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부작 <모자무싸> 몰아서 보다 리모컨 내려놓은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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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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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갇혔을 때 돌파하세요." 세상이 쳐놓은 규칙과 차단기 앞에서 나 자신을 구하라고 말하는 드라마 〈모자무싸〉의 한 장면. |
| ⓒ JTBC |
마침 지난 24일 드라마가 끝났고, 기다렸다는 듯 연휴가 겹쳤습니다. 제게는 완벽한 시청 조건이 갖춰진 셈이었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이번에도 멈추지 못했습니다. 밥을 먹으면서도, 눈이 뻑뻑해지면서도 전 에피소드를 단숨에 다 몰아 봤습니다. 박해영 작가는 저를 실망시키는 법이 없습니다.
황동만이라는 불편함에 대하여
황동만(구교환 분)은 처음부터 불편했습니다.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너무 투명해서였습니다. 20년째 데뷔작을 내지 못한 감독 지망생인데, 상처도 갈망도, 사랑받고 싶다는 민망한 욕망까지 죄다 꺼내놓고 삽니다. 일테면 멀쩡한 몸에 깁스를 감고 나타나서 누군가 먼저 걱정해주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식입니다. 나 이만큼 부서졌어요. 제발 좀 봐줘요. 하면서요.
1화를 보며 저도 모르게 혀를 찼습니다. 저렇게까지 찌질할 일인가 싶어서요. 그런데 심리학은 오래전부터 이런 불편한 진실을 말해왔습니다. 사람은 자신과 진짜로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게까지 격렬하게 반응하지 않는다고요. 내 안에도 분명히 있는데, 너무 창피해서 두꺼운 이불 밑에 꼭꼭 눌러 숨겨둔 무언가를 타인에게서 맨눈으로 마주칠 때, 인간은 설명하기 어려운 거부감을 느낀다고요. 제가 불편한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우리 모두는 인정받고 싶지만, 그 티를 내는 건 죽어도 싫습니다. 깊이 상처 받았어도 쿨한 척하고 싶고, 관심받고 싶어도 초라해 보이긴 싫습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가면을 쓰고 문을 열고 나갑니다. 황동만이 하는 일은 그 가면을 안 쓰는 것. 그게 전부입니다. 변은아(고윤정 분)가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 말합니다.
"사람들은 천 개의 문을 가지고도 한 개의 문을 열고 살지만, 감독님은 천 개의 문을 다 열어놓고 사는 사람 같아요."
낭만처럼 들리지만, 그게 얼마나 무방비한 삶인지를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집니다. 세상은 문을 잘 닫는 사람에게, 상처를 세련되게 감추는 사람에게 훨씬 친절하니까요. 다들 자기 안의 불안을 겨우겨우 봉합한 채 살아가고 있으니, 누군가 대놓고 무너진 모습을 보여주면 애써 기워 붙인 내 감정의 실밥까지 터져버릴 것 같아 조마조마해지는 겁니다.
황동만을 보며 마냥 웃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를 보는 것은 결국, 내 안의 무언가를 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무능의 기준을 다시 묻다
드라마를 보다가 뒷통수를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든 장면이 있습니다. 소위 잘 나간다는 동료들이 황동만의 실패와 무능을 뒷담화 하는 자리. 그 자리에서 변은아가 조용히, 그러나 아주 정확하게 말합니다.
"인간인데 인간다움이 없다. 그게 무능한 거죠."
세상이 정의하는 무능은 단순합니다. 돈을 못 벌거나,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으면 '무능'. 명쾌하고, 잔인하고, 그래서 많은 사람이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기준이죠. 박해영 작가는 이 기준을 정면으로 뒤집습니다. 타인을 조롱하며 우월감을 채우는 사람과, 서툴고 찌질하지만 자기 감정을 속이지 못하는 사람. 과연 누가 더 무능한가, 하고요.
황동만은 참 찌질하지만, 최소한 자기 안의 결핍을 없는 척 기만하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이 드라마가 말하는 인간다움이란, 대단한 능력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초라한 자기 자신이라도 끝내 부정하지 않는, 지독하고 낮은 용기일지 모릅니다.
박해영 작가는 첫 회부터 아주 특별한 문장 하나를 드라마 장면 속에 심어두었습니다. 황동만과 변은아가 처음 마주하는 철길 건널목, 두 사람의 발길을 멈춰 세운 차단기 위에 선명하게 적혀 있습니다.
갇혔을 때 돌파하세요.
교통 안전 문구입니다. 차단기 안에 차가 갇히면 망설이지 말고 부수고 나오라는 뜻이죠. 그런데 이 문장이 드라마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 무게가 달라집니다. 살면서 실패에 지독하게 갇힌 적 있는 분이라면 아실 겁니다. 때로는 차단기보다 타인의 시선이 더 단단하고, 규칙보다 수치심이 더 두껍다는 것을요.
황동만의 진상과 패악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SOS였습니다. 세상의 눈에는 민폐로 읽히는 신호를, 변은아만이 알아챘습니다. 그가 오만한 게 아니라 무섭다는 것을. 공포에 떠는 사람이 겉으로는 때로 가장 공격적으로 보인다는 것을요.
그리고 이 구원은 일방적이지 않습니다. 동만을 차단기 밖으로 끌어내는 과정에서 은아 역시 자신이 외면해온 고통을 똑바로 마주하게 됩니다. 살면서 나를 알아봐 주는 단 한 사람. 그 관계 안에서 피어나는 것을 이 드라마는 '희망'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냥 조용히 보여줄 뿐입니다. 그래서 더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내 인생이 왜 네 마음에 들어야 하는데요
황동만은 마침내 자신을 배제하던 세상을 향해 잔잔하게 말합니다.
"딱 니들만큼 불행하고, 니들만큼 행복해."
이 당당함의 뿌리에는 극 초반, 능력 지상주의자인 영화사 대표에게 던진 가장 서글프고도 강력한 일갈이 닿아 있습니다.
"내 인생이 왜 니 마음에 들어야 하는데요?"
우리는 평생 타인의 마음에 들기 위해 스스로를 편집하며 삽니다. 좋은 대학, 번듯한 직장, 그럴듯한 타이틀이라는 '세상의 취향'에 나를 맞추려 마음의 문들을 걸어 잠그고요.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스스로를 무가치한 존재라 낙인찍으며, 차단기 안에 갇힌 채 혼자 떱니다. 황동만의 찌질함은 어쩌면, 그 기만을 끝까지 거부한 가장 처절하고 솔직한 저항이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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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포스터. |
| ⓒ JTBC |
저는 이 장면에서 리모컨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한참 동안, 내 마음속 닫힌 문들을 헤아려봤습니다. 남들의 기준에 들지 못할까 봐 겁이 나 내 손으로 걸어 잠근 문이 몇 개나 되는지. 갇힌 줄도 모르고 그 좁은 차단기 안에 멍하니 서 있는 건 아닌지 하고요.
지금 당신이 타인의 시선이라는 차단기에 가로막혀 차가운 철길 위에 혼자 서 있다면,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내 인생은 누군가의 마음에 들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쳐놓은 차단기 따위는 조금 부서지고 망가져도 괜찮습니다. 망설이지 마시고, 오직 나라는 존재를 구하기 위해 액셀을 밟으시길. 당신은 그 자체로 이미, 온전히 돌파해낼 힘과 가치가 있는 사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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