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무싸>의 아쉬운 결말? 나는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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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주 기자]
지난 24일, 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을 위해 싸우고 있다>(아래 모자무싸)가 12회로 막을 내렸다. 11화에서 황동만은 마재영과 한판 신나게 싸우고 쓰러진 상태에서 건물 사이의 십자가를 본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읊조린다.
"하나님, 나를 이뻐해주세요."
무가치함에 죽을 만큼 시달리는 인간이, 절대적인 존재라 믿는 각자의 '신'에게 의존할 때 이 기도보다 간결하게 절실함을 담을 수 있을까. 나는 이 기도를 작가가 무가치함과 싸우는 모두를 위해 황동만의 입을 빌려 한 '대표 기도'라고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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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 나를 이뻐해주세요 무가치함에 죽을 만큼 시달리는 인간이, 절대적인 존재라 믿는 각자의 ‘신’에게 의존할 때 이 기도보다 간결하게 절실함을 담을 수 있을까. 나는 이 기도를 작가가 무가치함과 싸우는 모두를 위해 황동만의 입을 빌려 드린 ‘대표 기도’라고 해석한다. |
| ⓒ JTBC |
이 드라마의 결말을 단순히 "모두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식의 쉬운 해피엔딩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 박해영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처음부터 끝까지 붙들고 온 질문, 그러니까 무가치함과 싸우는 인간은 어떻게 다시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하나의 대답처럼 보인다.
황동만은 이 작품이 붙들고 있는 무가치함의 얼굴이고, 은아는 그를 무가치함에서 건져낼 상처 입은 사랑의 '화신'처럼 읽힌다. 황진만 역시 중요하다. 그는 끝까지 스토리를 의심하는 인물이고, 바로 그 의심 때문에 이 작품의 결론을 통과시켜 주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된다.
이런 맥락을 설정하고 앞서 기도 장면을 변곡점으로 해석하면, 왜 박해영 작가가 기존 작품들에서 보여준 추상적이고 열린 결말과 달리, 꽤 평면적이라 할 만큼 꽉 닫힌 해피엔딩을 선택했는지 말할 수 있겠다.
모든 게 스토리 덩어리임을 상징하는 동만의 코트가 찢어진 것은, 그가 믿고 살아온 세계가 한 번 무너지는 장면처럼 보인다. 그토록 입고 다니던 이야기의 외투가 찢어진 것이다. 그러니 그가 은아를 찾아가서 말하는 "근데 왠지 안심이에요. 내 인생은 끝까지 코미디일 것 같아서, 안심이에요. 인생은 코미디여야죠"라는 대사는 이 작품 전체 메시지의 톤을 미리 알려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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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생은 코미디 여야죠 내가 그토록 믿었던 세계에 배신당해도 툭툭 털고 웃어내자고. ‘띠리리리 영구 없다’를 외치던 영구처럼. 그리고 그 웃음을 모두가 ‘바보’라고 비웃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 하나에게 웃음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결코 무가치함이 아니다. |
| ⓒ JTBC |
그런 상태에서 최종회 첫 장면은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가 언제였어요? 아직 한 번도 말해 본 적이 없으시군요"로 시작한다. 은아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보는 우리는 각자의 가장 힘들었던 때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걸 속으로라도 한 번 말해보라는 말로 들렸다.
동만의 형 진만은 또 묻는다. 인생의 목적이 뭐냐고. 동만은 말한다. 웃기게. 나는 그냥 웃기게 살 거야. 이 대답에 마침내 진만은 '통과'를 준다. 진만은 작가 안에서 서사로서의 구원을 시비 걸던 회의주의 같은 존재를 상징하는 듯하다. 실제로 진만은 스토리를 싫어한다고 말하며 이렇게 피력한다.
"모든 스토리는 나는 존재한다는 아우성. 이렇게 아프게 존재해. 이렇게 슬프게 존재해. 이렇게 우울하게 존재해. 이렇게 웃기게 존재해. 기껏해야 100년, 100년이면 다 사라지는데, 사라지는 것이 진정 존재했던 건가. 그런 의문을 잠재우기 위해 정신없이 스토리를 써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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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아 있는 한 스토리를 써야 한다면 이왕이면 웃기게 그래서 진만의 ‘통과’는 단순히 형이 동생을 인정하는 장면이 아니다. 그것은 스토리 자체를 의심하던 자가, 끝내 어떤 스토리 하나를 통과시켜 주는 장면이다. 아프게 존재한다고 외치는 이야기, 슬프게 존재한다고 외치는 이야기, 우울하게 존재한다고 외치는 이야기를 지나, 마침내 웃기게 존재하겠다는 이야기는 통과된다. |
| ⓒ JTBC |
"살아 있는 한 스토리를 써야 한다면 이왕이면 웃기게. 난 그렇게 못 살았지만 넌 웃기게."
