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관제펀드에 울었는데…국민성장펀드, 이번엔 다를까 [스페셜리포트]
‘국민참여형 국민성장펀드(이하 국민성장펀드)’ 판매가 본격화하자 기대와 우려의 시선이 교차한다. 정부는 인공지능(AI)·반도체·바이오 등 첨단 전략 산업에 5년간 150조원을 공급해 부동산에 쏠린 자금을 생산적 금융으로 돌리겠다는 구상이다. 국민성장펀드는 국민 투자금 6000억원에 정부 재정 1200억원, 10개 자펀드 운용사 투자금으로 구성된다. 이렇게 모인 투자금은 10개 자펀드에 나눠져 운용된다. 정부가 자펀드 손실 20%를 먼저 부담하고 최대 40% 소득공제와 배당소득 분리과세 혜택까지 얹어 투자 매력을 높였다. 초저금리 대출, 인프라 투·융자, 직접 지분투자, 간접 지분투자 등 4개 투자 유형이 확정돼 자본 시장도 들뜬 분위기다.
국민성장펀드의 필요성이나 명분은 십분 공감한다는 시각이 많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불확실성이 높은 첨단 산업 투자를 민간 자본에만 맡기기에는 한계가 따른다. 첨단 산업에 대한 정책 자금 공급은 새로운 기회 포착을 위한 민간 기업 불확실성을 낮춰 혁신 기업의 신시장 진출입이 활발해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화학, 철강 등 기존 주력 산업 부진과 잠재성장률 하락으로 허덕이는 한국 경제에 새 바람을 불어넣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성장펀드를 바라보는 우려의 시각도 있다. 문재인정부 뉴딜펀드, 박근혜정부 통일대박펀드, 이명박정부 유전펀드 등 ‘관제펀드 흑역사’가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염려다. 역대 정권마다 정부 주도 관제펀드를 설정했지만, 사실상 실패했다는 평가가 많다. 국민성장펀드가 관제펀드 잔혹사를 끊으려면 민간 운용사의 투자 자율성, 투명한 성과 공개, 정권 교체와 무관한 법적 기반 구축, 탄탄한 회수 시장 마련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정부 손실 부담·공제·분리과세
국민성장펀드가 지난 5월 22일부터 3주 동안 선착순 판매에 돌입했다. 주요 은행 10곳과 증권사 15곳 스마트폰 앱이나 영업점 등에서 가입할 수 있다. 1인당 연간 가입 한도는 1억원, 최소 가입 금액은 판매사별로 10만원 또는 100만원 등으로 다르다. 금융당국은 판매 기간 첫 2주(5월 22일~6월 4일)에 전체 판매액의 20%인 1200억원을 서민 전용으로 배정했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가입 요건과 마찬가지로 연간 근로소득 5000만원 이하가 ‘서민 전용’ 기준이다. 이 물량이 소진되지 않으면 마지막 주 일반 국민 대상 판매로 넘어간다. 국민성장펀드에 가입하려면 홈택스나 정부24 등에서 소득 확인용 증명서를 발급받아 제출해야 한다.
가장 큰 특징은 정부가 투자자 손실 일부를 먼저 부담한다는 점이다. 정부 재정이 각 자펀드에 후순위 출자자로 참여해 손실을 20% 범위 안에서 우선 흡수한다. 다만, 원금보장형 상품은 아니다. 손실이 20%를 넘어서면 초과분은 투자자 부담이다.
세제 혜택도 매력적인 요인이다. 2023~2025년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에 해당한 적이 없고 전용 계좌로 가입하면 투자 금액에 따라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소득공제 비율은 투자금액 구간별로 ▲3000만원 이하 40% ▲3000만원 초과~5000만원 이하 20% ▲5000만원 초과~7000만원 이하 10%가 적용된다. 최대 소득공제액은 1800만원이다. 소득공제에 따른 수익률 극대화를 위해선 3000만원까지가 최적 구간이라는 게 시장 분석이다.
