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삼성 노사 합의안에 '원팀'은 없었다
삼성의 초격차 이면에는 공생 구조가
회사는 부문 간 시너지·통합 고려해야

삼성전자 노사의 임금 협상 합의안이 가결되며 길었던 갈등이 봉합 수순에 들어갔다. 사상 최대 총파업 위기를 막고 노사 충돌이 극단까지 치닫지 않았다는 점은 다행이다. 다만 이번 사태는 삼성 내부에 더 근본적인 질문 하나를 남겼다. 삼성은 여전히 '원팀'인가.
이번 협상 과정에서 갈등을 일단락시킨 건 메모리 중심의 6억원짜리 성과급이었다. 경쟁사 수준의 보상을 요구하던 메모리 직원들의 불만을 잠재운 '통 큰 결단'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수익성 부진이 이어진 파운드리·시스템LSI 사업부는 사실상 성과 없는 조직처럼 취급됐고, TV·가전 등 완제품 부문 역시 상대적으로 적은 보상이 이뤄지면서 특정 조직만을 위한 합의라는 불만도 이어졌다. 물론 성과주의는 기업으로선 당연한 원칙이다. 메모리 사업이 지난해 삼성 실적을 떠받친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문제는 삼성이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이 단순한 '성과 분배'에서만 비롯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과거 삼성의 경쟁력은 '초격차' 정신에서 나왔다.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수준까지 기술과 생산성을 끌어올리겠다는 집단적 목표였다. 그 과정에서 삼성은 사업부 간 협업과 지원을 바탕으로 시너지를 키워왔다. 반도체 사업이 흔들릴 때는 모바일이 버텼고, 시스템반도체를 키우기 위해 스마트폰에 자사 칩을 적극 탑재하기도 했다. 과거 활황기였던 TV·가전 등 완제품 사업 역시 삼성 반도체의 안정적인 수요처 역할을 하며 함께 성장해왔다. 메모리 중심 회사였던 삼성전자가 종합반도체기업(IDM)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메모리·비메모리 간 공생의 구조가 있었다.
오늘날 삼성의 메모리 경쟁력 역시 완전히 메모리만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회사는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 세계 최초 양산 소식을 전하며 '세계 유일의 IDM 기업' 역량을 강조했다. HBM 역시 패키징과 설계, 파운드리 협업 역량이 함께 맞물려 만들어진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특히나 더욱더 첨단 기술이 요구되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시대에는 메모리와 비메모리의 경계가 갈수록 흐려지고 있다. 메모리 인재에 대한 적극 투자도 필요하지만 '메모리 다음'을 만들어낼 새로운 성장 축에 대한 고민도 병행해야 한다.
산업의 경쟁력은 견고한 생태계에서 나온다. 대만이 반도체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TSMC를 중심으로 미디어텍 같은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들이 함께 성장한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특정 사업만의 성과로는 산업 전체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시대다. 이제 삼성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보상 논쟁을 넘어 메모리·비메모리·완제품 사업이 어떤 방식으로 다시 공생 구조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각 사업 부문을 실적과 성과로만 평가하고 줄을 세우기보단 부문 간 시너지와 통합을 고려한 전략이 필요한 때다.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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