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쟁'기념'을 다시 묻다

신스완 2026. 5. 28.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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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쟁 '기념'에 반대한다 2화] 반기념비로 살펴보는 새로운 기억의 방식

[신스완 기자]

기자말
연간 방문객 300만 명을 넘어선 용산 전쟁기념관은 대한민국의 전쟁사를 상징하는 대표적 기념시설이다. 그러나 이 공간이 보여주는 국가주의·군사주의적 시각과 반인권적 전시에 대해 시민사회는 오래전부터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으며, 변화의 필요성 또한 꾸준히 이야기되어 왔다. 이번 연재에서는 <전쟁기념관을 바꾸는 시민활동가들의 모임 탄탄이>의 활동과 함께, 전쟁을 '기념'하는 공간을 시민의 힘으로 새롭게 상상하고 바꾸려는 시민·활동가·작가의 이야기를 총 8회에 걸쳐 소개한다.
미국에서 베트남 전쟁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얼마 전 해외파병실의 베트남 전쟁 전시를 구경할 목적으로 용산의 전쟁기념관에 방문한 적이 있다. 전쟁'기념'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전쟁과 한국군의 공로와 성과를 내세우고 민족주의와 애국심을 고양하고자 하는 기념물이 여럿 보였다.
시대에 뒤떨어진 반공주의와 민족주의적 국가관은 둘째치더라도, 해외파병실의 한국군 파병을 미화하는 베트남 전쟁 전시는 오히려 그 뒤에 숨겨진 진실을 떠올리게 했다. 특히,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놓인 채명신 장군의 "한국군은 백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드라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한다"는 훈령을 재현한 나무 팻말은 이제는 잘 알려진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애써 감추려는 것처럼 보였다.
 전쟁기념관 해외파병실 베트남전쟁 전시관의 채명신 장군 훈령 전시에 시민활동가 모임 탄탄이가 '거짓' 포스트잇 액션을 진행했다. 한국군 민간인 학살의 진실을 부정하는 전시에 대한 항의 메시지를 담은 비폭력 직접행동이다.
ⓒ 한베평화재단
시대착오적인 전쟁 미화가 주가 되는 전시에 의문이 생겨 전쟁기념관 홈페이지에 문의를 남겨보았다. 한국군의 공로만을 부각하는 전시가 과연 좋은 전시인지, 한국군의 공로와 과오를 모두 성찰하는 새로운 전시 방향을 고려하고 있는지, 전쟁기념관의 의견을 물었다. 수개월이 지난 후, 전쟁기념관은 전시는 "대한민국을 지킨 분들의 공헌을 기리는 공간"이며 한국군의 명암(明暗) 중 '명'에 집중하는 것은 전쟁기념관이라는 공간의 특수성이며, 암을 은폐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다고 답변했다.

전쟁기념관이 말하는 공간의 특수성은 무엇일까? 전쟁기념관이 대한민국을 수호한 자의 공헌을 기리는 공간이라면, 한국의 역사에 새겨진 전쟁의 고통은 같이 기릴 수 없는 것인가? 기념관의 전시에서 전쟁에 참여한 자는 모두 '영웅'이 되지만, 전쟁으로 스러진 사람, 동물과 자연은 전쟁의 '암'으로 남아 영웅의 '명'에 가려진다. 무언가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은 반드시 영웅적 공로를 치하하는 방식이어야 할까?

이미 해외에서는 기념과 기억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 기억의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기억과 역사가 하나의 굳어진 이야기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각자의 일상에서 마주하는 여러 기억의 파편들을 스스로 찾아내 자신만의 하나의 기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공간이 되고자 하는 새로운 기억/기념의 시도를 독일과 미국의 사례로 알아보고자 한다.

기념을 반대하기: 독일의 반기념물, 아슈로트 분수

독일의 도시 카셀의 한 유대인 사업가가 시청 앞에 선물의 의미로 분수를 설치한다. 사업가의 이름을 따 "아슈로트 분수"로 불리며 도시의 중앙에서 시민들에게 하나의 자랑거리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던 분수는 1939년 4월, 나치 세력에 의해 "유대인 분수"로 명명되어 철거되었으며, 도시의 유대인들 역시 모두 징집되어 유럽 각지에서 살해당했다. 전후 1960년대, 카셀 시는 과거의 분수를 복원하고자 한다. 건축가 호르스트 호하이젤(Horst Hoheisel)은 분수를 전쟁 이전의 모습으로 완벽하게 복원하는 것이 홀로코스트와 유대인 차별·학살의 역사가 대중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는 결과를 만들 것을 우려했다.