이 장면은 작가가 자기 안의 회의주의를 통과하는 장면처럼 보인다. 살아 있는 한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다면, 이왕이면 누군가를 살리는 쪽으로. 이왕이면 웃기는 쪽으로. 이왕이면 모두가 조금씩 덜 무가치해지는 쪽으로.
이런 흐름에서 작가가 이 해피엔딩을 준비했다고 보이는 것이다. 각자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는 모두에게, "하나님, 저를 이뻐해주세요"라는 기도가 응답된다면 마치 이런 '웃긴' 삶이 허락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웃긴다는 것은 유머라는 축소된 영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드라마를 볼 때 우리가 언제 웃었나를 보면 더욱 선명히 알 수 있다. 이게 사람 사는 거구나. 그래, 이게 인간이구나. 그런 대목에서 웃지 않았나. 그 장면들을 보면서 우리도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 같아서 울고 웃지 않았나. 웃기다는 건 바로 그 지점이다.
더구나 웃음은 혼자 완성되지 않는다. 웃기게 산다는 것은 결국 누군가를 웃게 하겠다는 말이다. 그러니 동만의 "웃기게 살겠다"는 선언은 자기 인생을 가볍게 소비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잠깐이라도 웃음을 줄 수 있다면, 내가 누군가의 굳은 얼굴을 아주 조금이라도 풀어줄 수 있다면, 그 삶은 무가치하지 않다는 고백에 가깝다.
그러므로 이 드라마에서 웃김은 개인의 생존 방식이면서 동시에 공동체를 살리는 방식이다. 동만이 은아를 웃게 하고, 은아가 동만을 살리고, 그 둘의 파동이 주변 사람들에게 번져간다. 이쯤 되면 웃음은 장르가 아니라 구원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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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자무싸 엔딩 이게 최선일까 물론 이런 결말은 고루하다고 말할 수 있다. 모두가 화해하고, 모두가 웃고, 모두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결말. 요즘 같은 시대에는 오히려 지나치게 순진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나는 오히려 이 고루함이야말로 작가가 끝까지 밀어붙인 가장 과감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
| ⓒ JTBC |
그래서 최종회의 "모두가 잘 되었습니다" 식 결말은 얼핏 고루해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이 작품이 처음부터 밀어온 제목의 윤리에 충실한 결말이기도 하다. 제목부터 이미 <동만과 은아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가 아니었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였다. 그렇다면 마지막에 회복되어야 할 사람도 둘만이어서는 안 된다. 모두여야 한다.
물론 이런 결말은 고루하다고 말할 수 있다. 모두가 화해하고, 모두가 웃고, 모두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결말. 요즘 같은 시대에는 오히려 지나치게 순진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나는 오히려 이 고루함이야말로 작가가 끝까지 밀어붙인 가장 과감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냉소가 세련됨처럼 소비되는 시대에, 모두가 사이좋게 잘 지내는 결말은 오히려 가장 촌스럽고 가장 어려운 꿈이다. 박해영 작가는 이번에 그 촌스러운 꿈을 피하지 않았다. 아니, 정면으로 밀어붙였다. 무가치함과 싸우는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더 세련된 절망이 아니라, 어쩌면 이렇게 말도 안 되게 다정한 세계 하나였는지도 모른다.
이 드라마의 마지막은 그 질문들을 버린 것이 아니라, 다소 노골적일 만큼 정직하게 끌어안은 쪽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이 결말을 급조된 봉합이 아니라, 박해영 작가가 이번에는 피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인 다정한 결론이라고 본다.
이런 의도라면 당연히 '통과'다. 마지막 대사로 동만의 입을 빌려 "함께해줘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만들겠습니다. 감사합니다"까지 곁들였으니. 뭐.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는 모두에게 던진 거대하고 촘촘하고 아름다운 12편의 세레나데가 이렇게 막을 내린다. 영원히 깨고 싶지 않은 꿈이었다. 둘 만 살아남는 사랑이 아니라, 둘의 사랑이 흘러넘쳐 주변의 모두를 조금씩 살려내는 꿈. 그러니 이것은 게으른 해피엔딩이 아니라, 박해영 작가가 끝내 포기하지 않은 가장 다정한 구원론이었다.
모자무싸 엔딩, 과연 이게 최선이었을까? 모르겠다. 완벽했느냐고 묻는다면 여전히 몇 개의 아쉬움은 남는다. 그러나 적어도 이 작품이 끝내 가닿고 싶었던 사랑의 모양으로는, 이보다 더 정직한 결말이 있었을까 싶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내가 봐온 사랑의 발음 중에서는 가장 최선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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