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짐 원인 파악하려 30㎝ 틈새 들어갔다” 안전진단 대부 별세

김민욱 2026. 5. 28.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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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서울 중구 서울역고가차도(현 서울로7017)의 균열을 점검하고 있는 고(故) 이채규 한국구조물안전연구원 대표의 생전 모습. 연합뉴스

“안전 진단(診斷)계의 큰 별 잊지 않겠습니다.”

지난 26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서소문고가차도 붕괴 사고 현장에서 유명을 달리한 이채규(64) ㈜한국구조물안전연구원 대표를 향한 김병일 한국건설안전기술원 수석연구원의 추모글 일부다. 과거 고인과 함께 안전점검 현장을 다녔던 김 수석연구원은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에서 조의를 표한 뒤 부의 봉투 겉면에 “기술·사회·인문(분야)에 대해 도란도란 얘기 나눴던 시간들. 진단에 진심이셨던 박사님. 아직도 믿어지지 않습니다”라며 이같이 적었다.

고인은 최근 발생한 서소문고가 사고 당일 긴급 요청을 받고 현장으로 향했다. 서소문고가는 철거공사 진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낙하물 사고를 방지하려 구조물 바로 아래에 공중비계를 촘촘히 설치해둔 상태였다. 구조물 바닥과 비계 사이 간격은 30㎝ 정도에 불과하다.

비계에 가려져 고가 하부상태가 보이지 않자 고인은 직접 눈으로 슬라브(콘크리트 상판) 일부가 2.9㎝가량 처진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비계 위로 기어가면서까지 진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현장을 맨눈으로 점검하던 중 갑작스러운 붕괴가 발생했고, 결국 사고를 피하지 못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위험한 곳에 늘 앞장서서 들어갔던 인물”이라며 추모했다.

고인은 국내 토목 구조물 안전진단 분야의 개척자이자 권위자로 꼽힌다. 윤양배 전 대한산업안전협회 회장은 “30여년간 콘크리트의 균열을 읽고, 철근의 부식을 짚어낸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경부고속철도 경기도 광명~부산 구간과 광주대구고속도로(옛 88고속도로), 한강대교 등 국가 중요 시설물과 도심 구조물의 정밀안전진단을 이끌어왔다. 또 1995년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 제정 당시부터 정밀안전진단업의 기틀을 닦은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주요 구조물 사고 현장에는 고인이 있었다. 실제로 지난 2012년 사망자 2명을 포함해 14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경기 파주시 장남교 공사현장 붕괴사고 때에는 교량붕괴 원인 규명 작업에 참여했다. 결국 장남교는 잘못된 시공 순서가 사고 원인으로 지목됐다.

또 고인은 지난 2014년 서울 송파구 석촌지하차도 일대에서 대형 지반침하와 지하 동공(洞空·텅 빈 곳)이 발견됐을 당시 서울시 민간합동조사단 핵심 조사위원으로 참여해 침하 원인을 밝혀내는 데 힘을 보탰다. 조사단은 석촌지하차도 기둥 25곳의 균열을 찾아내는 등 추가 대형 사고를 막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고인은 이듬해 서울역고가차도(현 서울로7017)가 차량 통행을 감당하기에는 이미 수명을 다한 상태라는 점을 객관적인 진단으로 경고했다. 관련 업계에서는 ‘첫 경고’로 알려져 있다. 그는 교각 표면을 약 10㎝가량 벗겨내 철근 상태를 직접 확인했다. 고가에서 공중정원으로의 변신이 결정됐을 때는 “최소 100년은 안전이 보장돼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최고 수준의 보강 작업을 실무적으로 진행했다.

고인은 늘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현장형 전문가였다. 안전 기준에 있어서만큼은 작은 균열이나 오차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생전 그는 “시설물 유지관리는 집 안 청소와 같아서 아무리 잘해도 티가 나지 않는다”며 “하지만 작은 방심 하나가 사회·경제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초래한다는 사례를 수도 없이 봐왔다”고 강조했다. 이어 “(구조물은) 어린아이를 돌보듯 같이 늘 긴장감을 갖고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한다”고 후배들에게 당부했다고 한다.

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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