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 없는 선거제도가 민주주의를 키운다
[김찬휘 기자]
퀴즈로 시작해 볼까요? 2024년 치러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국 최저 득표율로 당선된 사람은 누구일까요? 힌트는 경기 화성시을 선거구입니다. 힌트 하나 더 드리면 개혁신당 의원입니다. 네! 이준석입니다. 이준석은 지역구에서 42.41%의 득표율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후보에게 던진 57.59%의 표는 의석으로 반영되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 것이죠. 이런 표를 '사표'(wasted vote)라고 부릅니다.
대한민국 선거에서 이렇게 사표가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국회의원 의석 300석 중 무려 254석(84.66%)을 '소선거구제 지역구'로 뽑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소선거구제'라 부르는 이 선거제도의 정식 명칭은 '다수대표제'인데, 말 그대로 무조건 표를 가장 많이 얻은 후보 1명이 대표로 당선됩니다. 한국어로는 '1등 당선제'라고 부르면 가장 쉬울 것 같습니다. 학교 반장 뽑는 제도와 같은 이것은 지방선거 광역의회(시·도의회) 선거에도 사용됩니다.
38개 OECD 소속 국가 중에 이 '반장 선거제'로만 국회의원을 뽑는 나라는 딱 4개입니다. 영국(UK), 프랑스, 미국, 캐나다입니다. 이 나라는 비례대표제 자체가 없습니다. 잘 보면 미국, 캐나다는 영국의 식민지였으니까 이 제도는 영국과 프랑스의 제도, 즉 절차적 민주주의를 가장 먼저 발전시킨 나라의 제도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사람이 자신의 대표를 뽑아야 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었던 '낡은' 제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수대표제'는 지역구에서 1등이 될 수 있는 정당만이 살아남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양당제'를 강화합니다. 민주당 아니면 공화당인 미국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정치 시스템이 민의를 잘 대변하는지의 여부는 민주주의 발전에서 매우 중요한 지표입니다. 절반 이상의 표가 사표로 버려진다면, 그 표에 담은 유권자의 생각은 시스템 밖으로 배제되고 민주주의는 불안정해질 것입니다. 유럽은 이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했습니다. 그래서 사표가 가장 적게 발생하는, 유권자가 찍은 표가 그대로 의석으로 반영되는, 정당의 득표율대로 전체 의석이 배분되는 제도를 발전시켰습니다. 그것을 '비례대표제'(proportional representation)라고 부릅니다.
저는 비례대표제란 말이 일반인에게 매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영어를 보면 proportion이 비율이니까, 정당의 득표 '비율'대로 대표를 정하는 제도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내 표 그대로'(제가 속한 단체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의석을 나누는 것이 사표가 없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임이 분명하므로 OECD 38개국 중 27개국은 100% 이 방식으로만 국회의원을 선출합니다. 하지만 거대 양당의 힘이 강한 4개국은 이 방식을 여전히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럼 100% '1등 당선제'도 아니고 100% '내 표 그대로' 방식도 아닌 나라들은 어떻게 국회의원을 뽑을까요? 두 개를 섞어서 뽑습니다. 바로 대한민국이 이러한 경우에 속합니다. 그러나 같은 제도라고 해도 일본, 헝가리, 이탈리아 같은 나라와, 독일, 뉴질랜드 같은 나라의 세부 방식이 다릅니다. 한국은 이 모든 나라와 또 다릅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말씀드리도록 하죠.
이제 본론으로 들어와서 대한민국의 국회 및 지방의회 선거제도를 생각해 봅시다. 국회와 광역의회 선거에서 우리는 두 장의 투표용지를 받습니다. 한 장은 '1등 당선제'로 뽑는 지역구 의원 선거, 다른 한 장은 '내 표 그대로' 방식으로 뽑는 정당투표입니다. 지금까지의 얘기에 비추어 본다면 지역구 선거는 사표가 많이 생길 것이고, 정당투표는 사표가 없거나 적을 것이라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1등 당선제'로 뽑는 지역구는 많은 사표가 생깁니다. 하지만 '내 표 그대로' 방식의 비례대표 정당투표에서도 많은 사표가 생깁니다. 왜 그럴까요?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국회의원 선거는 3% '봉쇄조항'이, 지방의회의원 선거는 5%의 봉쇄조항이 있기 때문입니다. 봉쇄조항은 그 득표율을 넘지 못하면 비례 의석을 할당받을 자격을 봉쇄한다는 의미입니다. 봉쇄조항은 극단적인 소수정당의 의회 진입을 막고 소위 '정당 난립'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생겼지만, 정작 극단적 정당의 의회 진입은 막지 못하고 다양한 소수정당의 의회 진입만을 봉쇄해 왔습니다.
