직한 냄새들이 조금씩 옅어지기 시작했다. 대신 다른 무언가가 천천히 그 자리를 채웠다. 홍차 잎이 뜨거운 물에 풀어지고, 우유가 냄비 가장자리에서 데워지는 냄새. 달큰하고 은은해 냄새라기보다는 향기에 가까운 것이 복도 한 켠에서 부드럽게 퍼지고 있었다. 노란 불빛이 새어 나오는 밀크티 전문점 ‘밀키웨이 밀크티’(이하 밀키웨이)였다.

2평 가게, 메뉴 하나, 사람 하나
서울 여의도 정우빌딩 지하 1층의 지도. 빨간색 동그라미가 그려진 곳이 '밀키웨이 밀크티'가 있는 곳이다.

밀키웨이 밀크티 가게의 모습. 그가 좋아하는 음악, 소설, 시집, 영화 포스터로 빼곡하게 채워져있다. 권현구 기자

6.6제곱미터(㎡), 실평수 2평 남짓한 이 공간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사장 최선경(44)씨다. 메뉴도 단 하나다. ‘로얄 밀크티 6000원’. 가게는 작았다. 손님 공간이 1평쯤이었고, 나머지 1평이 밀크티를 만드는 공간이다. 얼음을 만드는 대형 정수기와 우유를 보관하고 여분의 얼음을 얼려두는 2단 냉장고, 화구 7개짜리 가스레인지, 작은 개수대와 손바닥 크기의 냄비 20개가 쌓여있는 식기 건조대로 채워져 있었다.

그는 보통 영업 시작 두 시간 전인 오전 10시쯤 출근한다. 전날 마감하며 다음 날 준비를 대부분 끝내놓기 때문에 크게 할 일은 없다. 불을 켜고, 입간판을 내놓고, 그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은 뒤에는 이른 점심을 챙겨 먹는다.

밀키웨이 밀크티의 메뉴판. 메뉴는 단 하나다.


“안녕하세요, 밀키웨이입니다.”

오전 11시 56분, 첫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손님이 9개의 찻잎 중 하나를 고르자 최씨는 늘 하는 말을 건넸다.

“따뜻하게 드릴까요, 시원하게 드릴까요.”

주문을 받은 최씨는 냄비에 찻잎을 계량해 넣고 뜨거운 물을 조금 담았다. 가스레인지에 냄비를 올렸다. 뜨거운 물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자 우유를 부었다. 다시 조금 더 끓였다. 홍차 잎이 우유에 진하게 우러나는 짧은 시간 동안 다음 주문을 받았다.

12시가 넘자 본격적으로 손님이 몰리기 시작했다. 7명이 둘러 앉을 수 있는 가게 안의 유일한 테이블은 금세 찼고, 가게 밖 복도에는 주문한 밀크티를 기다리는 직장인 10여명이 줄을 섰다.

최씨가 밀크티를 끓이고 있는 모습. 권현구 기자


서여의도에서 근무하는 홍성인(43)씨도 이날 팀원 셋을 데리고 밀키웨이를 찾았다. 홍씨는 “팀원들에게 커피보다 좋은 걸 대접하고 싶을 때 이곳을 찾는다”며 “점심으로 옆 가게에서 해장국을 먹었는데, 가게에 가까워질수록 해장국 냄새에서 밀크티 향으로 바뀌는 게 느껴져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손님이 몰려들어도 최씨의 손에는 조급함도 흔들림도 없었다. 찻잎을 계량하고, 냄비에 뜨거운 물을 붓고, 우유를 더하고, 끓어오르는 냄비를 확인하며 주문을 받았다. 손님을 향해 몸을 돌렸다가 다시 화구를 향해 돌아서기를 반복했다. 끓어오른 밀크티를 일회용 컵에 부을 때는 거름망에 남은 한 방울까지 빠지도록 냄비로 망을 탁탁탁 두드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밀크티의 맛과 향을 한층 살려주는 수제 시럽을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이스 주문이 들어오면 컵 안에 찻잎 필터를 넣었다. 차가 식으며 향이 약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마시는 동안에도 밀크티는 조금씩 더 우러났다. 손님이 몰리는 사이에도 짬이 생기면 10초, 20초를 이용해 앞선 냄비를 재빠르게 헹궈냈다.

데자와를 좋아하던 연대생
로얄 밀크티는 고정 메뉴 8개와 매달 바뀌는 스페셜 메뉴 1개로 운영중이다. 총 9개의 찻잎 중에 하나를 고르면 된다.

01학번인 그가 밀크티를 좋아하게 된 건 대학 시절이었다. 연세대를 졸업한 최씨는 학창시절 자판기에서 파는 데자와를 즐겨 마셨다.

“차에 조예가 깊다기보다는 그냥 좋았어요. 학교 졸업 후 군대에 가서 앞으로 뭘 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문득 왜 밀크티만 전문으로 파는 가게는 없을까 싶더라고요.”

