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막으려 핵발전소 건드릴 수도...대통령에게 토론 요청한 이유

정소은 2026. 5. 26.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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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환경생태 현장르포 - 핵발전소와 재생에너지] 에너지정의행동 이헌석 정책위원 인터뷰

인류를 구원할 것 같은 기술 문명이 실은 뭇생명을 죽이고, 지역을 초토화하며 공동체를 찢어놓으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AI 산업은 더 많은 에너지를 내놓으라고 우리를 닦달할 뿐 그 무엇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방향을 모르고 전력질주하는 기술 개발을 당장 멈추어야 합니다. 핵발전소 없이 살아갈 수 있지만, 물과 깨끗한 공기, 흙과 이웃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게 생명입니다. 생명으로서 우리가 빼앗기는 것이 무엇인지 잊지 않으려 합니다. <기자말>

[정소은 기자]

 지난 1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바람직한 에너지믹스 정책토론회(2차)'에서 이헌석 위원이 토론회 핵심 주제인 ‘신규 핵발전소 2기 건설 여부’가 현장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은 상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 기후에너지환경부
고대 문명은 강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삶에서 '물'이라는 자원이 절대적이므로. 지금도 여러 지역에서는 강을 따라 형성된 마을 구획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는 걸 볼 수 있다. 비슷한 느낌을 주는 풍경을 도심 한복판에서도 자주 접한다. 카페, 도서관, 터미널, 기차역 등 다중이 이용하는 장소에서는 유독 콘센트 주변의 인구밀도가 높다. 마치 물줄기를 따라 만들어진 마을처럼.

배터리 눈금이 낮아질수록 초조해진다. 전원 OFF, 그건 단지 기기가 작동하지 않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특히 어릴 때부터 네트워크에 접속된 삶이 일상인 세대에게 '전원 꺼짐'이란, 세계와의 접속 해제, 단절, 진공 상태에 가깝다. 전기는 우리 삶 전체에 모세혈관처럼 스며들었다. 물에 의한 재난이 폭우나 홍수라면, 전기 문명에서의 치명적 재난은 블랙아웃(blackout, 정전)일 것이다.

바로 그런 재난이 2011년 한국에서 벌어졌다. '9.15 대규모 순환 정전'. 추석 연휴 직후 이례적 폭염으로 냉방 수요가 폭증, 전국 전력 수요가 예상치를 크게 초과했고, 전력예비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결국, 정부와 한국전력거래소는 전국적 순환 정전(지역별로 전력을 순차적 차단·재개해 과부하를 줄이는 조치)을 실시했다. 162만 가구의 전기, 엘리베이터, 공장, 신호동이 멈춰 대규모 혼란이 벌어졌다. 전력 수요 예측 실패와 예비력 부족, 기관 간 대응 미흡 등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 사건이 일종의 계기가 되었는지, 이후부터 전력 수요를 보다 보수적으로 전망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부족하면 핀잔 듣고 남으면 후덕하다 칭찬 듣는 잔치 음식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당시로써는 '국가가 멈춘' 사건에 가까웠지만, 어느덧 사람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져 갔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2025년 가을, 추석 연휴를 앞두고 또 다른 대규모 정전 위기가 거론됐다. 전력 당국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긴장감이 고조되었으나, 다행히 시민들 상당수는 직접적으로 체감하지 못한 채 지나갔다. 흐린 날씨 덕분에 '위기'로만 그칠 수 있었던 것. 말 그대로 '하늘이 도운' 거였다.

전기 '부족'의 공포에서 '과잉'의 공포로
 서울 중구의 한 집합 건물 관계자가 이 건물에 설치된 전력량계를 점검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2011년에 발생한 정전, 2025년의 정전 위기, 이 둘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2011년에는 전력 부족이 원인이었고, 2025년에는 전기가 남아도는 게 문제였다. 전기가 남는데 정전이라니. '절전'이라는 구호가 입에 붙을 만큼 전기는 '아껴 써야 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정전은 전력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도 발생하지만, 공급이 넘쳐도 발생한다. 심각한 저혈압이나 고혈압 모두가 위험한 것과 같다. 만약 전국에서 100만큼의 전기를 쓰고 있을 때 발전소들이 80밖에 못 만든다면, 전압과 주파수가 낮아지고, 발전기가 멈춰 정전으로 이어진다. 반대일 경우, 전압과 주파수 상승으로 인해 역시 정전을 유발한다. 작년의 위기는 그렇게 지나갔지만, 올해는 어떻게 될까. 국내 전력정책 현황을 묻기 위해 에너지정의행동 이헌석 정책위원을 만났다.

