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맛 그대로… 실패 없는 힙함

반투명한 주황색 가방 안으로 지갑과 선글라스가 비친다. 얼핏 보면 프랑스 명품 에르메스의 '버킨백' 같지만 소재는 가죽이 아닌 폴리염화비닐(PVC)이다. 가격도 수천만원이 아닌 5만원 안팎에 불과하다. 올 봄·여름 패션 시장에 '젤리 버킨백' 열풍이 불고 있다. 명품 특유의 분위기는 즐기되 가격 부담은 낮춘 '듀프(Dupe)' 소비가 트렌드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27일 에이블리에 따르면 지난달 10일부터 이달 10일까지 ‘젤리백’ 검색량은 직전 한 달 대비 약 50배(4899%) 증가했다. 같은 기간 거래액도 약 72배(7144%) 급증했다. 앱에서 젤리백을 검색하면 버킨백 형태를 닮은 수많은 ‘퍼킨백’ 상품이 쏟아진다.

퍼킨은 ‘페이크(Fake)’와 ‘버킨(Birkin)’의 합성어다. 버킨백 특유의 실루엣을 차용하되 실리콘·PVC 같은 투명 소재와 형광 색감을 적용해 재해석했다. 장마철에도 부담 없이 들 수 있는 소재에 Y2K 감성 유행까지 더해지며 인기를 얻고 있다. 여기에 방송인 최화정과 아이돌 그룹 키키(KiiiKiii) 등 셀럽들의 착용이 열풍에 불을 붙였다.
최근 패션 시장 전반으로 번지는 듀프 소비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듀프는 ‘복제품(Duplicate)’의 줄임말로 고가 브랜드 제품과 유사한 디자인을 구현하면서 가격은 낮춘 상품을 말한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예전엔 부정적으로만 보는 시선이 강했지만 최근엔 소비자들이 ‘잘 만든 듀프’를 발견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분위기”라며 “원조 브랜드 제품의 영향력을 방증하며 기존 제품에 관한 관심을 역으로 키우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유행에 민감한 젊은 소비층이 의류·잡화처럼 트렌드 주기가 짧은 제품은 듀프 상품으로 가볍게 즐기고, 대신 자신이 가치 있다고 판단하는 경험엔 과감히 지출하는 소비 방식이 확산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소비자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7.8%는 듀프 제품을 단순 짝퉁이 아니라 명품 고가 브랜드에서 영감을 받아 저렴하게 출시된 유사 제품으로 인식했다. 긍정 평가도 48.8%로 부정 평가(9.5%)보다 높았다. 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는 합리적 소비라는 점이 장점으로 꼽혔다. 최근 샤넬, 에르메스, 불가리, 까르띠에 등 주요 명품 브랜드가 줄줄이 국내 판매 가격을 올리면서 가격 인상에 대한 피로감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트렌드는 브랜드 전략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유니클로는 JW 앤더슨, 세실리에 반센 등 유명 브랜드와의 협업 컬렉션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고가 브랜드 감성을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경험하려는 수요를 겨냥한 전략이다.
다만 동시에 듀프 소비를 둘러싼 논란도 커지고 있다. 상표까지 위조한 가품은 아니지만, 유명 브랜드의 대표 디자인과 이미지를 사실상 차용해 저렴하게 판매한다는 점에서 지식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명품이 오랜 시간 구축해온 희소성과 상징성에 무임승차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 소송전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룰루레몬은 코스트코를 상대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연방법원에 디자인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국내에서는 젠틀몬스터와 블루엘리펀트 간 분쟁이 대표적이다. 블루엘리펀트는 젠틀몬스터의 ‘가성비 대안’으로 입소문을 탔지만 젠틀몬스터 측은 일부 제품의 유사도가 99%에 달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신주은 김승연 기자 ju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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