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도 시골도 똑같다…교육감 후보 80%가 외친 ‘AI 공약’의 민낯

6·3 전국 시·도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이 제출한 5대 공약이 지역과 무관하게 판박이처럼 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공지능(AI)·디지털 교육, 기초학력, 교권 보호, 교육수당, 돌봄 같은 공약이 대다수인 반면, 출마한 시·도의 지역적 특수성을 반영한 공약은 10%에 그쳤다. 지방교육자치 실현을 위해 지역 주민이 직접 선출한다는 교육감 직선제의 취지가 퇴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AI 튜터, AI 상담…“공약에도 일단 AI 넣고보자”

후보들의 AI 공약은 내용상 별반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 AI로 기초학력을 보완하고 진학 상담을 지원해 교육 격차를 줄이겠다는 방향이었다. 예컨대 AI를 활용한 학습 지원을 위해 ‘초중고 AI 튜터 전면 보급’(부산 김석준), ‘1인 1 AI 학습비서’(대전 오석진)를 제공하겠다는 식이다. ‘AI 대입진학상담시스템’(전남광주 이정선), ‘AI 진학분석기’(울산 구광렬) 등 AI를 통한 진학 상담을 약속한 후보들도 많았다.
이를 두고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AI 열풍으로 교육감 공약에서도 AI가 선택지가 아닌 기본값이 됐지만, 리터러시 교육 등 AI 활용을 위해 학교 현장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본질적인 사안에 대한 고민은 대부분 공약에서 빠져있다”고 꼬집었다.
교권·수당·기초학력…지역 달라도 공약은 비슷
다른 공약도 대체로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교권보호는 201회, 교육수당·바우처는 165회, 기초학력은 151회, 지역 정주 여건 조성은 126회 언급됐다. 기초학력은 58명 후보 전원이 언급했고, 교권 보호는 54명(93.1%), 교육수당은 38명(65.5%), 지역정주는 29명(50.0%)의 공약에서 확인됐다.
교권 보호 공약의 경우 이름만 다를 뿐 방향은 엇비슷했다. 교사와 학교가 감당하던 민원·소송 대응을 교육청이 맡겠다는 내용이다. 안민석(경기) 후보는 교육감 직속 ‘교권 119센터’와 통합민원체계 구축을, 윤호상(서울) 후보는 악성 민원을 담당하는 민원전담팀을 교육청에 설치하겠다고 했다. 신경호(강원) 후보는 교권 침해 사안이 발생하면 변호사와 상담사, 장학사로 구성된 ‘원스톱 교권기동대’를 현장에 투입하겠다고 했다.
기초학력 공약도 비슷했다. 학생의 문해력과 수리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교사 인력을 추가 투입하겠다는 방안이 많았다. ‘1수업 2교사제’(서울 김영배·대구 임성무·세종 임전수·인천 도성훈 등)를 도입하겠다는 후보가 많았고, 기초학력 전문교사 도입(서울 정근식)이나 학습코칭 프로그램 운영(전남광주 김대중)을 내건 후보도 있었다.

반면 지역적 특수성을 반영한 공약은 전체 290개 중 30개, 10.3%에 그쳤다. 고의숙(제주) 후보는 대중교통이 불편한 읍·면 지역 학생들을 위해 전담 기사가 이동을 돕는 ‘안심택시’ 운영을, 정승윤(부산) 후보는 해양·물류, 금융·핀테크, AI·데이터 중심으로 특성화고 학과를 개편하겠다는 공약을 냈다. 지역소멸 대응, 폐교 활용, 작은학교 살리기 같은 공약도 있지만,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타 시도의 후보들과 차별성은 보이지 않았다. 5대 공약에 지역 특수성이 뚜렷한 공약이 없는 후보가 45명(77.6%)에 달했다.
박주형 경인교대 교수는 “과거에 비해 각 진영이나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색 있는 교육 정책은 사라지고 비슷한 공약이 반복되고 있다”며 “짧은 선거 기간에 표심을 얻으려면 다양한 유권자의 이목을 끌 수 있는 보편적인 이슈를 공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돈은 누가 대나”… 290개 공약의 빈칸

교육자치의 취지를 살리려면 지역 특수성을 담은 정책 개발, 실현 가능한 재원 조달 방안이 함께 제시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교육감 후보의 공약에는 일반 정치인과는 달리 교육행정에 대한 후보자의 교육철학과 책임성이 담겨야 할텐데, 선거 준비 기간이 짧고 선거 조직도 부실하다 보니 정책 실효성이나 실현 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보람·이후연 기자 lee.boram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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