"지금 전기가 굉장히 많이 남고 있어요. 이명박 정부 때 발전소를 엄청나게 지었거든요. 비판이 많았었는데도 석탄화력발전소에 엄청나게 많은 인허가를 내줬죠. 그래서 지금 전력예비율이 충분한 상황입니다. 전력예비율이 충분하다는 건, '안 지어도 될 발전소를 지었다'는 뜻이죠. 그건 결국 우리의 전기요금에 고스란히 다 반영됩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그 누구도 책임을 진다거나 사후 검토조차 하지 않고 있어요. 지극히 기본적인 민주적 절차가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겁니다."

2011년 순환 정전과 2025년 정전 위기, 그 사이에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확산이라는 변수가 등장했다. 정책 지원, 태양광 패널 가격 하락 등으로 전국 농촌과 산지에 태양광 발전 시설이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다. 제주처럼 태양광·풍력 발전 비중이 높은 지역에는 급기야 '출력제한'이라는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출력제한'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과할 경우, 발전량을 강제로 줄여 균형을 맞추는 것을 말한다. 사실상 한국전력거래소(KPX)가 발전사업자의 스위치를 '강제로 끄는' 조치다.

전력 수요가 낮아지는 봄·가을의 경우, 재생에너지뿐 아니라 석탄·가스도 출력제한을 해야 한다. 반면, 핵발전소는 필요시마다 출력제한에 동원되지는 않는다. 100% 출력 운전을 전제로 설계되었기에, 출력을 끄거나 줄이는 것에 치명적 위험부담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 '경직성 전원'이라 부른다. 핵발전소와 달리 상대적으로 '유연한' 재생에너지가 우선적으로 출력제한 조치를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발전기를 가동하지 못함으로 인해 생긴 손해는 고스란히 발전사업자 개인의 몫이다.

재생에너지·석탄·액화천연가스(LNG)가 출력제한의 희생을 치르는 것으로도 과잉공급 해결이 어려울 경우, 결국 경직성 전원인 핵발전소도 어쩔 수 없이 출력 조절에 가세해야 한다. 출력량을 의도적으로 '낮추는' 것을 '감발(減發)'이라 한다. 핵발전소의 반복적인 감발은 원자로와 핵연료에 열적·기계적 스트레스를 누적시켜 안전성을 위협하기에, 매우 까다로운 작업이다.

국가 에너지 미래를 설계하는 '전력수급기본계획'
 지난 4월 22일 서울 양천구 한국방송회관에서 열린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대국민 정책 토론회에서 수요계획소위원회 위원장인 허진 이화여대 교수가 수요전망 종합발표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재명 정부는 '기존 원전은 유지하되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에너지 믹스' 기조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경직성이 큰 원전 중심 전력망과, 계통 상황에 따라 출력제한이 반복되는 재생에너지의 공존은 현실적으로 복잡한 과제를 안고 있다.

"정부가 말하는 '재생에너지도 하고, 핵발전도 한다'는 것이 말처럼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국민이 보기엔 '둘 다 발전기니까, 다 있으면 더 좋은 것 아니겠냐'고 생각할 수 있겠죠. 하지만, 전기라는 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발전원(發電源) 사이의 궁합이 무척 중요합니다."

발전원을 어떻게 조합(mix)하느냐에 따라 전력망 전체의 성격이 달라진다. 그 '설계도' 역할을 하는 것이 '전력수급기본계획'이다. 이름조차 생소한 이 계획을, 업계에서는 '전기본'이라 줄여 부른다. 이는 정부가 2년마다 수립하는 15년 단위 국가 전력계획이다. 미래 전력 수요를 예측하고, 그에 맞춰 발전소·송전망·전력설비 확충 방향 등을 담는, 한국 전력정책의 큰 방향을 결정하는 계획안이다.

