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투표 기권자에게 벌금을 물린다면

2022년 대선 투표율은 77.1%였다. 결과는 윤석열 후보의 승리. 고작 0.73% 포인트 차이로 당락이 갈린 접전이었다. 2년 뒤 치러진 총선은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이었다. 투표율은 67.0%. ‘총선 3연승’을 달성한 민주당은 모두가 알다시피 이후 난데없는 계엄으로 사면초가에 놓인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했고 조기 대선을 통해 대권을 거머쥐었다. 그렇다면 4년 전 대선과 2년 전 총선에서 각각 22.9%, 33.0%에 달했던 투표 기권자가 대거 투표소를 찾았다면 어땠을까. 혹시 결과가 달라지진 않았을까. 역사에서 가정은 무의미하다지만 이것은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봄 직한 질문일 수 있다.
가상준 단국대 교수가 과거 발표한 논문 ‘투표 기권자는 누구에게 투표했을까’에는 이런 질문을 둘러싼 흥미로운 내용이 담겨 있다. 그는 한국정치학회가 실시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두 선거에 각각 기권한 유권자의 성향을 분석해 이런 결과를 내놓았다. ①2022년 대선에서 투표 기권자들이 투표를 했다면 그들은 주로 이재명 후보에게 표를 던졌을 것이다. ②2024년 총선에서 기권한 이들이 투표소에 갔다면 그중 많은 이는 국민의힘 후보를 선택했을 것이다. 표본의 크기 등을 보면 논문에 담긴 분석은 얼마간 헐거운 느낌을 준다. 하지만 4년 전 대선이 역대급 백중지세였음을 떠올린다면 ①은 특별한 의미를 띤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 윤석열’이 없었다면 우린 이미 이재명정부 4년차를 보내고 있을 테니까. ②의 내용도 흥미롭다. 당시 투표율이 크게 치솟았어도 ‘민주당 승리’라는 22대 총선의 결과는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국회 의석 분포엔 적잖은 변화가 있었을 게 분명하다. 수도권의 경우 국힘 후보 가운데 근소한 차이로 패한 이가 수두룩했기 때문이다(당시 선거에서 1·2위 후보의 격차가 5% 포인트 내인 수도권 격전지는 20곳 가까이 됐다).
뜬금없이 이미 끝난 두 번의 선거를 되씹은 이유는 ‘던져지지 않은 표’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기 위해서다. 유권자가 투표에 불참하는 이유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누가 뽑히든 내 삶과 무관할 것 같아서, 정치에 관심이 없거나 환멸을 느껴서, 투표할 시간이 없어서…. 무엇보다 ‘나의 한 표’가 투표 결과를 바꿀 순 없으니 ‘투표=비합리적 행동’이라 여기는 이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논문의 내용이 그렇듯 투표 포기는 민심을 얼마쯤 왜곡시킬 수 있고, 그런 상황이 심해지면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 될 수 없다. 이런 상황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게 의무투표제다. 투표하지 않는 이에게 벌금을 매긴다면, 여권 발급에 어려움을 겪게 만든다면, 투표 불참이 반복될 경우 투표권이 박탈된다면 투표율은 크게 치솟을 것이다. 실제로 벨기에 싱가포르 등 여러 나라가 이런 형태의 의무투표제를 통해 선출 권력의 민주적 정당성을 끌어올리고 있다.
물론 의무투표제의 문제점은 끝없이 늘어놓을 수 있다. 누군가 허투루 투표권을 행사한다면 후보의 면면과 공약의 쓸모를 꼼꼼히 살피고 투표한 유권자의 목소리가 또렷이 드러나기 힘들어진다. 백지 투표 형태의 무더기 무효표가 나오는 상황도, ‘투표하지 않을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나올 가능성도 생각해봐야 한다. 제도 시행을 위한 행정적 비용도 만만찮을 것이다. 하지만 투표가 의무가 되는 순간 편을 나눠 서로를 향해 으르렁대는 정치 양극화엔 균열이 생길 수 있다.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당파성에 휘둘리지 않는 침묵의 유권자들이 선거의 조종간을 흔드는 거대 세력으로 등장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박지훈 디지털뉴스부장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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