호하이젤은 분수의 기존 형식을 그대로 재건하는 것이 아니라 네거티브 폼(기존의 형상을 반전시킨 모습)으로 설계하는 안을 제안했다. 원래의 분수가 위치한 토대를 중심으로 지반 위의 분수를 땅 아래로 뒤집어 놓은 디자인의 분수는, 위로 물이 솟는 것이 아닌 지면 아래로 물이 떨어지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지면의 유리를 통해 지하의 분수를 바라볼 수 있다. 호하이젤은 우뚝 솟은 기념비적인 건축물의 부재가 사람들에게 사라진 분수로 상징되는 학살과 폭력의 역사를 성찰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길 원했다. 행인들은 얼마나 깊을지 모를 지하로 떨어지는 물의 거센 소리를 들으며, 분수(가 있었던 지면) 위에 서서 도시에 새겨진 기억을 스스로의 경험과 엮어 자신만이 기억하는 방식을 만들어낸다.
 카셀 시청 앞 광장에 위치한 호하이젤의 분수 위에서 사람들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분수는 일상 속에서 걸어가다 잠시 멈추어 과거의 역사와 기억을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이 되어준다.
ⓒ Horst Hoheisel
이러한 호하이젤의 디자인은 독일 내에서 파생된 "반기념물(counter-monument)"이라는 개념을 차용한 것으로, 반기념물은 기념물과 기념관들이 과거의 역사, 특히 독일의 홀로코스트라는 스스로의 과오를 기억하는 데 있어 기념물의 기본 전제에 의문점을 던진다. 제임스 영(James E. Young)이 지적하듯, 기념물은 주로 국가의 명예, 희생 혹은 영웅적 서사를 민족국가주의적 방식으로 재현하고 미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의 완성된 물체와 예술품이자 설치물로 역사를 이야기하는 물체로써, 마치 역사가 기념물과 같이 변하지 않는, 완전히 해결되어 깔끔하게 하나의 서사로 정리된 무언가처럼 보이게 한다. 이러한 흐름에 반하여 반기념물이라는 개념은 역사의 가변성이 기억의 방식의 중심에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호하이젤은 기념물이나 건축물의 의미는 결국 건축가의 의도—어떤 재료를 사용하고, 어떤 디자인인가 등—에 의해서가 아닌 관람자가 만들어 가는 것임을 예술을 통해 반복적으로 이야기한다.
같은 맥락에서, 호하이젤에게 이 분수는 기념물이 아니라 행인으로 하여금 그 위에 서서 자신의 내면에서 연관된 기억을 찾아내고 만들어내도록 요청하는 하나의 초대장이다.

정의가 물처럼 흘러내릴 때까지: 미국의 시민 평등권 운동 기념비

독일의 아슈로트 분수를 비롯한 반기념물의 흐름이 제2차 세계대전의 홀로코스트와 독일의 과오를 반성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 있다면, 미국의 1950~60년대 가장 활발했던 시민 평등권 운동(Civil Rights Movement)의 기억/기념 방식은 한국의 베트남 전쟁 기억 투쟁의 장과 닮아 있다. 당시 흑인의 평등권 운동으로 시작해 번져 나간 운동은 지금까지도 미국 내에서 인종주의와 관련하여 기억의 정치의 중심에 있다. 트럼프 정권의 비호로 강세를 더욱 키워 나간 백인우월주의는 최근 미국의 공공교육에서 비판적 인종 이론의 배제와 인권 운동의 역사를 교육과 공공의 장에서 배제하는 것에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까지도 이어지는 인권 운동의 역사에 대한 공격과 축소는 한국의 한국군 베트남 민간인 학살과 전시 성폭력에 대한 정부와 일부 참전 군인단체의 격렬한 부정과 비난을 연상시킨다.

마야 린(Maya Lin)이 설계한 시민 평등권 운동 기념비(Civil Rights Memorial, 1989)는 트럼프 이후 미국의 정치적 상황이나 한국의 베트남 전쟁을 둘러싼 기억의 논쟁들을 미루어 보았을 때 더욱 시사적이다. 린은 시민 평등권 운동의 대표적 인물 중 한 명인 마틴 루터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의 유명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I Have A Dream)" 연설에서 인용된 다음의 문장에서 영감을 얻어 기념비를 제작했다:

우리는 정의가 물처럼 흘러내리고, 공정함이 거센 물살처럼 흐르기 전까지는 만족하지 않으며,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We are not satisfied, and we will not be satisfied until justice rolls down like waters, and righteousness like a mighty stream)