있으면 분명 잘될 것 같았다. 2007년 8월 제대한 그는 넉 달 뒤 이화여대 앞에 밀키웨이 1호점을 열었다. “언젠가 하고 싶었던 일이라면 지금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신촌에서 대학 생활을 보내 익숙하기도 했지만, 이대를 고른 데는 나름의 계산이 있었다.

최씨가 출근하면 가장 먼저 꺼내놓는 입간판. 권현구 기자


“그 당시에 이대가 데자와가 제일 많이 팔리는 학교라는 풍문이 있었어요. 학생과 교직원을 합치면 2만명이라는데, 그중 10%만 밀크티를 좋아해도 2000명이고, 그중 10%만 가게에 와도 하루 200잔은 팔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죠. 세 달 해보고 알았죠. 안일했구나.”

당시 밀크티는 지금처럼 익숙한 음료가 아니었다. 쿠폰을 만들어 아침 등굣길에 나눠줬고, 학교로 배달도 해봤고, 잘생긴 아르바이트생도 고용해봤다. 군을 막 제대한 25살 청년은 경영 노하우도 없었다. 장부와 현금은 항상 맞지 않았다. 카드 세 개를 돌려막았다. 빚은 눈덩이처럼 불었다. ‘이 가게랑 같이 죽는구나’라는 생각까지 했다.

밀키웨이 밀크티에는 꿈을 적는 '드림북'이 있다. 최씨는 2007년부터 현재까지 쌓인 모든 드림북을 보관 중이다.


2012년도 드림북에 적혀있던 한 대학생의 '꿈'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접었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미래가 보여서가 아니었다. “자식을 키울 때 미래가 보여서 키우는 게 아니라, 내 자식이니까 키우는 거잖아요. 밀키웨이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렇게 3년을 버텨 2010년, 하루 벌어 하루 살 수 있을 정도까지는 자리를 잡았다. 밀크티 맛이 한층 깊어진 것도 그 무렵이었다. 어떻게 하면 좀더 깊은 맛이 날까 고민을 하던 어느날, 찻잎을 끓여봤다. “맛이 달랐어요. 살아있는 향이 나더라고요.”

물론 처음부터 맛에 자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창업 초기에는 자신이 만든 밀크티를 파는 일이 부끄러웠다고 했다. 3년쯤 지나서 ‘내가 먹어도 맛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10년이 지났을 때는 확신이 생겼다. ‘세상에서 이보다 맛있는 밀크티는 없다.’

한동안은 여러 방식으로 차를 우렸다. 재료를 아낌없이 넣어 남는 게 거의 없었다. 장사는 수완이 있어야 하는 일이었지만, 그에게 있는 재주는 다른 쪽에 가까웠다. 하면 계속하는 것. 집중하고, 연구하고, 조금씩 발전시키는 것. 냄비가 끓는 시간, 우유를 붓는 타이밍, 향이 살아있는 순간은 손이 먼저 알았다. 최씨는 이를 “내 손만이 아는 감각”이라고 설명했다.

숙명여대 학생이 그려서 가져다 준 팬아트. 최씨는 이를 냉장고에 소중하게 붙여 놓았다.


이대점이 자리를 잡아갈 무렵인 2016년, 숙대입구에 2호점을 열었다. 여동생이 숙명여대를 나온 인연으로 익숙한 곳이었다. 하지만 대학가 장사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었다. 학기 중에 팔고 방학에 잃는 패턴이 반복됐다. 방학이 끝나고 이제 좀 해봐야지 싶으니 메르스가 터졌고,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몇 달씩 장사가 안 되는 시절이 반복됐다.

아이스 밀크티를 컵에 담고 있는 최씨. 최씨의 담담한 성격처럼 밀키웨이 밀크티의 일회용 컵과 컵홀더에는 그 어떠한 로고도 이름도 없다. 권현구 기자


같은 해 여의도에 3호점을 열었다. 여의도는 그가 여동생과 한때 자취했던 동네였다. 이대와 숙대처럼 익숙했다. 여의도는 대학가와 달랐다. 대학생들은 호기심에 낯선 음료를 사 마실 때가 있었지만, 직장인들은 짧은 점심시간 안에 실패하지 않을 선택을 하려 했다. 익숙한 커피 대신 밀크티를 고르는 데도 장벽이 있었다.

반면 직접 끓인 밀크티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손님들도 있었다. 냉침이 아닌 직화 밀크티가 어떤 것인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아는 사람들이 생겼다. 한 번 장벽을 넘어선 이들은 계속 이곳을 찾았다.
사라진 가게들, 남은 시간
그렇게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던 중 2020년 코로나가 들이닥쳤다. 가장 먼저 무너진 곳은 대학가였다. “고민할 새도 없었어요. 강의가 비대면으로 전환되면서 순식간에 고사 직전이 됐으니까….”

이대와 숙대점을 차례로 닫았지만, 여의도점이라고 사정이 나은 것은 아니었다. 직장인들도 재택근무에 들어갔고, 점심시간마다 이어지던 줄은 끊겼다. 팬데믹 3년 가까이 가게에서 난 구멍은 그의 아내가 메웠다. 최씨는 “매월 돈이 계속 구멍이 나니까 아내가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계속 도와줬다. 사실상 아내가 버텨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최씨의 꿈에는 아직도 이대점이 나온다. “급하게 닫아서 충분히 애도의 시간을 가지지 못한 건지, 종종 꿈에 이대점이 나와요. 주변에서는 거기서 아내를 만났으니 남는 장사가 아니냐고 했지만, 한동안은 그 말도 위로가 안 되더라고요.”