지난 4월 22일 서울 한국방송회관에서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공개토론회"가 열렸다. 학계·산업계·연구 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핵발전과 재생에너지의 역할, 수요전망 모형의 타당성에 관한 발제 및 토론으로 이루어진 자리였다.

"정부와 각을 세우는 시민단체의 목소리는 철저하게 배제되고 있어요. 큰 틀에서 시민단체 활동했던 분이 계시긴 하지만, 핵발전소 문제와 관련해서 명확하게 반대를 표명한 단체 인사는 아무도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전기본 자료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떤 기시감이 느껴진다. 미래 산업, 도시, 송전망, 발전소의 위치까지 국가가 미리 계산해 배치하는 방식. 수십 년간 한국 사회를 움직여온, 오래된 개발국가 시스템의 흔적을 상기시킨다.

"우리나라가 왜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짜게 되었는지를 따라가 보면, 박정희 정권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당시 정부가 전력에 대해 '수요가 이렇게 될 거다'라고 주도적으로 예측하고 그에 따라 발전소를 지었던 시절, 소위 '경제개발 몇 개년 계획'과 같은 표현의 잔재가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이죠. 전기본은 중간에 명칭이 몇 번 바뀌었지만, 정부 주도하에 계획을 수립하고 그에 따라 발전소를 건설하는 틀은 전혀 바뀌지 않았어요."

전력수요를 산출하는 장치, '모형 식'이 감추고 있는 것들

전기본 공개토론회의 주된 목적은 향후 '전력 수요'를 전망하고, 그 숫자가 어떤 미래를 전제하고 있는지 함께 검증하는 것이다. 미래의 전력 수요를 계산할 때, 아래와 같은 일명 '모형 수요'를 사용한다.
 12차 전기본 자료집에 수록된 ‘전력수요 전망 모형식’. 정부는 이 수식을 바탕으로 미래 전력소비량, 이른바 ‘모형수요’를 계산한다.
ⓒ 기후에너지환경부
복잡해 보이는 이 수식은 한마디로, '괄호 속에 여러 변수를 입력해 결괏값을 산출'하는 구조다. 즉 정부는 '경제가 얼마나 성장할지', '산업 구조가 어떻게 변할지', '날씨가 얼마나 더워질지' 등의 요소들을 넣어가며 수요를 계산해 전기본을 수립한다.

"이 '모형 수요'의 적절성 여부에 대해 단 한 번도 공개적 검토가 이루어진 적이 없어요. 국내총생산(GDP), 산업 구조, 인구 정도만 명시되어 있지, 구체적으로 어떤 변수를 대입해 결괏값을 산출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굉장히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거죠."

여기에서 가장 핵심 변수로 작용하는 요소는 GDP다.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들의 방식은 전혀 다르다. 한국이 '단일 수요전망'으로 구체적 '값을 도출'하는 접근이라면, 미국이나 영국의 경우 '복수(複數)'의 시나리오를 토대로, 미래에 생길 '다양한 경우의 수'에 대비한다.

즉, 12차 전기본은 AI 데이터센터·반도체 산업 등 고전력 산업 수요를 공통 전제로 한 '제한적 시나리오'에 가까워 보인다. '얼마나 더 늘어날 것인가'는 고려했지만, '에너지를 덜 쓰는 미래'나 '다른 산업 구조에 대한 상상'은 여전히 찾아보기 어렵다.

"전기본의 '모형 수요' 자체가 너무 '과대평가되어 있다'는 지적이 계속 나옵니다. 전력 수요 과대평가 논란이 있었던 11차 전기본보다 12차 전기본 모형 수요가 대폭 줄었습니다. 반도체 업계의 장기적인 장밋빛 전망도 있는 그대로 반영하진 않았고요. 어쨌든 그들도 나름대로 결함을 고쳐 나가는 중인 거예요. 그런 과정을 '과학적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그렇지 못하다'고 답할 수밖에 없죠. 그때그때의 상황을 그저 모형에 끼워 맞추는 것 같다고 표현하는 게 적합하다고 봅니다."

