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판화 한 점 걸어보라”… 구순 김구림, 판화를 권하다
“회화와 다른 독특한 아름다움 느껴”

한국에서 1970년대 태동한 실험미술의 대가 김구림(90)씨가 ‘판화수집의 모든 것-보는 법에서 수집, 감상 및 포스터까지’(더모던)를 최근 출간했다. 2007년 낸 ‘판화 컬렉션-보는 법에서 수집까지’의 개정 증보판이다. 역사·이론·기법·수집·감정·보존을 총망라한 국내 유일의 판화 교과서라 할 만하다. 분량도 550쪽으로 불어나 한마디로 벽돌책이다.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작가의 작업실을 찾았다. 책을 소개하며 “이거 한다고 골병이 들었다”고 거듭 하는 말에서 판화에 대한 진한 애정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포스터 부문을 추가했어요. 유럽에서는 포스터도 판화로 취급하기에 수집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로트레크, 샤갈, 피카소 등 서구 거장이 모두 포스터를 만들었습니다.”
구순에 어디서 이런 열정이 나오는지 근원이 궁금했다. 판화는 한국 미술 시장에서는 소외되는 장르 아닌가. 그는 “맞다. 외국은 판화 전문 화랑, 판화 전문 경매도 있는데 한국은 유화만 시장에서 취급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아쉬워했다.
이유는 또 있었다. “제가 일본에서 기법을 배워 와 한국에서 최초로 판화 공방을 차린 사람입니다.” 그는 1981년 종로구에 에칭프레스 인쇄기 3대를 갖춘 ‘구림판화공방’을 열었다. 판화하면 고무판화, 목판화만 알던 시대였다. 판화 공방 개소 사실은 당시 많은 언론에 소개될 정도로 뉴스였다.
그는 1973년 일본으로 건너가 3년간 체류하며 첨단 판화 기법을 배웠다. 1974년에는 도쿄 국제판화비엔날레에 ‘걸레’라는 판화 설치 작품을 내 화제가 됐다. 식탁보에 걸레가 놓여 있고, 그 아래 걸레에서 배어나온 물자국이 있는 작품이었다. 실상 걸레는 실물이고, 물자국은 실크 스크린 기법으로 찍어낸 판화 이미지였다. 당시 심사위원들끼리 판화로 볼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며 결과 발표가 하루 지연되기도 했다.
판화 공방이 1년 만에 실패로 끝난 후 그는 미국으로 떠났다. 1990년대 중반 잠시 귀국했던 그는 자신이 부재했던 기간 한국에서 판화 붐이 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홍익대 미대에서는 1988년 학부 과정에 판화과가 신설됐고, 1995년 동아일보사 주최로 제1회 서울판화미술제가 열렸다. 그때의 열기와 달리 지금 미술 시장에서는 환금성 높은 유화 선호 현상이 심화되면서 판화 시장은 거의 죽었다.
해외는 다르다. 그는 2024년 런던 프리즈 아트페어의 마스터스 섹션에 낸 판화 3점이 첫날 4000만원씩에 해외 컬렉터에 모두 팔린 일화를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국내에서는 400만원에도 팔리지 않았을 텐데…”라고 말했다.
책의 첫 장에 나오는 문장은 그의 마음을 대변한다. “좋은 판화는 회화와 다른 독특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나는 거기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신의 향기를 느낀다. 누구든 좋은 판화를 한 점 집에 걸어보라. 가격에 비할 수 없는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
글·사진=손영옥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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