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김용범 “고환율은 한국경제 성공의 역설적 현상” 사실일까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최근 원화 약세를 두고 “한국경제의 취약성이 아니라 성공이 만들어낸 역설적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코스피 급등으로 외국인 보유 국내주식 평가액이 크게 늘었고, 이들이 차익을 일부 회수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매도세가 나타났는데 그 환전 수요가 원·달러 환율을 밀어올렸다는 논리다.
김 실장은 올해 코스피가 70% 이상 급등했고, 외국인 보유 국내주식 평가액이 지난해 말 1300조원에서 최근 2600조원으로 두 배가 됐다고 강조했다. 외국인 매도세도 누적 110조원을 넘었다고 밝혔다.
26일 한국은행과 한국거래소, 금융투자업계 자료를 종합하면 김 실장의 설명은 일부 타당하다.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팔아 원화를 확보한 뒤 달러로 바꾸면 현물환시장에서 달러 매수 수요가 생긴다. 이는 환율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 최근 외국인 매도세는 컸다. 외국인은 코스피가 7000선에 도달한 다음 날인 지난 7일부터 22일까지 12거래일 연속 순매도했다. 이 기간 순매도액은 46조3383억원이었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순매도액만 38조4000억원으로 전체의 82.9%를 차지했다. 매도세가 반도체 대형주에 집중된 셈이다.
다만 외국인 매도가 환율을 밀어올렸다는 설명과 이를 ‘한국경제 성공의 결과’로 해석하는 것은 별개로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환시장의 수급 분석과 경제 상황에 대한 평가는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실장의 설명이 성립하려면 외국인 매도대금 중 실제 환전·송금으로 이어진 규모와 다른 환율 상승 요인들의 영향을 함께 따져봐야 한다.
외국인 주식 매도가 환율에 미친 영향을 숫자로 정확히 떼어내기는 쉽지 않다. 주식시장에서는 외국인 순매도액이 집계된다. 하지만 그 돈이 실제로 언제, 얼마나 달러로 바뀌어 해외로 나갔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일부 자금은 국내에 남아 다른 주식이나 채권으로 옮겨갈 수 있고, 환헤지 여부에 따라 현물환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달라질 수 있다.

환율은 외국인 주식 매도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국내 투자자의 해외주식 투자, 수출입 기업의 환전 수요, 역외 달러 매수, 글로벌 달러화 가치, 위험회피 심리 등이 동시에 반영된다. 이 때문에 국내 연구들도 주로 외국인 증권자금 유출입과 원·달러 환율의 상관관계나 영향 방향 정도만 분석해왔다. 특정 기간 외국인 순매도액이 환율 상승분 가운데 차지한 구체적인 비중에 초점을 맞춰 분석한 자료는 제한적이다.
국민일보가 확인한 관련 연구와 보고서들도 외국인 주식자금이 환율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었다. 다만 그 영향이 순매도액만큼 곧바로 환전 수요로 나타난다고 보지는 않고 있었다.
자본시장연구원이 2021년 11월 발간한 ‘최근 외국인투자자의 국내주식 매매행태와 자금유출입 변동요인 분석’은 외국인 주식자금 유출입과 환율의 연계성을 확인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외국인 주식투자자금 순유출입과 환율 변동의 상관계수는 코로나19 이전인 2016년 1월~2020년 1월 -0.399에서 코로나19 이후인 2020년 2월~2021년 8월 -0.646으로 높아졌다.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갈 때 원화 약세 압력이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외국인이 주식을 판 금액이 그대로 달러 환전 수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봤다. 실제 주식 순매도액 대비 순유출액 비율은 2013년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우려로 신흥국 금융시장이 흔들렸던 ‘테이퍼 텐트럼’ 시기 132.0%, 미국 금리인상기 96.8%, 코로나19 이후 80.3%였다. 코로나19 이후에는 외국인이 주식을 팔아도 일부 자금이 국내에 남거나 다른 자산으로 옮겨간 비율이 상대적으로 커졌다는 뜻이다. 외국인 주식 순매도액 전체를 곧바로 달러 환전 수요로 보기 어려운 이유다.

