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의 자로 2026년 농업을 잴 수 있는가

남재작 2026. 5. 26.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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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 경자유전 그리고 흔들리는 농업의 기반

[남재작 기자]

ⓒ unsplash
1949년, 한반도 남쪽의 들판에서 거대한 개혁이 시작됐다. 지주의 땅을 사들여 소작농에게 나누어 주는 농지개혁이었다. 그 바탕에는 경자유전이 있었다. 농지는 농사짓는 사람이 가져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그때 농지는 '농가'를 단위로 나뉘었다. 한 호(戶)당 3정보의 상한을 두고, 농가를 기준으로 분배했다. 당시의 농가는 농업 그 자체였다. 한 가구가 곧 경영체였고 생산자였으며, 동시에 소비자이자 거주자였다. 농가 수를 세는 일은 농업의 크기를 재는 일이었다. 그 시대에 농가라는 자는 정확했다.

77년이 지났다. 우리는 여전히 그 자를 들고 있다. 농가 수를 세고, 농가 소득을 따지고, 농가를 기준으로 농지 소유를 판단한다. 그런데 1949년에 만든 그 자로 2026년의 농업을 잴 수 있는가.

한쪽은 줄고, 한쪽은 늘었다

한국 농업을 말할 때 가장 자주 인용되는 기본 통계는 농가 수다. 2024년 기준 한국의 농가는 97만 4천 가구다. 1949년 248만 농가에서 60% 넘게 줄었다. 이 숫자 뒤에는 거의 언제나 같은 진단이 따라붙는다. 농가가 줄고 있다. 농촌이 사라진다. 농업이 위태롭다.

그런데 같은 농업을 가리키는 또 다른 숫자가 있다. 농업경영체 등록정보다. 행정기관에 정보를 등록한 농업인과 농업법인은 2024년 기준 약 184만이다. 2010년대 중반 160만 대였던 등록 경영체는 오히려 늘었다. 한쪽에서는 농가가 줄고, 다른 한쪽에서는 경영체가 늘어난다.

물론 두 숫자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농가는 가구 단위 조사 통계이고, 경영체 등록정보는 행정 자료다. 작성 방식도 모집단도 다르다. 그러나 한국 농업을 설명하는 두 개의 자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는 사실은 남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엇갈린 숫자를 너무 쉽게 받아들인다. 농가 수 감소는 위기로 읽으면서, 경영체 수 증가는 애써 무시한다. 숫자는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데도, 정작 의심하지 않는 것이 있다. 농업을 재는 자 자체가 낡았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다.

낡은 단위, 한국만 붙들고 있는 자

농가라는 통계 단위는 1930년대에서 1950년대 사이에 형성됐다. 조선총독부의 농가경제조사는 호(戶)를 단위로 삼았고, 해방 뒤 농지개혁도 그 호를 농지 분배의 기본 단위로 삼았다. 농가가 생산의 주체이자 소비의 주체이며 거주의 주체라는 전제 위에 선 단위였다.

그 전제는 당시 현실과 맞았다. 그러나 오늘의 농업은 그 그림에서 멀어졌다. 외국인 노동자와 계절근로자 없이는 수확을 마치기 어려운 품목이 많고, 농산물 대부분은 자가소비가 아니라 시장으로 향한다. 땅을 가진 사람과 실제 농사짓는 사람이 다르거나, 농작업 전체가 위탁되는 경우도 흔하다.

게다가 농가 기준은 지나치게 넓다. 경지 약 300평 이상을 경작하거나 연간 농축산물 판매액이 120만 원 이상이면 농가에 포함된다. 평생 농업에 종사한 전업농도, 텃밭 수준의 자급 농가도, 주말에만 농사짓는 도시민도 모두 같은 '농가'로 묶인다. 같은 이름 아래 묶이지만, 농업에서 차지하는 무게는 전혀 다르다.

다른 나라도 농가라는 자를 쓸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유럽연합은 단일 경영 아래 묶인 기술적·경제적 단위인 농업경영체(Agricultural Holding)를 기본 단위로 삼고, 미국도 일정 규모 이상의 농업 운영 단위를 기준으로 농업을 파악한다. 일본 역시 2005년 농림업센서스 이후 경영체 조사로 무게 중심을 옮겼다. 이들이 보는 단위는 가구가 아니라 경영이다.

따라서 정책의 질문도 달라진다. "농가를 얼마나 유지할 것인가"가 아니라 "농업을 누가, 어떤 규모와 방식으로 이어 갈 것인가"를 묻는다. 반면 한국 농정은 여전히 농가를 중심에 둔다. 대표적인 지표가 농가소득이다. 여기에는 농사로 번 돈뿐 아니라 농외소득과 이전소득, 보조금이 섞인다. 농가소득이 늘었다고 해서 농업이 더 많은 부가가치를 만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농가라는 그릇으로 농업을 재면, 농업의 성과와 가구의 생계가 뒤섞인다.

토대가 바뀌었는데 원칙만 그대로다

이 문제는 통계에 머물지 않는다. 농가라는 단위는 농지제도에도 깊숙이 박혀 있다. 경자유전은 농지를 농사짓는 사람에게 돌려준 원칙이었지만, 실제로 농지를 나눈 단위는 농가였다. 농가 수와 농가소득이라는 통계, 경자유전이라는 제도는 서로 다른 문제가 아니다. 같은 역사적 토대에서 나온 유산이다.