과대평가된 모형, 과학적이지 못한 수요 전망, 폐쇄적 운영, 또 하나의 문제점은 이전 회차 전기본에 대한 평가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한 수요 전망으로 전력예비율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과거에 대한 평가도 없이 더 많은 발전소를 계속 짓고만 있다.

"과거에 수립했던 계획을 평가하는 건 정말 중요하거든요. 그런데 전혀 안 되고 있어요. 심지어 여태껏 "신규 핵발전소를 지어야만 하느냐 마느냐"에 대해 제대로 된 토론조차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신규핵발전소 저지 전국비상행동'에서 대통령에게 공개토론회를 제안하려는 상황입니다."

국민에게 철저히 닫혀 있는 '전기본'
 지난 4월 22일 서울 양천구 한국방송회관에서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대국민 정책 토론회가 열린 가운데 토론회장 밖에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전기본은 국가 전체의 전력 설계도라 할 수 있다. 그만큼 막대한 산업적 이해관계, 탄소 중립, 탈핵, 재생에너지 등 여러 이슈가 교차한다. 여전히 대다수 시민에게 낯선 만큼 공론화 역할이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전기본 수립 과정의 논의는 일부 업계 관계자와 전문가 집단 중심으로 극히 폐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저는 기본적으로 '에너지 민주주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요. 24년간 전기본을 수립해 오는 동안 관련 논의를 기록한 회의록이 단 한 차례도 공개된 적이 없어요. 회의록이 작성은 되고 있느냐? 그것도 명확하지 않아요. 국회에서 국정감사 자료로 요구했을 때도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지나간 10차, 11차 전기본 회의록을 요청해도 안 줍니다. 오로지 '결과'만 공개하는 거예요. 최종적으로 확정된 '계획서'만 볼 수 있는 겁니다.

국회에 문의해도 답변은 늘 한결같아요. '관련 전문가들이 각자의 소신을 갖고 발언할 수 있어야 하는데, 회의록이 공개되면 그럴 수 없다.'"

전기본이 만들어지는 과정 전체가 시민들에게 지나치게 멀고 닫혀 있다. 현재 전기본 수립 과정에 '공청회' 절차가 포함되어 있긴 하나, 주민 반대 등으로 진행이 어려울 경우 다른 방식으로 갈음할 수 있는 조항이 존재한다. 수많은 쟁점을 제한된 시간 안에 압축적으로 다뤄야 하기에 깊이 있는 논의도 어렵다. 특히 송전망·전력망 사업의 주민 의견수렴 절차는 요식행위에 그친다. 이런 구조가 관련 법령에 따라 버젓이 제도화되어 있는 것이다. '전기사업법'과 '전원개발촉진법' 등 법 개정에 대한 요구가 멈추지 않는 이유다. 여기에 '특별법'까지 가세해 폐쇄적 의사결정에 추진력을 배가시키고 있다.

"'특별법'의 핵심은 절차를 간소화하는 거예요. 전기본에 일단 반영만 되면, '전원개발촉진법'에 의해서 발전소 건설에 필요한 20~30가지 정도의 인허가 절차가 일사천리로 처리됩니다. 그 안에는 묘지, 산림, 도로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다 포함돼 있어요. '전원개발촉진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제 특별법까지 통과되었으니, 여기에 추가적인 패스트 트랙이 더해지는 거죠."

시민 참여와 공론화 가능성이 차단된 것은 작년 12월과 올해 1월에 열린 "바람직한 에너지믹스 정책토론회"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신규 핵발전소 2기 건설 여부'에 대한 공론화를 위해 마련된 정책토론회였는데, 정작 그 주제는 제대로 다뤄지지도 않았다. 이헌석 위원은 현장에서 맹렬히 문제를 제기했다. "공론화가 본격화되기도 전에 답변 유도형 질문을 토대로 한 여론조사가 이미 시작되었고, 무엇보다도 토론회 핵심 주제인 '신규 핵발전소 건설 여부'에 관해서는 패널 중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다"며 토론회 세팅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음을 지적했다.

