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의사당에서 무릎 꿇은 미국… ‘국가 기도의 날’ 75주년 현장을 가다
조민혜 박사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선임연구원

필자는 지난 6일부터 7일까지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미국 국가 기도의 날(National Day of Prayer) 75주년 행사에 참석했다. 이번 행사는 미국 건국 250주년과 함께한 의미 있는 자리였으며 성경 박물관, 국회의사당 하원 조각홀(Statuary Hall), 알링턴 국립묘지, 그리고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생가 마운트 버넌 등 미국의 상징적인 장소들에서 진행되었다.
미국 국가 기도의 날은 미국의 법정 기념일이다. 모든 미국인이 각자의 신앙에 따라 국가와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한다. 매년 5월 첫째 주 목요일로 지정되어 있으며 종교 자유와 기도의 전통을 기념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날은 1775년 제2차 대륙회의가 조지 워싱턴을 비롯해 군대와 국가를 위해 기도한 날을 선포한 것이 시초다.
이후 1952년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제안과 의회 주도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매년 국가 기도의 날을 제안하는 법안에 서명하며 공식 법정 기념일이 되었다. 1988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당시 ‘매년 5월 첫째 주 목요일’을 기도의 날로 제정하자는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이날은 국가적 위기 속에서 국민이 함께 기도와 회개로 나아가며 영적 회복을 구하는 날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 국가 기도의 날이 열리기 전날인 5월 6일, 성경 박물관 6층에서는 만찬과 준비 기도회가 열렸다. 박물관은 특별 전시로 ‘사해 문서(Dead Sea Scrolls)’ 관련 자료들이 마련돼 있었으며, 각 학교에서 단체 관람을 온 많은 학생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만찬장 입구에는 참석자들을 위한 별도의 포토존이 마련돼 있었다. 그곳에서 필자는 직접 초청해 준 국가 기도의 날 의장인 캐시 브란젤과 글로벌처치네트워크 설립자이자 대표인 제임스 데이비스 박사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데이비스 박사는 필자의 부친인 조병호 성경통독원 원장의 오랜 친구이기도 하다.
필자는 국가 기도의 날 의장인 캐시 브란젤의 배려로 맨 앞 주빈석에 자리할 수 있었다. 그 테이블에는 캐시 브란젤 의장과 그녀의 가족, 그리고 필자와 퍼스트 프리덤 아트 컴퍼니(First Freedom Art Company) CEO인 엘리자베스 칼라일이 함께 자리했다. 칼라일과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그녀가 이번 미국 국가 기도의 날의 대표 이미지로 사용된 ‘밸리 포지의 기도(The Prayer at Valley Forge)’ 원본 그림을 소장한 아트 갤러리 대표이자, 미국 문화·예술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저명한 아트 경영자라는 점이었다.

엘리자베스 칼라일은 지난 3년간 집필한 기도 관련 서적을 만찬에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선물했는데, 그 책은 캐시 브란젤을 포함해 약 80명의 저자가 공저한 책이었다. 필자는 마침 그녀의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었던 덕분에 직접 사인을 받을 수 있었다.

그날 만찬 참석자 200여명에게는 미국 국가 기도의 날 75주년 기념 특별 제작된 ‘기념 동전’이 선물로 전달되었다. 이 동전은 캐시 브란젤 의장과 국가 기도의 날 이사회가 직접 참석자들에게 전달했으며 앞면에는 조지 워싱턴의 ‘밸리 포지의 기도’ 이미지가, 뒷면에는 미국 국가 기도의 날 75주년 기념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동전을 전달하는 방식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미국 군대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뜻을 담아 ‘챌린지 코인’을 은밀하게 건네는 전통적인 악수가 있는데, 이른바 ‘비밀 악수’ 또는 ‘코인 악수’ 방식이었다.
필자는 캐시 브란젤에게 직접 동전을 받았는데 동전을 쥔 오른손을 편 채 악수를 청하는 그녀의 손을 감싸듯 맞잡는 순간, 손바닥에 있던 동전이 자연스럽게 필자의 손바닥으로 옮겨지는 방식이었다. 동전 전달식이 모두 끝난 후 캐시 브란젤은 참석자들에게 “이 동전을 팔거나 다른 사람에게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재치 있는 경고(?)를 전해 현장에 웃음을 더했다.
캐시 브란젤은 미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 기독교 사역자이자 기도 운동가, 강연가이자 작가이다. 현재 미국 국가 기도의 날 태스크 포스의 회장을 맡고 있다. 수십 년간 기도 사역에 헌신해 왔으며 특히 미국의 영적 회복과 다음세대를 위한 기도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기도의 중요성과 실천 방법을 다룬 여러 권의 책을 집필했다.