예를 들어 독일 연방의회는 5% 봉쇄조항이 있는데 '나치당' 같은 극단 세력의 의회 진입을 막으려는 의도가 컸습니다. 하지만 나치당의 후예인 '독일을 위한 대안'이 의회에 진입하는 것을 막지 못했고, 그 정당은 이제 151석이나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네덜란드는 봉쇄조항이 없습니다. 의회 의석이 150석이므로 1/150, 즉 0.67%만 득표하면 국회의원 1석이 생깁니다. 사표가 거의 0에 가깝습니다.
물론 네덜란드 시스템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내 표 그대로' 의석이 배정되기 때문에 거대 정당이 정치를 농락하고 소수 시민의 의견이 배제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거대 양당이 번갈아 가면서 정권을 독식하는 일은 있을 수 없고, 대신 '연합 정치'가 일상화됩니다. '연립'만이 정부 구성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네덜란드는 15개 정당이 원내정당이고, 그중에는 튀르키예 이주자 중심의 정당, 동물권 정당도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2020년 노동당, 녹색당, 미래당, 사회변혁노동자당, 진보당이 제기한 국회의원 선거 3% 봉쇄조항에 대해 2026년 1월 29일 위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헌법재판소는 3% 봉쇄조항 위헌 결정문에 그 조항이 "소수의견의 정치적 결집을 봉쇄하고 정치적 다양성과 정치과정의 개방성을 훼손"한다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헌재가 이 결정을 6년이나 지연한 결과, 2024년 총선에서 2.14% 정당 득표율을 기록한 녹색정의당은 이 봉쇄조항에 걸려 의석 1석을 도둑맞아 '원외정당'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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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방의회 5% 봉쇄조항 헌법소원, 신속결정하라. 헌법재판소 앞에서 '내 표 그대로 - 선거제도전면개혁연대'가 릴레이 1인시위를 하고 있다. |
| ⓒ 김찬휘 |
봉쇄조항 외에도 비례대표 선거가 사표를 양산하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두 번이나 연속으로 출몰했던 '비례위성정당'은 거대 양당이 비례대표 의석까지 독식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비례위성정당 등장으로 비례대표 선거에서도 사표가 지역구 선거 수준으로 치솟았습니다.
또 하나, 지방의회 비례대표 선거는 의석이 너무 적습니다. 기초의회 비례대표 의석은 90% 이상이 1-2석에 불과합니다. 1석일 경우 정당투표 득표율 1등 정당만이 비례대표 의석을 가져가게 되니, '1등 당선제'와 똑같은 규모의 사표가 생깁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무려 513명의 무투표 당선자가 생겼는데, 기초의원 비례대표에서만 97명이 생긴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사표는 유권자의 '사표 거부 심리'를 자극하여 "될 사람을 찍자"는 행동을 유발하므로 기득권 양당 정치를 강화합니다. 또한 사표는 자기가 던진 표의 '효능감'을 떨어뜨려 투표 참여의 의지 자체를 없애 버립니다. 당선권에서 멀어진 후보는 출마 자체를 포기하게 되니 무투표 당선이 속출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헌법 제67조의 '평등 선거' 원칙을 공직선거법 상에서 제대로 이행하는 것입니다. 평등선거란 단순한 '1인 1표'의 형식적 평등은 물론이고 각 표가 선거 결과에 미치는 영향력이 실질적으로 같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즉 유권자가 던진 표가 '내 표 그대로' 효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등가성'의 원칙입니다.
'내 표 그대로-선거제도전면개혁연대'는 올해 4월 1일에 출범했습니다. "사표가 엄청 많이 나온대"라는 말이 만우절의 거짓말이 되는 날을 앞당기기 위해 '내 표 그대로'는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내 표 그대로'의 활동에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내 표 그대로-선거제도전면개혁연대' 집행위원장 김찬휘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채널]평등의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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