'질문하는 감각'에서 에너지 민주주의 시작
 "폐쇄적인 전기본에 대해 시민 개개인이 스마트해질 필요가 있겠다, 무엇부터 시작하면 좋을까"라는 질문에, 이헌석 정책위원은 자신이 사용 중인 스마트 전력 관리 앱에 관해 설명해주고 있다. "시민들이 자신이 전기를 얼마나 어떻게 소비하는지 알고 싶어도 고지서를 받아보기 전까진 알기 어렵죠. 지금의 IT 망에서 그런 건 아주 쉽거든요. 저는 스마트 전력 관리 앱을 깔아서 우리 집 전기 사용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어요."
ⓒ 정소은
수도권을 제외한 상당수 지역이 송전탑, 송전선로로 뒤덮여가고 있다. 가장 많은 전기를 소비하는 수도권을 위해 비수도권 지역이 '원거리 대량운송 시스템'으로 전락하는 것만 같다. 이것이 착취의 그물망이 아닌, 민주적 전력망이 되려면, 시민 개개인은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언제부턴가 건강, 공정 무역, 환경과 같은 '가치'를 고민하는 것이 우리의 표준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에너지 문제에 있어서는 여전히 '이 전기가 핵발전으로 온 건지, 재생에너지로 온 건지, 그런 건 모르겠고, 그저 값싸고 안 끊어지면 된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확실히 '전기' 이슈가 먹거리 문제만큼 친숙하지는 않죠. 하지만, 우린 매일 전기를 쓰고 있고, 앞으로 점점 더 많은 전기를 쓰게 될 거예요. 그런 맥락에서 우리 감각을 조금씩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쓰는 전기가 우리 집까지 오는 과정에서 어떤 논란을 겪고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감각'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러면 전기를 중심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비로소 보일 겁니다."

주민들이 반대하는데 정부가 밀고 들어가는 방식이 유효한 시절은 이제 끝났다고, 이헌석 위원은 말한다. AI와 데이터센터를 논하는 지금, 지역 주민을 설득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방식은 수십 년간 단 한 번도 업데이트되지 못했다. 국가의 중요 기간망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밀어붙이는 방식을 보고 있노라면, 핵발전이나 재생에너지보다 연탄이나 장작을 때는 것이 어울릴 것만 같다.

지방 선거로 시끄러운 요즘, '지역 대표를 내 손으로 뽑는 거면, 우리나라 민주주의 맞겠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겠지만, 국토를 휘감은 전력망 어디에서도 에너지 민주주의를 찾아보긴 어렵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전력은 발전소에서 나오지만,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2024년 9월, 11차 전기본 공청회장에서 ‘11차 전기본 정부안 백지화’를 요구하며 단상에서 구호를 외친 지역 주민들과 활동가를 경찰이 강제로 연행하고 있다.
ⓒ 11차전력수급기본계획백지화네트워크

덧붙이는 글 | 2024년 9월, 제11차 전기본 공청회에서 지역 주민과 활동가들이 단상에 올라 항의 구호를 외치다 연행되었고, 이후 이들에게 각각 100만 원의 벌금이 부과되었다.(에너지정의행동 이헌석 정책위원도 포함되어 있다) 11차 전기본은 노후핵발전소 수명연장, 대형 신규 핵발전소 3기 추가 건설, 전력 수요 과다 산정 및 송전탑 건설 등 여러 문제가 있으나 사회적 논의도 합의도 없었다. 11차 전기본 백지화 요구를 위해 전국 각지의 주민, 활동가들이 공청회장 단상에 올라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수십 년간 전기본 공청회 무산, 공청회장 내 시위 등 많은 일이 있었지만, 벌금형으로 시민들을 처벌한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단상에서 시위한 이들 모두 수갑이 채워진 채 끌려 나왔고, 폭력 진압에는 면죄부가, 무고한 시민에겐 벌금형이 내려졌다.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공청회 폭력 연행 사건 형사재판 1심 선고에 따른 [성명] https://docs.google.com/document/d/14DiiDUOLZmqrUCX39ZE-lvZxUIfwwPfKZc2vBJw2nqQ/mobileba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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