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국혁신당 당원인데… 이번 지방선거에서 처음 흔들렸다
[이수현 기자]
|
|
| ▲ 선관위에서 보내온 각당 선거 공보물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의 한 유권자에게 배달된 지방선거 공보물들. 두꺼운 책자와 화려한 인쇄 상태는 단순한 홍보물을 넘어 각 정당의 조직력과 재정 규모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정치적 풍경처럼 느껴졌다. 한편 일부 정당의 공보물은 상대적으로 눈에 잘 띄지 않거나 보이지 않아, 지방선거에서의 정보 접근과 홍보 격차 문제 역시 함께 드러내고 있다. |
| ⓒ 이수현 |
내가 사는 풍세면은 어디서는 '자선거구'라고 하고, 어디서는 '천안시 제9선거구'라고 적혀 있었다.
알고 보니 시의원 선거는 자선거구, 도의원 선거는 제9선거구였다.
정치에 관심이 있는 나조차 순간 헷갈렸는데, 일반 주민들은 얼마나 더 복잡할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내가 사는 지역의 선거구 명칭을 선거의 종류에 관계없이 통일시키는 것이 어려울까?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도지사 후보, 천안시장 후보, 도의원 후보, 시의원 후보, 비례대표 후보, 교육감 후보까지 모두 각각 따로 각각의 선거구로 움직이다 보니 유권자는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질 것으로 보인다.
선거구도 헷갈리는 공약에서 있어서는 정작 주민 입장에서는 누가 무슨 일을 하겠다는 사람인지한눈에 파악하기 쉽지 않았다.
생활밀착형 공약 앞에서 흔들린 마음
나는 조국혁신당 당원이다. 지난 총선과 보궐선거에서도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후보들을 지지해왔다. 그런데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처음으로 마음이 흔들렸다.
이유는 단순했다. 국민의힘 후보들의 생활밀착형 공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후보자들이 내세운 생활밀착형 공약들을 보면, ▲ 천안아산 돔형 야구장 ▲ 농촌 악취 제거 ▲ 풍세역 문제 ▲ 겨울철 도로 열선 ▲ 생활도로와 교통 ▲ 체육시설과 문화공간 같은 공약들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문제들은 풍세면 주민들에게 매우 현실적인 문제다. 겨울철 빙판길은 생명과 직결되고, 농촌 악취는 매일 숨 쉬는 문제이며, 교통은 출퇴근과 병원길, 아이들 통학과 연결된다.
거대한 국가담론보다 주민들은 오히려 이런 문제들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반면 내가 지지해온 민주당이나 조국혁신당의 공약들은 상대적으로 거시적이고 원칙적인 이야기들이 많았다. 물론 검찰개혁도 중요하고, 민주주의도 중요하며, 사회개혁 역시 중요한 가치들이다.
하지만 지방선거에서 주민들이 가장 먼저 체감하는 것은 결국 내 삶 가까이에 있는 문제들이다.
이번 선거를 겪으며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흩어진 공보물, 혼란스러운 정보 전달
이번 공보물을 보며 또 하나 놀랐던 것은 정보 전달 방식이었다. 후보 공보물이 제각각 흩어져 있고, 어떤 후보는 공보물이 제대로 눈에 띄지도 않았다. 누가 어떤 공약을 내세우는지 비교하기 어려웠다. 유권자 입장에서는 도지사 공약과 시장 공약, 도의원 공약과 시의원 공약이 어떻게 다른지조차 정리하기 쉽지 않다.
결국 주민들은 현수막, 카카오톡, 입소문, 유튜브 영상 같은 단편적 정보에 의존하게 된다. 이런 구조에서 제대로 된 정책 비교와 검증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무투표 당선, 과연 정상적인 민주주의인가
공보물에 또 하나의 안내문이 첨부되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천안시 자선거구는 의원정수 2명에 후보자도 2명이라 투표를 실시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허탈했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권자의 선택과 검증인데, 투표조차 하지 않는 선거가 과연 정상적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법적으로 가능하다고 해서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닐 것이다. 정수만큼 출마했다고 자동당선되는 구조는 지방정치에 대한 관심을 더 떨어뜨릴 수 있다. 단독 출마나 무투표 선거라 하더라도 최소 득표율 기준이나 찬반투표 제도 같은 장치는 필요하지 않을까. 유권자의 선택과 검증을 받지 않는 지방정치는 결국 주민과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선관위 통합 공보물 제도를 제안한다
또 하나 바뀌어야 할 것은 공보물 시스템이다. 지금처럼 후보들이 각자 만든 홍보물을 따로 보내는 방식이 아니라, 선관위가 지역별 통합 공약집을 제작해 유권자에게 보내는 방식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풍세면 주민이라면 도지사 후보, 천안시장 후보, 도의원 제9선거구 후보, 시의원 자선거구 후보, 비례대표 후보, 교육감 후보 등 이들의 공약과 경력, 재산, 전과, 핵심정책 등을 한 권에서 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공보물이 흩어져 오고 후보마다 형식도 제각각인 구조에서는 유권자가 제대로 비교·판단하기 어렵다.
글쓴이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했던 경험에 비교하면, 이 도시에선 (주에선) 선거관리기관이 'Voter Information Pamphlet'을 제작해 유권자들에게 제공한다. 후보와 정책, 찬반 논리까지 비교할 수 있도록 정리해주는 방식이다. 유권자가 제대로 판단할 수 있도록 국가와 선관위가 적극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구조인 셈이다. 지금 한국 지방선거에도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시스템 아닐까.
생활 가까이에 있는 정치가 필요하다
나는 여전히 조국혁신당원으로 조국혁신당과 민주당을 지지한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를 겪으며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치는 이념으로 시작될 수 있다. 그러나 지방선거의 투표는 결국 삶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묻는 과정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판단을 위해서는 유권자가 후보를 제대로 비교하고 검증할 수 있는 구조부터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비난하거나 지지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실제 지방선거 공보물을 받아본 한 유권자의 솔직한 고민과 문제의식을 담은 글입니다. 생활 가까이의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 그리고 유권자가 후보를 제대로 비교·검증할 수 있는 지방선거 구조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윤석열 지지한 이대남 국힘 당원, 왜 진보정당으로 갔나
- 정용진과 일베적 사고...국민들도 참을만큼 참았다
- "사업하고 싶으면 연대보증 서" 금융당국도 놀란 갑질 잡아낸 변호사
- "계엄으로 청년 계몽되지 않았나?"에 화답한 전과 4범 후보
- 김종훈 "모욕적" - 김상욱 "속았다"... 깊어진 불신, 멀어진 울산 단일화
- 하정우에 다가온 여성의 난데없는 질문 "남침인가요 북침인가요"
- 한동훈 첫 40대% 돌파... 그런데 이상하다?
- 북한 "남부 국경지역에 전술순항미사일 배치"
- [오마이뉴스·STI 예측] 경기 추미애 51.5% - 양향자 26.8%
- 여론조사 공표금지, 꼭 해야 하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