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압박이 되레 中 혁신 불렀다…TSMC ‘턱밑 추격’한 화웨이

중국의 정보기술(IT) 기업 화웨이가 미국 정부의 제재를 우회하는 첨단 반도체 생산 기술을 개발했다고 25일(현지시간) 밝혔다.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같은 핵심 설비 없이도 칩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경고처럼 미국의 압박이 중국의 자체 기술 발전을 돕는 ‘나비효과’를 불러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허팅보(何庭波) 화웨이 반도체부문 사장(하이실리콘 대표)은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2026 국제회로시스템학회(ISCAS)’에서 ‘타우(τ)의 법칙’을 주제로 기조 연설에 나섰다. 그리스 문자인 타우는 전기공학에서 시스템 응답 속도를 나타내는 ‘시간 상수’ 기호로, 숨겨둔 전략을 의미하는 중국어 ‘타오(韬)’와 발음이 유사하다.
지금까지 반도체 업계는 1965년 발표된 ‘무어의 법칙(Moore's law)’에 따라 칩의 크기를 줄이고 밀도를 높여 반도체의 성능을 개선하는 방식에 집중해왔다. 반면 화웨이는 트랜지스터 집적도를 높이는 데 한계가 왔다며, 타우의 법칙에 따라 전기 신호 속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반도체 성능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회로 기판을 접어 층층이 쌓는 ‘로직 폴딩’ 설계 방식을 적용하면 전기 신호의 이동거리가 극적으로 줄어들며 시간 상수(타우)가 작아지고 반도체 성능이 향상된다는 설명이다.

로직 폴딩 기술을 적용한 칩은 SK하이닉스·삼성전자 등이 생산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와 구조가 같지만, EUV 노광장비로 웨이퍼에 미세한 회로를 그릴 필요가 없다는 점이 차별화 요소다. 5나노미터(nm·10억분의 1m) 이하 첨단 반도체 양산의 필수품으로 꼽히는 EUV 노광장비는 네덜란드 ASML이 유일하게 생산하고 있지만, 미국 규제로 2019년부터 중국 수출이 금지된 상태다.
허 사장은 “우리는 업계 전체를 놀라게 할 기술을 준비해왔다. 이는 거대한 도약이 될 것”이라며 “지난 6년간 타우의 법칙에 근거해 반도체 381종을 설계·양산해왔다”고 공개했다. 이어 “올 가을 출시할 차세대 모바일 칩 ‘기린(Kirin)’에 로직폴딩 설계 방식을 처음 도입할 예정”이라며 “2031년부터는 1.4나노 칩을 생산하겠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화웨이가 올해 가을 선보일 스마트폰 시리즈 ‘메이트90’에 새로운 기린칩을 적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TSMC는 2028년부터 1.4나노 칩을 양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화웨이의 계획이 성공할 경우 두 회사의 기술 격차는 기존 5년에서 3년으로 좁혀진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화웨이가 EUV 노광장비 없이 1.4나노 칩 양산에 성공할 경우 반도체 업계의 통념을 뒤집는 일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해당 기술이 성공할지에 대해 전문가들은 아직 반신반의하고 있다. 닐 샤 카운터포인트리서치 부사장은 “화웨이가 제시한 병렬적 반도체 경로는 발열로 인해 제조 수율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이번 기술을 통해 서방 제재를 우회하기 위한 중국의 창의적 방안이 과연 통할 수 있을지 판가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화웨이는 미중 갈등의 상징과도 같은 기업으로 꼽힌다. 2018년 미국 제재로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이용할 수 없게 되자 자체 모바일 OS ‘하모니’로 위기를 넘겼고, 2019년부터 엔비디아의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들여올 수 없게 되자 다량의 저성능 반도체칩을 활용해 성능의 한계를 극복했다.
글로벌 IT 기업들은 미국의 제재가 중국의 ‘기술 자립’을 부추겼다고 보고 있다. 지난 4일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미국 싱크탱크와의 인터뷰에서 “(기업 입장에서) 중국처럼 거대한 시장 전체를 양보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합리적이지 않다. 이미 상당한 역효과를 낳았다”며 “미국의 수출 통제는 중국의 자급자족을 향한 노력을 가속화해 전략적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경미 기자 gae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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