예를 들어, 연봉 7000만원 직장인이 국민성장펀드에 7000만원을 넣는다고 해보자. 이 경우 투자금 전액에 같은 공제율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3000만원까지는 40%, 3000만원을 넘는 2000만원 구간에는 20%, 5000만원을 넘는 2000만원 구간에는 10%가 각각 적용된다. 이를 합치면 소득공제액은 최대 1800만원이다. 즉, 세금을 매기는 기준 소득에서 1800만원을 빼준다는 의미다. 이 경우, 이 직장인의 세율을 지방소득세까지 포함해 26.4%로 가정하면, 실제 줄어드는 세금은 약 475만원 수준이다. 3000만원만 투자할 경우 40% 공제율이 적용돼 1200만원을 소득에서 빼준다. 같은 세율을 적용하면 약 317만원의 절세 효과가 생긴다. 실제 절세액은 소득 수준과 기존 공제 항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배당소득 분리과세도 적용된다. 펀드에서 배당소득이 발생하면 일반 금융상품 세율 15.4%보다 낮은 9% 수준의 분리과세가 적용된다. 지방소득세를 포함한 실제 세율은 9.9%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개인형퇴직연금(IRP) 등 기존 절세 상품을 이미 활용 중인 투자자에게 추가 절세 수단으로 각광받는 이유다. 강진혁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과세표준이 높아 소득공제 효용이 높은 투자자, ISA·IRP·연금저축 등 절세 계좌를 모두 채우고도 추가적인 세제 혜택을 찾는 투자자 중심으로 인기가 높을 것”이라며 ▲정부 손실 20% 우선 부담 ▲소득공제 최대 40% ▲배당소득 분리과세 등을 장점으로 꼽았다.
다만 국민성장펀드가 주로 비상장·기술특례상장사에 투자된다는 점은 주의해야 한다. 각 자펀드는 결성 금액의 60% 이상을 첨단 전략 산업 기업과 가치사슬에 투자한다. 나머지 30% 이상은 비상장 기업과 코스닥 기술특례상장사에 신규 자금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적자 기업에 자금이 투입될 경우, 기대만큼 회사가 성장하지 못하면 투자금 회수가 어려워질 수 있다.
수익성에 대한 의문도 따른다. 아직 확정 수익률은 물론 기대 수익률도 제시되지 않았다. 정부는 자펀드 운용사의 성과보수 기준수익률을 연 6%, 5년 누적 30% 수준으로 설정하며 초과 수익을 유도하겠다는 목표다. 국민성장펀드의 각종 혜택을 누리려면 5년 동안 중간에 돈을 빼서는 안 된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투자 후 3년 이내 양도할 경우 세금이 추징된다. 적립식으로 투자할 수 없고 전체 투자금도 일시에 납입해야 한다. 가령, 최대 1800만원에 대한 소득 공제를 받으려 7000만원을 투자하기로 했다면, 7000만원을 가입과 동시에 한 번에 내야 한다. 최소 5년간 묶어둘 수 있는 여유자금으로 투자하는 게 좋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코스닥 중소형주 주목할 때
시장에서는 국민성장펀드 수혜 기업을 선별하려는 움직임이 분주하다. 가장 먼저 포스코퓨처엠이 수혜주로 거론된다. 국민성장펀드 지원 대상인 퓨처그라프가 포스코퓨처엠 음극재 자회사여서다. 퓨처그라프는 새만금산업단지에 음극재 핵심 중간재인 구형흑연 생산공장을 짓는다. 이 과정에서 국민성장펀드로부터 2500억원 규모 저리대출 지원을 받는다.
동아쏘시오홀딩스 역시 수혜주로 꼽힌다. 국민성장펀드 지원 대상인 비티젠(옛 에스티젠바이오)이 동아쏘시오홀딩스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 자회사라는 이유에서다. 국민성장펀드는 비티젠의 복제약 생산 시설 확충을 위해 8년간 850억원 규모 저리대출을 실시한다. 증설이 마무리되면 비티젠의 최대 생산능력은 원료의약품 44%, 완제의약품 170%씩 확대된다. 코스피 상장사 후성도 국민성장펀드로부터 165억원 규모 저리대출을 지원받는다. 후성은 이 돈으로 생산능력을 확대한다.
