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수탈에 맞서 세워진 노량진교회, 창립 120주년 감사예배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민초들의 피난처로 세워진 노량진교회(여충호 목사)가 올해 설립 120주년을 맞았다. 교회는 또 다른 100년을 준비하며 다음세대와 지역사회를 품는 사역을 강조하고 있다.
노량진교회는 24일 서울 동작구 교회 본당에서 설립 120주년 기념 감사예배를 드렸다. 노량진교회는 1906년 경기도 시흥군(현 동작구)에 설립된 노량교회가 전신이다. 을사늑약 직후 일제의 토지 수탈과 국권 침탈 위기가 고조되던 시기 주민들이 스스로 ‘야소교회’를 세우고 전도인을 초청해 예배를 드리며 시작됐다. 당시 노량진 일대는 어부와 상여꾼 등 사회적 약자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일본인 이주와 토지 강제 수용이 이어지며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놓인 주민들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정신적 구심점으로 교회를 세웠다. 미국 선교사 호머 헐버트(1863~1949)도 교회 설립 초기 사역에 참여했다.
한국교회사 연구자들은 노량진교회를 초기 한국교회의 자생성과 민중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는다. 외국인 선교사 명의로 교회 재산이 형성돼 일제로부터 안전지대 역할을 했던 것처럼, 노량진교회 역시 단순 종교시설을 넘어 민초들의 삶을 지키는 공동체 역할을 감당했다고 평가한다. 교회는 이후 6·25전쟁,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며 지역과 함께 성장했다.
50년 이상 이 교회를 지켜온 교인들의 삶은 한국교회의 생활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1965년 열 살 때 처음 노량진교회를 찾았다는 안윤선(69) 장로는 “당시 교회는 흙 마당에 종탑이 있는 작은 교회였다”며 “용산에서 어린 나이에 혼자 한강 다리를 건너 교회에 다녔고 이후 가족 모두가 예수를 믿게 됐다”고 회상했다. 그는 노량진교회의 가장 큰 전통으로 ‘화목’을 꼽았다. 안 장로는 “림인식 원로목사님께서 늘 ‘선 화목, 후 사업’이라고 말씀하셨다”며 “무슨 일을 하든 화목이 먼저라는 가르침이 교회의 중요한 유산이 됐다”고 말했다.
6·25전쟁 당시 북에서 피란을 내려와 노량진교회에 정착한 김세호(91) 원로장로 역시 “교회 인근 가난한 이들과 늘 함께해 온 교회였다”고 밝혔다. 이어 “많은 교회가 갈등과 분열을 겪었지만 노량진교회는 큰 충돌 없이 여기까지 온 것이 자랑”이라며 “그 화평의 전통이 후대에도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교회는 이날 이들처럼 50년 이상 출석한 교인 208명에게 기념패를 전달했다.
노량진교회는 120주년을 맞아 ‘비전300운동’도 선포했다. 다음세대 부서별 300명 부흥, 소그룹 300개 활성화, 국내외 선교사 300명 지원을 목표로 세우고 어린이 돌봄과 홈스쿨, 청소년 공부방, 탈북·다문화 가정 지원, 상담센터 건립, 실버스쿨 운영 등 지역사회 밀착형 사역도 확대할 계획이다.
여충호 목사는 “120년 역사를 넘어 다음세대를 세우고, 신앙의 전통과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이어가는 교회가 되겠다”며 “지역사회를 복음과 연결하는 복음의 고리로서 하나님께 쓰임 받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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