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늙을결심] 강아지와 오래 산책 하려고 70대 어르신이 아침마다 가는 곳

이혜란 2026. 5. 26.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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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늙을 결심] "내가 힘이 있어야 얘도 데리고 다니지"... 10년 후엔 어쩌면 나도 반려견을

잘 사는 것은 웰빙, 잘 죽는 것은 웰다잉, 잘 늙어가는 것은 웰에이징이다. 100세 시대, 삶에서 가장 긴 구간을 웰에이징하기 위한 마음은 모두에게 중요하다. 인생의 중반부에 들어선 지금, 후반부를 웰에이징하기 위한 결심들을 소개한다. <편집자말>

[이혜란 기자]

산책하기 좋은 계절이 되었다. 산과 호수를 끼고 있어 조용하고 자연환경이 좋은 우리 동네 산책 시즌이 되었다. 이런 날은 집에 있기 아쉬워 하루 중 어느 때라도 나와 걸으며 제철 계절을 온몸으로 느끼고 감상한다.

학군지나 도심의 성격과는 사뭇 다른 지역 특성상 주민들의 평균 연령이 높다. 학령기를 둔 부모 세대들도 있지만 그 윗세대의 어르신 세대도 많다. 그리고 산책길에 나설 때마다, 심심치 않게 개와 산책하는 반려 가족들을 보게 된다. 아파트 단지는 물론 공원과 호수 데크길 등 어디에서도 산책하는 그들의 모습은 익숙하다.

개 산책시키며 하루 만보 걷기
▲ 강아지와 산책하는 어르신 산책길
ⓒ 이혜란
특히 젊은 세대 뿐 아니라 윗세대의 반려가족이 눈에 자주 보인다. 이들은 젊은 세대 못지 않게 개 산책 에티켓도 철저하여 리드줄은 물론이고 배변봉투까지 챙겨가며 산책을 즐긴다. 개와 발걸음을 맞춰가며 더운 여름날엔 그늘에서 물을 먹이며 쉬게 하고, 겨울이면 방한복을 입혀 체온을 유지 시켜준다. 개를 가족으로 대하는 마음은 젊은 세대 못지 않다.

실제로 KB 경영연구소의 2025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반려가구는 2024년 말 기준 591만 가구로, 전체 가구의 26.7%, 반려인은 1,546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9.9%를 차지했다. 열명 중 약 세 명이 반려인인 셈이다.

우리 아파트 동에는 매일 개 산책을 위해 외출하는 반려 가족들이 있다. 모두 자녀들을 독립시키고, 부부가 함께 생활하는 가정이다. 산책길에 종종 마주치다보니 개의 이름을 알게 되어 자연스레 친분을 쌓아갔다.

특히 눈빛이 초롱초롱하고 활동량이 남다른 이제 막 1살을 넘긴 시바견을 키우는 9층의 어르신을 자주 만난다. 일에서 은퇴를 하시고 자녀들이 독립하며 시간적 여유가 생기자 주변의 추천으로 개를 입양하셨다고 했다. 처음 반려 가족이 되면서 생각지도 못한 부분들이 많았는데, 그 중 가장 힘든 것이 산책이었다. 견종의 특성상 왕성한 활동력으로 하루 2번 1시간씩 산책을 시켜줘야 했다.

실제로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녀석은 늘 호기심에 가득찬 눈빛으로 사람을 대하고, 얼른 산책을 가고 싶어 꼬리에 잔뜩 신이 난 모습이다. 70대가 훌쩍 넘으신 어르신은 녀석과 오래 산책하기 위해 아침마다 헬스장에 간다고 했다. 이른 아침 운동을 마친 뒤, 오전과 저녁 두 번의 산책을 나가는 것이 하루의 루틴이 되었다. 개 산책 때마다 하루 1만보 이상을 걷고 오신다는 어르신.

"내가 힘이 있어야 얘도 오래 데리고 다니지."

하루 중 산책 시간만 기다리는 개의 눈빛을 보면 아무리 힘들어도 나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반강제 만보 걷기 덕분에 은퇴 후 더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다며 웃으셨다.

사람에게 호의적인 9층 개와는 반대로 경계심이 심한 개를 키우는 4층 반려 가족도 있다. 한번씩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마주치는 그 개는 사람을 보면 심하게 짖었다. 작은 덩치도 아니었기에 한번 짖으면 깜짝 놀랐고, 그때마다 어르신은 사람들에게 미안해하며 개를 달랬다.

불편한 삶을 기꺼이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기
▲ 꽃산책길 강아지와 함께 꽃길을 걷는 반려인
ⓒ 이혜란
볕이 좋은 한낮에는 잘 보이지 않던 4층 개와 어르신을 다시 본건 이른 오전이었다. 사람이 적은 비교적 한산한 시간대에 산책을 다녔던 것이다. 매일 그 시간에 개와 함께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모습을 종종 뵈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하면, 먼저 타고 올라가시라고 자리를 피하신 후 사람들이 모두 없을 때에야 비로소 개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오르셨다.

나를 볼 때마다 짖던 개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더니 짖지 않았다. 이 방법을 터득한 나는 이제 4층 개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시선은 앞을 고정한 채 어르신과 몇 마디의 대화를 나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짖지 않아서 잘했다며 4층 개는 그날 간식을 얻어먹었다.

예민한 개와 함께 사는 일은 여러 가지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이다. 어쩌면 어린 아이를 다시 한번 키우는 것과 같은 일일지도 모른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존재를 먹이고 키우고 받아들이며 함께 살아가는 일. 주변을 먼저 살피고, 타인의 불편을 헤아리는 어르신의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많은 반려 가족들이 있고, 매일 산책길에 만나는 다양한 얼굴들이 있지만 유독 내 눈길을 끄는 것은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발랄한 개의 뒷모습이다. 그들이 함께 걷는 발자국들을 따라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내 인생의 후반부를 떠올린다.

어쩌면 사람은 누군가를 돌보며 살아갈 때 가장 현재를 생생하게 느끼며 사는지도 모른다. 나이와 상관없이 내 시간과 체력, 마음을 써야 할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삶을 활기차게 움직이게 만든다.

지금은 고양이 가족으로서 집안에서 조용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나에게도 큰 꿈이 하나 생겼다. 언젠가 나도 시간과 에너지의 여유가 생기는 인생의 시기가 온다면, 그땐 매일 산책을 함께 나갈 수 있는 소중한 반려견을 맞이하고 싶다. 그런 노년이라면 두렵기보다는 기대가 된다.

《 group 》 잘늙을결심 : https://omn.kr/group/well_aging_2026
인생의 중반부에 들어선 지금, 후반부를 웰에이징하기 위한 결심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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