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은 증시 성공의 역설?… “외국인 매도만으로 설명 안돼”
김용범 ‘고환율 진단’
반은 맞고 반은 틀려

김용범(사진) 청와대 정책실장이 최근 고환율 기조에 대해 “한국경제 성공이 만들어낸 역설적 현상”이라고 언급해 논란이 일고 있다. 김 실장의 주장은 이런 흐름으로 요약된다. ‘코스피 급등→외국인 보유 주식 평가액 상승→차익실현 매물 증가→환전 수요 증가→원·달러 환율 상승’이다. 한국 증시의 성공적인 상승세가 고환율로 이어지게 됐다는 논리다. 이를 ‘성공의 역설’로 해석하는 게 어느 정도까지 맞을까.
국민일보가 26일 한국은행·한국거래소·금융투자업계 자료를 종합한 결과 김 실장의 설명은 일부 사실에 부합한다.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팔아 원화를 확보한 뒤 달러로 바꾸면 현물환시장에서 달러 매수 수요가 생긴다. 이는 환율을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즉 외국인 투자자의 매도가 환율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는 것은 맞는다.

외국인은 코스피가 7000선에 도달한 직후인 지난 7일부터 지난 22일까지 12거래일 연속 순매도했다. 이 기간 순매도액은 46조3383억원이었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순매도액만 38조4000억원으로 전체의 82.9%를 차지했다. 반도체 대형주를 중심으로 차익실현 매물이 쏟아진 셈이다. 환율도 같은 기간 빠르게 올랐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6일 1455.10원에서 22일 1517.20원까지 상승했다. 26일에는 유가 하락 여파로 1504.3원으로 내려왔지만 여전히 1500원대에 머물렀다.
문제는 외국인 순매도액 전부를 달러 환전 수요로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주식을 판 돈이 실제 언제, 얼마나 달러로 바뀌어 해외로 빠져나갔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일부 자금은 국내 주식·채권으로 재투자될 수 있고, 환헤지 여부에 따라 환율에 미치는 영향도 달라진다.
자본시장연구원의 ‘최근 외국인투자자의 국내주식 매매행태와 자금유출입 변동요인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주식 순매도액 전부가 달러 환전 수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외국인의 주식 순매도액 대비 순유출액 비율은 테이퍼 텐트럼(미 양적완화 축소 우려에 따른 신흥국 자금 유출기) 시기 132.0%, 미국 금리인상기 96.8%, 코로나19 이후 80.3%였다. 외국인 매도액 전체를 환율 상승 원인으로 계산하기 어려운 이유다.

매도 배경 역시 차익실현 하나로 설명되진 않는다. 외국인은 최근 반도체 대형주를 대거 팔았지만 한국 시장 전체에서 빠져나간 것은 아니었다. 지난 18~22일 두산로보틱스 3700억원, 삼성SDI 1489억원을 순매수했고 코스닥 시장에서도 1조2926억원을 사들였다. 반도체에서 이익을 실현하는 동시에 로봇·ESS·2차전지·인공지능(AI) 인프라 관련 종목으로 자금을 옮긴 흐름도 나타난 셈이다.
결정적으로 환율이 외국인 주식 매도만으로 크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국내 투자자의 해외주식 투자, 수출입 기업의 환전 수요, 역외 달러 매수, 글로벌 달러 흐름, 위험회피 심리 등이 함께 반영된다. 외국인 매도는 환율 상승의 여러 요인 중 하나일 뿐이다. 최근 원화 약세를 설명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
김 실장은 페이스북에 “경상수지는 사상 최대 흑자를 기록하고 있고 외화 자금시장은 안정적”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3월 경상수지는 373억3000만달러 흑자였고, 4월 말 외환보유액은 4278억8000만달러로 전월보다 늘었다. 현재 고환율 국면을 외환위기식 외화 부족 상황으로 보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달러 수요도 컸다. 지난해 1~11월 경상수지는 1018억달러 흑자였지만 같은 기간 거주자의 해외증권투자는 1294억달러, 해외직접투자는 268억달러를 기록했다. 외국인의 국내증권투자 504억달러와 직접투자 63억달러를 크게 웃돌았다. 수출로 달러를 벌어도 해외투자 수요가 더 크면 원화 약세 압력은 커질 수 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김 실장의 발언에 대해 “절반만 맞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환율이 물가와 소비, 기업 비용 등 국민 생활에 미칠 부담을 고려하지 못한 ‘섣부른 진단’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고환율 부담은 국민 생활로 전이될 수밖에 없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원·달러 환율이 10% 오르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약 0.3~0.5% 포인트 높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는 널뛰는 환율이 물가와 소비, 기업 비용에 미칠 충격을 줄일 방안부터 내놔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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