농지개혁은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개혁 중 하나였다. 소작농을 자작농으로 세웠고, 토지에 묶여 있던 사람과 자본을 풀어 산업화의 기반을 마련했다. 경자유전은 그 시대의 정의였고, 현실적 해법이었다. 문제는 그 원칙이 놓였던 토대가 바뀌었다는 데 있다.

농가가 생산·소비·거주의 결합체였던 시대는 지나갔다. 그런데도 청년농 정책, 직불금, 농가소득 대책, 농지제도는 여전히 이 오래된 단위 위에 올라가 있다. 농가라는 단위가 오늘의 농업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 위에 세운 정책도 현실을 비껴갈 수밖에 없다.

그 결과는 농업 구조에 드러난다. 2헥타르 미만 농가가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고, 1헥타르 미만 농가도 70%를 웃돈다. 농가 한 곳의 평균 경지면적은 1.5헥타르 안팎이다. 한때 우리와 비슷했던 일본의 농업경영체 평균 경지면적과 비교해도, 이제는 그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약해진 기반, 수입이 가려온 위기

우리는 오랫동안 쌀을 한국 농업 문제의 한복판에 놓아 왔다. 그러나 더 깊은 곳에서는 생산 기반 자체가 약해지고 있다. 스마트농업만 보아도 그렇다. 자동화 설비는 일정 규모 이상에서야 사업성이 나타난다. 수억 원에서 10억 원에 가까운 초기 투자를 1헥타르 안팎의 농가가 감당하기는 어렵다.

종자·농기계·농자재·가공·유통 같은 전후방 산업도 마찬가지다. 이 산업들은 규모 있는 고객을 필요로 한다. 큰 경영체가 두텁게 존재해야 기술과 장비를 사고, 계약재배를 맺고, 가공·외식·수출 시장에 안정적으로 원료를 공급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농업에는 바로 그 층이 너무 얇다.

그런데도 위기가 잘 보이지 않는 것은 수입이 빈자리를 메우기 때문이다. 2024년 사료용을 포함한 곡물자급률은 21.6%, 칼로리 기반 식량자급률은 30% 남짓에 불과하다. 쌀은 자급률이 높지만 밀과 옥수수는 한 자릿수에 그친다.

수입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안에서는 생산 기반이 줄고, 밖에서는 공급망 전략마저 빈약하다면 식탁의 평온은 안심의 근거가 아니라 위기의 지연일 뿐이다.

그렇다고 소농의 가치를 낮게 보자는 뜻은 아니다. 작은 땅을 정성껏 일구는 가족농의 풍경은 존중받아야 한다. 다만 그 그림만으로 한 나라의 농업을 설계할 수는 없다. 어느 나라에서나 소농은 숫자로 다수다. 차이는 그 위에 매출과 고용, 기술투자와 원료 공급을 담당하는 규모 있는 경영체 층이 있느냐에 있다. 소농을 보호하는 일과 규모 있는 경영체를 키우는 일은 서로 배척되지 않는다.

'가진다'를 소유가 아니라 사용으로

이제 경자유전도 다시 읽어야 한다. 폐기하자는 뜻이 아니다. 농지는 농지로 쓰여야 하고, 투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 원칙은 오히려 더 강해져야 한다. 다만 "농지는 농사짓는 사람이 가진다"는 말에서 '가진다'를 반드시 소유권으로만 읽어야 하는지는 물어볼 때가 됐다.

농지는 소유한 사람보다 실제로 농업에 쓰는 사람에게 더 강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이것이 농지농용의 원칙이다. 경자유전을 오늘의 현실에 맞게 다시 읽는다면, 소유 중심에서 사용 중심으로 옮겨 가야 한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사용자유전'이다.

그러려면 농지가 농지 아닌 용도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규제는 더 엄격해져야 하고, 동시에 흩어진 농지를 모으는 집적도 필요하다. 일본은 이미 농지중간관리기구를 통해 방치되거나 잘게 쪼개진 농지를 모아 의욕 있는 경영체에 다시 빌려준다. 이때 사용의 주체가 한 사람의 농민일 필요는 없다. 영농조합일 수도, 농업법인일 수도, 지역 경영체일 수도 있다. 그렇게 될 때 통계와 제도, 산업의 단위가 비로소 같은 방향을 본다.

쉬운 일은 아니다. 사용권을 강화하고 소유권의 절대성을 조정하는 일은 사유재산권과 맞닿아 있고, 평생 일군 농지를 둘러싼 마음의 벽도 가볍지 않다. 그래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 없다. 충분한 공론화와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1949년에 만든 자로 2026년의 농업을 재고 있다. 그 자는 한때 정확했다. 농가가 곧 농업이던 시절에는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농업의 진짜 위기는 농가 수가 100만 아래로 떨어진 데 있지 않다. 더 큰 위기는 낡은 자를 쥔 채 미래 농업의 지도를 그리고 있다는 데 있다. 농업을 다시 세우고 식량안보를 강화하려면, 농업을 재는 단위부터 바꾸어야 한다.

농가를 지우자는 것이 아니다. 농가를 농업 전체와 혼동하지 말자는 것이다. 1949년의 자를 내려놓고, 2026년의 농업을 잴 새로운 자를 만들 때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이 기사는 줄여달라는 요청을 받고 글의 길이를 대폭 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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