지난 3월 5일 다녀간 세모녀가 적고간 드림북의 내용. 이대 79학번 엄마와 07, 17학번 자매가 다녀갔다.


밀키웨이 이대점은 최씨에게 장사 이상의 곳이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 수 있었고, 좋아하는 책을 둘 수 있었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던 곳. 매출이나 순이익 같은 숫자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아내 역시 역시 밀키웨이가 2007년 문을 열었을 때부터 찾던 단골이었다.

이날 가게를 찾은 직장인 박민영(34)씨도 2011년부터 밀키웨이를 다녔다. 이대점은 학생들로 늘 북적여서 교수 욕을 했다간 그 교수 귀에 들어갈 정도였다고 했다. 박씨는 “실제로 거기서 제 욕을 하는 걸 뒤에서 들은 적도 있어요”라며 웃었다.

박민영씨가 2014년 9월 자신의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밀키웨이에 방문했다는 글. 그의 소셜미디어에 '밀키웨이'를 검색하니 글 수십개가 쏟아졌다. 박민영씨 제공


박씨는 이날도 까치산역 인근에서 일을 마치고 30분을 달려 가게를 찾았다. “공간은 달라졌지만 색감이나, 우유와 차를 끓이면서 나는 향, 사장님의 분위기가 그대로예요. 바뀐 것 같은데 같은 곳인 게 느껴지는 거죠.”

“요즘은 모든 게 빠르게 변하고 휘발되잖아요. 근데 여기는 시간이 퇴적되는 느낌이에요. 손님들도 계속 바뀌겠지만, 장소가 남아 있는 걸로 시간도 계속 쌓여간다는 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점심시간이 끝난 후 쌓인 우유곽을 헹구고 있는 최씨.


오후 2시, 직장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가게는 다시 조용해졌다. 최씨는 점심시간에 밀크티를 만드느라 다 쓴 1ℓ 우유곽 20개를 하나하나 헹궈 납작하게 접고, 개수대에 쌓인 냄비들을 깨끗하게 닦았다. 얼음틀 서너 개에 정수를 넣고 냉동실에 얼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얼음 정수기가 미처 얼음을 다시 만들기도 전에 손님이 몰릴 때 쓰기 위해서다. 우유며 찻잎이며 부족한 것들을 주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버틴 시간이 아니라, 쌓아온 시간
조지오웰이 '차(tea)'에 대해 쓴 짧은 논문에서 발췌한 내용이라고 한다.

그의 20대와 30대는 고단함만큼이나 그 시절에만 있는 행복이 있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좋아하는 책을 두고, 손님들이 테이블마다 앉아 직접 끓인 밀크티를 마시던 풍경. 최씨는 “훗날 세상을 떠나 천국에 가면 테이블마다 손님들이 제가 만든 밀크티를 마시며 쉬고 있고, 저는 그걸 흐뭇하게 보면서 책을 읽거나 소일거리를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꾼다”고 말했다.

물론 가게를 꾸려가는 일이 늘 낭만적이진 않았다. 여의도점에서 우유가 남으면 이를 등에 지고 이대와 숙대를 오갔고, 냄비를 들고 다니던 시간은 목과 허리에 무리를 남겼다.

40대가 된 지금은 조금 다른 리듬을 갖게 됐다. 코로나를 지나며 가게는 여의도 한 곳으로 줄었고, 건강에 맞춰 영업시간도 조정됐다. 그는 많이 파는 것보다 아내와 소담하게 일상을 꾸려가며, 오래 무너지지 않는 쪽을 택했다. 지금 밀키웨이는 목요일을 제외한 평일 오후 12시부터 4시까지, 하루 단 네 시간만 문을 연다. 최씨가 운영하는 독서클럽이 열리는 목요일만 오후 7시까지 연장 영업을 한다.
벽에는 영화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 포스터가 나란히 붙어 있다. 같은 배우와 감독이 9~10년 터울로 찍은 연작이다. 최씨는 “이 공간에 세월을 담고 싶었다”고 했다. 권현구 기자

한 잔이 누군가의 단골 가게가 될 때
최씨는 언젠가 들은 말도 오래 기억하고 있었다. 요즘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질문에, 한 학자가 “단골 가게를 많이 만들어라”고 답했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이 좀 남더라고요. 단골 가게가 그런 정서적인 지지가 돼줄 수 있구나. 40대 넘어가면서 좀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었고, 한 잔의 밀크티가 손님들한테 작은 위로가 되면 좋겠다는 마음도 생겼어요.”

잠시 말을 멈춘 최씨는 다시 덧붙였다. “특별한 재주가 있는 건 아니에요. 다만 하나를 붙잡으면 오래 하는 편이에요.”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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