기도회 도중 연세가 지긋한 어느 은퇴 군인이 앞으로 나와 참석자 모두 바닥에 무릎을 꿇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200여명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 앉아 있던 의자에 기대어 무릎을 꿇은 채 약 5분 동안 작은 목소리로 나라를 위해 기도했다. 필자는 초등학교 때부터 박사 과정에 이르기까지 23년 동안 영국에서 교육받고 살면서도 학교에서든 교회에서든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은 낯설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한마음으로 나라를 위해 기도했던 시간은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귀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만찬장에서는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특히 많이 눈에 띄었다. 이날은 미국 국가 기도의 날뿐 아니라 미국 건국 250주년도 함께 기념하는 자리였기에, 미국 군인들을 향한 존경과 감사의 시간도 상당히 비중 있게 마련되었다. 그 자리에는 미국의 전설적인 권투 선수이자 목회자, 기업인으로 활동했던 고(故) 조지 포먼의 아들도 참석했다. 또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찰스 국왕, 캐나다 총리, 그리고 여러 미국 대통령들 앞에서 공연한 세계적인 캐나다 음악가 부부이자 ‘SaxAndViolin’ 듀오 아티스트인 일라이 베넷과 로즈메리 지멘스가 행사 시작과 중간 순서에서 직접 찬양을 인도했다.
5월 7일 오전, 필자는 워싱턴 DC 방문자 센터를 통해 미국 국회의사당 하원 조각홀로 입장했다. 오전 8시부터 약 1시간 40분 동안 미국 국가 기도의 날 본 행사가 진행되었으며, 이 행사는 미국 동부 시간 기준으로 당일 저녁 8시에 전 세계로 방송되었다. 올해 미국 국가 기도의 날의 주제는 “열방 중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 모든 세대에 걸쳐 그분을 찾으라(Glorify God Among the Nations – Seeking Him in All Generations)”였으며, 주제는 역대상 16장 24절 말씀인 “그의 영광을 이방 나라들 가운데, 그의 기이한 행적을 모든 민족 가운데 선포할지어다”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행사 주최 측은 모든 나라와 모든 세대가 하나님을 찾고, 그의 영광을 세상 가운데 선포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국가 기도의 날 의장인 캐시 브란젤은 “오늘 드려지는 기도들은 미래 역사책에 쓰이는 잉크(The prayers prayed are the ink on the pages of future history books)”라고 말하며, 국가와 다음세대를 위한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미국 전역에서 수많은 기도가 드려지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앞으로 어떻게 역사하실지를 기대하며 바라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미국 연방하원의장인 마이크 존슨은 이번 미국 연방의회 기념행사(Congressional Observance)를 공동 주최하며, 미국 역사 속에서 신앙과 기도가 중요한 역할을 해왔음을 강조했다. 그는 미국 건국 정신과 공적 영역 안에서 신앙의 역할을 언급하면서 국가를 위한 기도와 영적 회복의 필요성을 말했다.
캐시 브란젤 외에 유일한 여성 강사였던 마거릿 그런 키벤은 미연방의회 채플린이자 미 하원 군목으로, 첫인상부터 강한 자긍심과 품위를 지닌 미국 군인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또 롭 파시엔자, 오스 기니스, AR 버나드 등 미국 교계와 공공 영역의 주요 인사들이 함께 참여해 미국의 지도자들과 군인들, 가정과 교회, 청년 세대, 그리고 미국의 미래를 위해 함께 기도했다. 그중에는 스콧 터너 주택도시개발부 장관도 있었는데, 뛰어난 유머 감각을 지닌 인물로 인상적이었다. 전직 미식축구 선수였던 그는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신앙을 잃지 않고 꿈을 키워온 자신의 진솔한 간증을 전해 참석자들에게 큰 감동을 전했다.
이후 공개된 국가 기도의 날 방송 영상에서는 윌 그레이엄 목사가 자신의 할아버지인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1952년 미국 국가 기도의 날 제정 과정에서 감당했던 역할을 소개했다. 그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미국 사회 안에서 국가적 기도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역사를 설명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복음의 메시지를 전했다.
조각홀은 250명 이상의 좌석을 수용하기 어려운 공간인 만큼, 제한된 초청 인원을 중심으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참석자들 가운데 한국인은 필자 한 명뿐이었다. 국가 기도의 날은 미국에서 법으로 제정돼 운영되고 있으며, 미국 전역에서 수천 건의 국가 기도의 날 행사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 역시 매우 인상적이었다.
오전 행사가 끝난 뒤 오후 12시30분에는 대형버스 4대를 이용해 알링턴 국립묘지로 이동했다. 참석자들은 무명용사의 묘 앞에서 진행되는 위병 교대식(Changing of the Guard)을 참관했고, 특히 미국 국가 기도의 날 팀이 준비한 조화를 헌화하는 시간도 가졌다. 미국 군인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의미가 매우 강하게 느껴지는 자리였다. 필자는 교대식 당시 제임스 데이비스 박사 옆에 서 있었는데, 그는 무명용사 묘 앞에는 항상 미국 군인 1명이 24시간 365일 지키고 있고 매시간 교대식이 진행된다고 설명해주었다.
이후 참석자들은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생가인 마운트 버넌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는 조지 워싱턴과 그의 아내 마사 워싱턴의 묘역을 방문해, 참석자 전원이 약 20여분에 걸쳐 한 명씩 차례로 헌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국가 기도의 날 75주년 행사는 미국 건국 250주년과 함께 기념된 행사였던 만큼, 미국 건국 정신과 신앙적 전통, 그리고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들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의미가 깊게 담겨 있었다.
전체적으로 이번 행사는 단순한 종교 행사를 넘어 미국의 국가 정체성과 역사, 신앙, 애국심, 그리고 공동체 정신이 함께 결합한 국가적 행사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특히 미국 사회 안에서 기독교 신앙이 여전히 공적 영역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점과 나라를 위해 공개적으로 함께 기도하는 문화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인상 깊게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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