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인 줄 알았더니 돈 덩어리잖아"…버린 노트북 뜯어 돈 버는 한국 기업[도시광산에서 찾는 미래]①

이현주 2026. 5. 27.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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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고려아연 美 시카고 허브 가보니
전자제품·태양광 패널 등서 광물 추출 자원 순환 앞장
구리·은 등 차세대 서버 재료로 재활용

미국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서 지난 13일(현지시간) 차로 약 40분간 달려 도착한 고려아연 자회사 페달포인트의 에브테라 리사이클링 시카고 허브. 고려아연이 2022년 설립한 미국 자회사 페달포인트가 인수한 미국 전자폐기물 재활용 전문기업 에브테라는 자원순환 사업의 북미 거점을 맡고 있다. 약 2900평에 달하는 이곳 공장 하역장에는 태양광 폐패널을 한가득 실은 트럭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하역장을 지나 허브 공장 입구에 들어서니 하드디스크 드라이브부터 네트워크 장비, 노트북 등 다양한 전자폐기물이 각각 분류된 상자가 보였다. 완제품으로 포장된 상자가 아니라 분해를 기다리고 있는 수명을 다한 제품들이었다. 상자마다 제품의 종류와 무게가 표시돼 있었고, 해당 물품이 어디로 이동할지 또 어떤 작업대를 거치게 될지 정해지고 있었다. 이곳은 폐기물을 쌓아두는 창고가 아니라 버려진 자원을 다시 광물로 되살리는 공정의 출발점이었다.

수거작업 및 자동화 공정을 거치고 난 인쇄회로기판(PCB)이 자루 안에 산처럼 쌓여 있다. 고려아연
고려아연 자회사 페달포인트의 에브테라 리사이클링 시카고 허브 전경. 고려아연
시카고 허브 내부 모습. 지게차가 폐전자·전기제품을 실어 나르고 있다. 고려아연

중국이 채굴부터 가공까지 장악한 핵심광물 공급망에 균열을 낼 대안으로 세계가 주목하는 것이 '도시광산'이다. 전자제품과 폐배터리, 태양광 패널 등 버려지는 산업 폐기물에서 금속을 다시 뽑아내 자원으로 되돌리는 방식이다. 시카고 허브는 미국 전역에서 모인 전자폐기물이 금속 자원으로 다시 태어나는 현장이었다.

분해 공정은 안전 점검에서 시작된다. 전자폐기물이 본격 분해되기 전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기계는 위험물 탐지기다. 위험물 탐지기는 공항 대형 검색대 같은 기능을 한다. 엑스레이 레이저를 쏘아서 물품 내부에 토너나 배터리 등 폭발 가능성이 있는 제품들이 들어 있는지를 확인한다. 탐지될 경우 이를 추출하고 동시에 종류와 공정별 분류가 시작된다.

회로기판 해체 작업장에서는 3~4명 정도로 구성된 해체팀이 직접 눈으로 확인되는 인쇄회로기판(PCB)을 골라내고, 오염 물질이 너무 많이 섞여 있지는 않은지 꼼꼼하게 살펴본 다음 이를 손으로 떼어낸다. 곧바로 파쇄를 진행하는 것보다 수작업을 거치면 PCB의 보존도가 높아진다.

수거 작업이 끝나면 폐제품들은 파쇄 공정으로 돌입한다. 파쇄가 시작되자 기계들이 내는 굉음에 공장 내부는 대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파쇄 과정은 대부분 자동화로 진행됐으며 분해 과정은 화면으로 관찰할 수 있었다.

3~4명으로 구성된 해체팀이 우선 수작업으로 인쇄회로기판(PCB)을 제거하고 있다. 고려아연

가장 먼저 분해되는 물질은 철이다. 1차 자력 선별기를 통해 철을 분리해내고, 2차 와류 선별기로 알루미늄과 플라스틱이 차례로 추출된다.