외국인 매도의 배경도 차익실현 하나로 좁히기 어렵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입이 국내 주가나 원화환율뿐 아니라 미국 주가, 글로벌 위험지표 등 해외 요인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분석했다.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팔았다는 사실만으로 그 원인을 국내 증시 상승에 따른 차익실현으로만 해석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최근 매매 흐름도 이와 맞닿아 있다.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 시장 전체에서 일괄적으로 빠져나간 것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외국인은 지난 18~22일 두산로보틱스 3700억원, 삼성SDI 1489억원을 순매수했다. 같은 기간 코스닥 시장에서도 1조2926억원을 순매수했고, 순매수 상위에는 파두 1556억원, 서진시스템 1280억원, 에코프로 1175억원 등이 올랐다. 반도체 대형주를 중심으로 차익실현이 나타나는 와중에도 로봇·ESS·2차전지·AI 인프라 관련 종목에는 자금이 유입된 셈이다.
이처럼 외국인 매도세에는 차익실현과 포트폴리오 조정, 대외 변수에 따른 위험관리 성격이 함께 섞여 있다. 외국인 매도가 환율 상승 압력으로 작용한 것은 맞지만 이를 곧바로 한국경제 성공의 결과로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김 실장의 설명에서 또 하나 따져봐야 할 대목은 경상수지와 외화자금시장이다. 김 실장은 “경상수지는 사상 최대 흑자를 기록하고 있고 외화자금시장은 안정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의 원화 약세가 외환위기 당시와 같은 외화부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근거로 제시됐다.

실제 한은의 ‘2026년 3월 국제수지(잠정)’에 따르면 3월 경상수지는 373억3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또 4월 말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4278억8000만달러로 전월보다 42억2000만달러 늘었다. 현재 고환율 상황을 외환위기식 외화부족으로 보기 어렵다는 진단은 통계상 근거가 있다.
그러나 경상수지 흑자와 외화자금시장 안정이 곧 환율 안정을 뜻하지는 않는다. 한은 국제국 윤경수 국장은 지난 1월 한은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환율은 장기적으로 펀더멘털의 영향을 받지만 단기적으로는 현물환시장의 수급 불균형이 방향과 폭을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원·달러 환율을 움직이는 주요 관측 변수로는 글로벌 달러화 가치, 즉 달러화지수(DXY)를 꼽았다.
한은이 제시한 지난해 수급 자료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해 1~11월 경상수지는 1018억달러 흑자였다. 하지만 같은 기간 거주자의 해외증권투자는 1294억달러, 해외직접투자는 268억달러였다. 외국인의 국내증권투자 504억달러와 직접투자 63억달러를 크게 웃돌았다. 수출로 달러를 벌어도 해외투자와 달러 보유 수요가 더 크면 현물환시장에서는 달러 매수 압력이 강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자료를 종합하면 김 실장의 발언은 수급 측면에서 일부 사실에 부합한다. 외국인 주식 매도는 환율 상승 요인 중 하나다. 최근 매도 규모도 컸고, 주가 급등 이후 차익실현 성격도 있다. 경상수지 흑자와 외화자금시장 안정도 확인된다. 현재의 원화 약세를 과거 외환위기처럼 외화부족에서 비롯된 현상으로 보기는 어렵다.
다만 외국인 매도액 전체가 달러 환전 수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외국인 자금 흐름에는 차익실현뿐 아니라 글로벌 달러 강세, 위험회피 심리, 원화 약세 기대, 업종별 포트폴리오 조정이 함께 작용한다. 환율도 외국인 주식 매도뿐 아니라 거주자의 해외투자, 수출기업의 달러 보유, 역외 달러 수요, 국제금융시장 흐름의 영향을 함께 받는다.

따라서 외국인 매도가 환율을 밀어올렸다는 설명 자체는 가능하다. 그러나 이를 곧바로 ‘한국경제 성공의 비용’으로 규정하기에는 추가로 확인해야 할 변수가 많다. 현재 경상수지 흑자와 외환보유액, 외화자금시장 여건을 보면 당장 달러 조달이 막힌 국면은 아니다. 그러나 외환위기가 아니라는 진단이 곧 고환율 부담이 작다는 뜻은 아니다.
고환율 부담은 물가와 소비를 통해 국민 생활로 전이될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환율 상승이 수입물가를 거쳐 소비자물가로 파급되고, 가계의 실질구매력을 낮춰 민간소비 여력을 축소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원화 기준 수입물가는 지난 3월 전월 대비 16.1%, 전년 동월 대비 18.4% 급등해 1998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이 10% 오르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약 0.3~0.5%포인트 높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고환율이 장바구니 물가와 소비 여력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외국인 매도가 환율 상승 요인 중 하나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지만 이를 국내 증시 활황의 부산물로만 설명하면 고환율이 국민 생활에 미치는 부담이 가려질 수 있다”며 “지금 정부가 강조해야 할 것은 환율 상승이 물가와 소비, 기업 비용에 미치는 영향을 철저히 점검하고 국민 부담을 줄이겠다는 대응 의지”라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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