알라바마 주 몽고메리에 위치한 시민 평등권 운동 센터 정문 앞에 놓인 기념비의 해시계와 비슷한 모양을 한 상판에는 테두리를 따라 시민 운동의 주요 사건과 당시 사망한 40명의 역사가 타임라인으로 짧게 각인되어 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연설에서 발췌된 문장과 시민 운동 중 40명의 희생자에 대한 짧은 글만이 관람자에게 주어지는 '정보'의 전부이다. 손을 내밀어 만져 보아야 비로소 흐르는 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잔잔하게 흐르는 물은 상판에서 아래의 좁은 받침으로 떨어지면서 거센 물길이 된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인용한 문구를 그대로 재현해낸 것이다.
 미국 시민 평등권 기념비 상판에는 시민 평등권 운동의 주요 사건과 당시 사망한 40명의 이름이 각인되어 있다. 방문자들은 각인과 그 위에 흐르는 잔잔한 물을 느끼며 만져볼 수 있다.
ⓒ Balthazar Korab
기념비는 교육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시민 평등권 운동 센터는 처음부터 이 기념비가 교육적 목적을 가지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고, 실제로 매년 학생들과 시민들이 시민 평등권 운동의 역사를 배우고, 느끼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민 운동과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장소로서 존재해 왔다. 거리를 두고 설치물을 관람하는 보통의 기념관들과는 달리, 관람자들은 직접 기념비를 느끼며 그 위에 쓰인 역사를 읽는다. 관람자들은 흐르는 물, 기념비의 상판과 그 위에 새겨진 음각에 손을 대 보며 기념비와 시민 평등권 운동의 역사와 교감하며 각자 안에 떠오르는 연관된 기억과 스스로의 감정에 주목한다. 전쟁기념관처럼 거창한 이름과 웅장한 공간은 아니지만, 시민 평등권 기념비의 고요한 존재는 사람들의 일상에 스며들어 표면에 잔잔하게 흐르는 물결처럼 관람자에게 나지막한 기억의 파동을 준다.

정돈된 역사가 아닌 변화무쌍한 기억들의 역사로

역사와 기억의 가변성과 개인을 기억과 역사적 서사 형성의 중심에 놓는 호하이젤의 반기념물과 일상에 스며들어 개개인의 기억에 조용히 침투하는 마야 린의 시민 평등권 기념비는 새로운 방식의 기억의 정치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두 기념비 모두 웅장한 영웅적 서사의 재현을 통해 설치물을 보는 자에게 특정 감정을 자아내고자 하는 의도가 부재하다는 인상을 준다. 반대로, 격렬하고 들끓는 감정을 자아내지 않더라도, 이 두 기념비는 관람자가 분수 위에 서서, 혹은 흐르는 물을 느끼며 관련된 기억을 내면에서 천천히 찾아내고 구축할 기회를 마련해 준다.

직접적 경험의 세대와 그 후의 세대가 공존하는 지금, 기념관과 기념물이 과거를 기억할 방식은 기념물과 개인의 상호작용을 통해 개개인의 일상과 무의식에 스며 들어있는 기억을 찾아내는 장소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베트남 전쟁이 깔끔하게 표백되고 정돈된 하나의 역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베트남 전쟁의 기억들과 그 주체들—참전 군인, 파월 기술자, 한국군 민간인 학살의 피해자와 생존자 등—이 만들어내는 여러 조각의 기억들을 내 안에서 다시 맞추어 조립했을 때 더 풍부한 기억의 서사가 만들어질 수 있다. 건조한 정보의 나열과 애국심을 고양시키고 국가적 성취만을 강조하는 한국의 전쟁기념관과 대비되는 교육의 방식이자 기억의 방식이다.

기념물과 기념관은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고 잊지 않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에서 확장하여, 기억에 대한 고찰과 성찰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기억에 대한 성찰이란, 단순히 어떠한 사건이 있었음을 인지하는 것에서 벗어나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어떤 주체에 의해 기억이 생산/재생산 되는지, 그리고 이 기억은 나에게 어떠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를 의미한다. 기억과의 상호작용이 자아내는 감정에 대한 성찰이 중요한 이유는 떠오르는 감정들을 들여다볼 때 역사적 사건에 있어서 나의 위치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개인적이고 체현된 기억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집단기억과 맞물리고 어우러지고 때로는 충돌하거나 모순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개개인들의 각기 다른 기억의 충돌은 결론적으로 무언가를 기억하는 행위와 그 과정 자체가 들쑥날쑥하고 울퉁불퉁하며, 계속해서 달라지는 가변적인 과정임을 보여준다.

이렇듯, 우리는 더 이상 역사의 '팩트'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마주했을 때 내 안에 떠오르는 감정을 바라보아야 한다. 기억과 마주했을 때 떠오르는 나의 감정과, 오랜 고찰과 성찰 속에서 각자의 위치에 대한 고찰이 가능할 때 비로소 피해와 가해를 대척점에 놓는 고착된 정체성이 아닌, 관계 속에서 피해자성과 가해자성이 내 안에 공존할 수 있음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베평화재단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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