증권가에서 주목하는 또 다른 업종은 건설이다. 민간개발이 위축된 상황에서 정책 자금이 신규 투자를 이끌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전력 수요 증가와 첨단 제조업 기반 산업단지 확대 기조를 고려할 때, 향후 산업 인프라 투자 규모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류태환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메가프로젝트를 통한 지역 균형 발전과 지방 산업 육성은 중장기적으로 지방 건설 수요를 견인하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할 전망”이라며 “국민성장펀드는 건설투자 사이클의 새로운 변곡점이 될 것”이라 기대했다.
무엇보다 시장에서는 국민성장펀드가 코스닥 마중물이 될 것으로 기대를 건다. 올해 코스피가 뜨거운 랠리를 벌이는 동안 코스닥은 상대적으로 부진했다. 지난 5월 20일 종가 기준 코스피가 올해 71% 오르는 동안 코스닥은 14% 상승에 그쳤다.
국민성장펀드는 코스닥 반등의 중요한 열쇠로 꼽힌다. 자본과 네트워크를 보유한 대기업보다 중견·중소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 성격이 강해 코스닥 중소형주 투자 심리를 개선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금융당국이 추진 중인 코스닥 상장폐지 요건 강화와 동전주 퇴출, 코스닥 승강제 도입 등 정책이 더해져 코스닥이 질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이 나온다.
특히 국민성장펀드 지원 대상은 코스닥 비중이 높은 업종들로 구성된다. 자금 지원이 산업 가치사슬과 소재·부품·장비, 인프라, 기술 기업까지 확산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코스닥 성장주 수혜 기대감이 높다. 이경민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자금 집행이 이뤄지면 AI 인프라와 에너지저장장치(ESS), 첨단 소재 등 관련 설비투자가 진행될 것”이라며 “제약·바이오 관련 임상 결과가 가시화될 경우 개별 기업 주가가 재평가되며 코스닥에 대한 투자자 관심이 부각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봤다.
국민성장펀드에 더해 코스닥벤처펀드와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도 모험자본 공급에 가세한다. NH투자증권은 모험자본 유입 시 수혜 예상 기업으로 에이치브이엠·노바렉스·링크솔루션·네오팜·리센스메디컬·지앤비에스에코·씨앤지하이테크·에프엔에스테크·그리드위즈·메타바이오메드·슈프리마에이치큐·쎄크·사이냅소프트 등 13곳을 꼽았다. 코스닥벤처펀드 세제 혜택 적용 대상인 벤처 지정 기업과 벤처 지정 해제 후 7년 내 기업 가운데 미래 실적 성장이 가시화된 곳을 추린 결과다.
강창엽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국민성장펀드 관련 단기적인 테마나 업황을 특정하기 어려운 만큼 개별 종목 선정이 중요하다”며 “코스닥 벤처 지정 기업 가운데 시가총액 규모가 1조원 미만이고 유동주식 비율이 과도하게 높지 않으며, 신규 차입과 채권 발행으로 사업을 확장하려는 기업에 대한 선별적 투자를 권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타인 자본을 적극 활용해 자기자본이익률(ROE)을 개선하려는 기업 주가가 긍정적인 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역대 관제펀드 성과는
수익률 부진 속 뒷말만
그러나, 국민성장펀드를 두고 관제펀드 흑역사를 떠올리는 시각도 적지 않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 정부 정책 기조를 반영한 금융 상품이 등장했지만 저조한 수익률 등으로 ‘관제펀드’ ‘포퓰리즘펀드’ 등 오명을 남긴 경우가 부지기수다.
문재인정부가 주도했던 뉴딜펀드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저조한 수익률부터 세금 등 입길에 오른 논란거리만 여럿이다. 뉴딜펀드는 원금 손실을 정부 재정으로 보전해준다는 점 때문에 판매 초기부터 논란이 드셌다. 뉴딜펀드는 정책형 뉴딜펀드, 뉴딜 인프라펀드, 민간 뉴딜펀드 등으로 구성됐다. 개인이 투자한 ‘국민참여 뉴딜펀드’는 총 2500억원 규모였다.
