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vs 박근혜’ 마케팅 전쟁…전·현직 대통령 대리전 치닫다

이재명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6·3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를 일주일 앞둔 27일 최대 격전지 부산을 나란히 찾았다. 부산·울산·경남(PK) 등 동남권에서의 승패가 전체 선거 승리의 척도로 떠오른 상황에서 전·현직 대통령이 한날 순차 방문하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대통령 당선 1년 만에 치러지는 이번 선거는 보수·진보 진영 모두에게 정치적 의미가 크다. 집권 2년차 국정운영 동력을 얻어야 하는 여권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겪고 있는 침체기를 벗어나야 하는 야권 모두 승리에 대한 열망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사전투표(29~30일)를 이틀 앞둔 27일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이 차례로 부산을 찾자 정치권은 술렁였다. 비록 국민의힘 ‘선거 지원’을 전면에 내세운 박 전 대통령과 달리 이 대통령은 국가 행사 참석을 위한 방문이었지만 “전·현직 대통령의 영남권 대리전”(박동원 폴리컴 대표)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관심이 집중된 것이다. 정치권에선 “PK와 대구 등 영남에서 접전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양 진영 모두 최강의 카드를 내세웠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부산 영도구에서 열린 제31회 바다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PK의 상징적 인물인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두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1996년 김영삼 정부의 해양수산부 출범은 대한민국을 해양 강국으로 도약시키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었다”며 “국민주권정부는 김영삼 대통령께서 꿈꾸셨던 해양 강국 대한민국으로의 힘찬 도약을 앞당기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항만과 공항, 철도와 도로가 이어지는 물류 인프라를 확충하고 남해안 전체를 아우르는 해양 관광벨트를 구축해 ‘해양 경제권’으로 키워내겠다”며 동남권에 대한 ‘전략적 투자’를 약속했다.
전날 경남 창원에서 미래국방전략위원회의를 주재한 뒤 부산 자갈치 시장을 찾았던 이 대통령은 이날은 부산 남항시장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이날 오후 부산 벡스코에서 세계유산위원회 준비 현황 보고를 받은 것까지 1박 2일을 PK에 머문 것이다.

청와대는 “대통령을 선거 소재로 삼는 일은 삼가 달라”는 입장이지만, 이 대통령의 이달 동선은 동남권에 집중됐다. 이 대통령은 부산 방문 전에도 울산 HD현대중공업(13일)→대구 군위(15일)→경북 안동(18~19일)→경남 김해(23일)→창원(26일)을 찾았다.
이 대통령이 지나간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은 ‘이재명 마케팅’을 벌였다. 이 대통령이 대구·경북(TK) 통합신공항 예정지인 군위를 찾은 날 김부겸 대구시장 후보는 “신공항 사업비 1조원을 확보했다”고 했고, 김경수 경남지사 후보는 이 대통령의 창원 방문 직후 ‘방산 기업 경남 이전’ 공약을 발표했다. 지지율 60% 안팎의 현직 대통령을 앞세운 ‘여당 프리미엄’ 선거 전략인 셈이다.
민주당 지도부 역시 이 대통령이 불 지핀 이슈를 선거에 활용하고 있다. 지난 18일 이 대통령이 5·18 민주화운동 폄훼 논란에 휩싸인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이벤트를 “저질 장사치의 비인간적 막장행태”라고 질타하자 이틀 뒤인 지난 20일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천인공노할 일”이라며 ‘스타벅스 출입 자제령’을 내린 게 대표적이다.
이 같은 고공전에 맞설 마땅한 카드가 없던 국민의힘은 박 전 대통령에게 손을 내밀었다. 시·도지사 후보로 나선 옛 친박계 인사를 돕는 차원에서 유세 지원이 시작됐지만 현장 반응이 좋자 전국적 지원으로 확대된 것이다. 2017년 탄핵 이후 처음으로 선거 지원에 나선 박 전 대통령에 대해 국민의힘에선 “‘선거의 여왕’으로 불렸던 박 전 대통령이 보수층 결집에 큰 도움이 된다”는 반응이 나왔다. 또 “‘윤 어게인’ 논란 등 당이 여전히 어수선한 상황에서 박 전 대통령이 쉽지 않은 결단을 내렸다”(재선 의원)는 평가도 나온다.

74세인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3일 대구 칠성시장 방문을 시작으로 충북·대전·충남(25일)→경남 진주 및 울산·부산(27일) 등 강행군을 이어가고 있다. 지지자들과의 잇단 악수에 팔이 아파 얼굴을 찡그리는 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7일 오후 박 전 대통령의 부산 기장시장 방문에는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와 박민식 부산 북갑 국회의원 후보도 동행했다. 마이크 앞에 선 박 전 대통령은 “자갈치시장과 구포시장도 오늘(27일) 가보고 싶었는데 여러 여건상 가지 못해서 좀 아쉽다”며 운을 뗐다. 이어 “박형준 시장 후보께서 앞으로도 부산의 발전을 위해 계속해서 많은 일을 해줄 것으로 믿는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하정우 민주당, 한동훈 무소속 후보와 경쟁 중인 박민식 후보에 대해선 “박 후보의 아버님께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셨다가 전사하신 것을 알고 있다”며 “박 후보에게 봉사할 기회를 주신다면 나라를 잘 지켜나갈 것”이라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28일엔 강원도 원주를 찾아 김진태 강원지사 후보를 지원할 예정이다.

전·현직 대통령의 등판에 여야는 서로 견제구를 날렸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에 “대통령은 불법적인 선거 개입을 즉각 중단하고, 아픈 민심을 어루만지면서 국정에 전념하기 바란다”고 했다. 반면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국정농단으로 국민에게 엄청난 실망을 주고 탄핵당한 대통령이 부끄러움도 모르고 돌아다니고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의 선거 전면 등판이 한국 정치의 현실을 보여준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은 정청래 민주당 대표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선거 핵심 요충지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현실 자체가 한국 정치의 모순적 상황을 드러내고 있다”며 “극한으로 치닫는 강성 당원 중심 정치의 한계가 여실히 확인된 것”이라고 했다.
‘상징 자본’으로 쓰여야 할 대통령직이 선거에 활용됐다는 비판 역시 피하기 어렵다. 조귀동 민 컨설팅 전략실장은 “통합의 상징이 돼야 할 전·현직 대통령이 선거 때 큰 주목을 받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며 “일단 두 사람이 등판한 만큼 부·울·경 선거의 정치적 판돈이 확 커진 상황”이라고 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학과 교수는 “양당이 전·현직 대통령에 노골적으로 기대면서 지방선거의 새로운 변곡점이 생겼다”며 “그만큼 선거 결과에 대한 양당의 부담도 덩달아 늘어난 양상”이라고 말했다.
박태인·이찬규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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