선별 과정 후에도 아직까지 추출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PCB는 로봇이 최종 회수해낸다. 사람의 팔처럼 생긴 '로빈'은 인공지능(AI) 시스템을 활용해 귀금속이 함유된 원료를 식별하고 진공 흡착으로 남겨진 PCB 조각을 잽싸게 집어냈다. 고려아연 자회사 로보원이 개발한 폐기물 선별 로봇 로빈은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 CES 2025에서 스마트시티와 지속 가능성·에너지&전략 분야에서 혁신상을 받았다.

이렇게 모여진 PCB는 거대한 포대에 담겨 울산 온산제련소로 보내진다. 그리고 구리, 금, 은 등 금속으로 다시 회수된다. 철과 플라스틱, 알루미늄은 미국 내에서 재활용 원료로 판매된다. 전처리 과정은 제품 수거 후 2~3주면 대체로 끝이 난다. 주문 상황에 따라서 처리 속도는 유동적이다.

에브테라는 시카고를 비롯해 미국 내 5곳에 허브를 두고, 전역에서 모여드는 전자폐기물을 분해·가공해 금속 회수 직전 단계의 원료로 만들어내는 거점 역할을 맡고 있다.

이곳 공장에서는 자원의 기존 흐름을 거꾸로 돌리는 일을 하고 있었다. 해체를 기다리는 전자폐기물은 광물과 다름없었다. 폐기물을 분해해 나오는 PCB 한 장에는 광석보다 높은 농도의 구리가 들어 있다. 폐배터리에는 니켈, 코발트, 리튬이 태양광 폐패널에는 고순도의 은이 담겨 있다. 하드디스크 드라이브와 전기모터에서는 희토류도 뽑아낼 수 있다.

마크 포프 페달포인트 최고경영자(CEO)는 "그동안 자원의 흐름은 한 방향이었다. 한 나라에서 채굴돼 다른 나라에서 가공되고, 또 다른 나라에서 제품으로 조립된 뒤 매립지에 묻히거나 해외로 반출돼 사라지는 식이었다"면서 "이제는 수명을 다한 서버 한 대가 우리 네트워크로 들어와 안전하게 해체·가공된 뒤 그 안의 금속이 정제돼 본래의 공급망으로 되돌아가 차세대 인프라의 일부가 된다"고 말했다.

포프 CEO는 "고려아연은 세계 최대 비철금속 제련사로서 18종이 넘는 금속을 연간 100만t 이상 생산하고 있다"면서 "그 역량이 있기에 미국 전자폐기물 안에 잠재된 한두 가지 금속만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금속 자원 전체를 실질적으로 회수해낼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공급망 갈등이 첨예해지면서 고려아연과 페달포인트의 미국 내 역할도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지난해 페달포인트는 흑자 전환에도 성공했다.

마크 포프 페달포인트 최고경영자(CEO). 고려아연

포프 CEO는 그동안 해외로 빠져나가던 자원의 흐름을 미국 안에서 붙잡아두는 것이 페달포인트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수십 년간 미국에서 수명을 다한 전자기기는 브로커를 거쳐 비용 우위가 큰 동남아시아 처리업체로 흘러 들어가는 것이 가장 손쉬운 경로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 기업들은 이를 '책임 있게 재활용된 자원'으로 보고했고 컴플라이언스 체크리스트도 채워졌지만, 실질적인 검증과 추적은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그 결과 미국은 지난 30년에 걸쳐 자국의 미래 공급망 원자재를 조용히 해외로 흘려보낸 셈이 됐다"고 지적했다.

고려아연이 테네시주에서 추진 중인 통합 제련소가 건설되면 미국 내 자회사들과의 시너지는 증폭될 전망이다. 고려아연이 50년에 걸쳐 축적해온 제련 노하우를 미국으로 확장할 기회이기도 하다. 포프 CEO는 "예를 들어 미국 데이터센터에서 수명을 다한 서버가 차세대 제품에 다시 투입될 정제 금속으로 거듭나기까지의 전 과정이 미국 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환경·노동 기준 아래 마무리된다는 의미"라면서 "이에 견줄 만한 가치를 제시할 수 있는 경쟁자는 당분간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카고(미국)=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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