‘국민참여 뉴딜펀드’ 가운데 10개 펀드 만기(46개월)는 지난해 돌아왔다. 지난해 금융위원회가 국회에 낸 자료에 따르면, 10개 펀드의 내부수익률은 평균 2.14%로 집계됐다. 당시 1년 만기 예금금리(2~3%)에도 못 미쳤다. 일부 펀드는 6.18% 손실을 냈다. 정부 재정이 손실을 부담한 것을 제외하면 실제 펀드 수익률(자펀드 기준)은 평균 0.75%에 불과했다.
5% 이상 수익률을 낸 상품은 ‘안다 뉴딜 일반사모투자신탁 제1호(10.48%)’ ‘타임폴리오 혁신성장 디지털뉴딜 일반 사모투자신탁(5.65%)’ ‘파인밸류 성장뉴딜 POST IPO 4호 일반 사모투자신탁(5.65%)’ 등 3개에 그쳤다. 당시 뉴딜펀드를 운용했던 A운용사는 보고서를 통해 “제한된 투자 기간과 포트폴리오 내 집중투자로 아쉬움 속에 청산을 진행하게 됐다”며 고개 숙였다.
이명박정부 때 활성화됐던 유전펀드도 정유가 급락 등으로 투자자에게 대규모 손실을 안겼다. ‘한국패러렐펀드’가 대표 사례다. 미국 텍사스주에 있는 패러렐 유전 추정 매장량과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펀드 순자산가치는 급감했다. 노무현정부 때 우후죽순 생겨난 ‘선박펀드’도 흑역사를 남겼다. 선박펀드는 해운 업계를 살리려 정부 주도로 조성됐다. 선박 투자 회사가 대규모 순손실을 내며 상장폐지됐고 선박펀드는 수백억원대 손실을 봤다.
박근혜정부 통일대박펀드와 이명박정부 녹색성장펀드도 사실상 시장에서 사장(死藏)됐다. 이들 펀드는 수익률만 놓고 보면 실패 사례로만 분류하기 어렵지만, 운용상 착시효과에 가깝다는 평가다. 가령, ‘우리겨레통일’ 펀드는 약 22% 수익을 냈지만, 투자 포트폴리오에 담은 건 통일과 무관한 삼성전자나 게임주였다. 녹색성장펀드 역시 대형 정보기술(IT) 관련주가 수익을 견인했다. 이는 당시 정부가 정책 방향만 제시하고 실제 운용은 금융사 자율에 맡긴 영향이다. 운용사들이 정책 테마에만 얽매이지 않고 시장 상황에 맞춰 삼성전자·SK하이닉스 같은 대형 우량주, 채권, IT·게임주 등을 담아 수익률을 끌어올렸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가 특정 산업을 지정하고 그 안에서만 투자하도록 하면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고 신규 자금 공급에만 치우치면 회수 통로도 막힌다”라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존 펀드는 흐지부지되고 새 이름의 정책펀드가 등장하는 관행까지 겹치면서 장기 자본 시장 생태계가 자리 잡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거버넌스 확립·민간 자율 보장
전문가들은 국민성장펀드가 과거 관제펀드와 일부 대목에서 구분된다면서도, 재정을 동원한 손실 보전과 운용 자율성 등에서 우려 섞인 시선을 던진다.
국민성장펀드가 과거 관제펀드와 구분되는 점은 투자 대상 성격과 설계 유연성이다. 과거 뉴딜펀드나 일부 정책펀드는 정부가 정한 산업과 방식으로 자금을 투입해야 해 시장 변화에 유연한 대응이 어려웠다. 국민성장펀드는 미래 전략 산업에 60% 이상 투자 의무는 있지만, 나머지 40%는 운용사가 비교적 자율적으로 투자할 수 있다. 일부 코스피 우량주 편입도 가능해 수익 보완 장치를 뒀다는 평가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민성장펀드가 기존 산업이나 이미 성장한 기업보다 AI·빅데이터·반도체·2차전지·로봇·항공우주·방산 등 앞으로 커질 미래 산업에 장기 자금을 공급한다는 점에서 과거 관제펀드와는 차별화된다”고 진단했다.
다만, 이런 차별성이 실제 성과로 이어지려면 민간 운용사의 투자 판단, 산업 성장성, 투명한 성과 공개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민성장펀드가 과거보다 유연해진 것은 맞지만, 정책펀드 특유의 경직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전체 자금 가운데 60%는 정부 지정 전략 산업에 투자해야 하고 비상장사와 기술 스타트업에도 최소 30%를 투자해야 한다”라며 “전체 조성 규모가 150조원까지 커질 경우 30%만 해도 50조원 가까운 자금이 초기 기업으로 흘러가야 한다. 국내 초기 기업 시장이 이를 안정적으로 소화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운용 업계 관계자는 “개별 자펀드는 펀드 결성 금액의 60% 이상을 전략 산업과 관련 기업에 투자하게 돼 있는데, 실무적으로 업종 분류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라며 “매출 또는 영업이익의 몇 %가 특정 업종에서 나온다고 정의할 수는 있겠지만, 이렇게 선을 그으면 실적 변동성이 큰 첨단 산업 특성상 시계열 연속성 확보가 힘들다”고 털어놨다. 가령, 지난 1분기 땐 첨단 산업에 해당됐는데, 2분기 실적을 보면 정량 기준을 충족 못하는 기업이 속출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시장 일각에서는 정책 자금에 무임승차하려는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모호한 기준 탓에 펀드 편입 효과를 기대하고 사업 목적에 미래차, 수소, 2차전지, 로봇 등을 추가하는 기업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사모운용 업계 관계자는 “얼마 전 2차전지 분야 한 기업이 몇 달짜리 브리지성 투자를 요청해왔다”며 “기술 경쟁력이 뚜렷하지 않고 적자도 계속되는 회사라 상환 재원을 물었더니 ‘국민성장펀드 자금을 받을 예정이니 그 돈으로 갚겠다’고 답했다”고 털어놨다. 이 관계자는 “정책자금이 들어오기도 전 일부 기업은 이미 국민성장펀드를 확정된 상환 재원처럼 말하고 있다”며 “이런 식이면 펀드가 미래 성장 기업을 선별하는 게 아니라 시장에서 퇴출돼야 할 좀비기업의 시간만 벌어주는 돈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 재정을 동원한 손실 보전도 뒷맛이 개운치 않다. 정부가 후순위 출자자로 참여해 손실의 20%를 먼저 부담하는 방식은 투자자 입장에서는 긍정적 장치이지만, 운용사 입장에서는 다소 안일한 투자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 펀드에 투자하지 않은 국민도 세금을 내는 만큼, 재정으로 특정 펀드 손실을 보전하는 것을 두고 형평성 논란도 불거질 수 있다.
국민성장펀드가 관제펀드 흑역사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정부와 민간의 역할부터 명확히 나눠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정부는 정책 방향과 투명성 기준을 제시하되, 실제 투자 판단은 경험이 풍부한 민간 운용사가 수익성과 성장성을 기준으로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전략 산업에 대한 명확한 투자 방향 ▲민간 전문가 중심의 심사·운용 ▲개별 펀드·투자처·성과를 주기적으로 공개 ▲정권 교체와 무관한 중장기 거버넌스 ▲운용 인센티브 설계 등을 필수 과제로 꼽았다. 정책 일관성을 갖고 예측 가능한 투자를 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는 당부다.
정권 교체 때마다 정책펀드가 흐지부지되는 악순환을 막기 위한 법적 기반 구축과 비상장 투자금 회수를 위한 장기 모험자본 생태계 구축도 숙제다. 가령, 초기 기업에 투자한 펀드가 만기를 맞았을 때 해당 기업이 상장하지 못하면 투자금 회수가 어렵다. 비상장 주식을 사줄 수 있는 2차 시장(세컨더리마켓·Secondary Market) 활성화는 선결 과제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국은 회수 시장이 취약해 출구가 막히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코스닥 시장 활성화, M&A 규제 완화 등 생태계 전반 개혁이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배준희·문지민·이채원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61호(2026.05.27~06.0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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