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희용 (12) 헐벗은 말라위, 절망 속 가난보다 무서운 타성에 빠져

김아영 2026. 5. 26.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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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린 채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
뚫린 지붕서 비 맞는 할머니 보고
아내, 기도와 절규 속 사흘간 눈물
뇌물 없이 일 안 되는 부패도 만연
유성희(서 있는 인물) 선교사가 2024년 3월 말라위 릴롱궤의 사역단체(PAF) 커뮤니티 센터 대강당에서 방과 후 수업에 참여한 아이들과 환하게 웃고 있다.


‘하나님, 가장 멀고 가난한 곳이라도 가겠습니다. 다만 우리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정해 주십시오.’

그렇게 눈물로 기도하며 만난 나라가 말라위였다. 처음에는 이름조차 낯설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에 깊은 끌림이 있었다. 이후 말라위 한인 선교사님을 통해 초등학교 급식과 교도소 봉사에 동참하며 우리의 발걸음은 본격적으로 아프리카를 향했다. 2014년 마침내 고등학생 7명으로 단기 선교팀을 꾸려 그 땅을 밟았다. 한국에서 22시간, 미국에서 36시간이 걸리는 길고 서툰 첫걸음이었다.

‘아프리카의 따뜻한 심장’이라는 아름다운 별칭을 가진 나라였지만 마주한 현실은 참혹함 그 자체였다. 길거리는 온통 붉은 먼지로 가득했고 아이들은 헐벗은 채 맨발로 걸어 다녔다. 밥 한 끼를 먹지 못해 배를 움켜쥔 채 학교에 오는 아이들, 흙바닥에서 비참하게 생활하는 주민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유성희 선교사가 말라위를 방문했을 때였다. 아내와 선교팀은 인근 마을의 한 할머니 집을 찾았다. 지붕의 절반이 날아가 버린 처참한 집, 나뭇가지 위에 위태롭게 만든 침상에 노인이 누워 있었다. 그 순간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졌다. 앙상하게 마른 노인은 피할 곳도 없이 그 차가운 빗물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맞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아내는 무너져 내렸다. 어떻게 인간의 존엄성이 이토록 철저하게 짓밟힐 수 있는지 가혹한 현실 앞에 말문이 막혀 사흘 동안 울기만 했다. 기도만 하면 절규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우리를 가장 절망하게 만든 것은 눈앞의 가난 자체가 아니었다. 아무리 도와도 이 땅은 변하지 않는다는 지독한 무력감과 타성이었다. 말라위 땅에서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선교사가 피와 땀을 흘렸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가난했고 정부와 사회의 부패는 뼈아플 정도로 깊었다. 뇌물 없이는 어떤 일도 진행되지 않았고, 정직하게 살면 오히려 손해를 보는 구조였다.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선교란 무엇인가. 정말 이 땅에 희망이 있는가.’ 우리가 초창기부터 마음을 보탰던 초등학교 급식은 날로 확대돼 어느덧 2만명이 넘는 아이들이 밥을 먹게 됐다. 교도소 사역과 목회자 수련회도 쉼 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퍼부어도 퍼부어도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독’ 같았다. 당장 생존이 위급하다 보니 사람들은 믿음보다 빵을 먼저 찾았고 신앙마저 흔들리는 듯했다. 당시 말라위는 우리에게 빛보다 어둠이 훨씬 더 크게 보이던 땅이었다.

그러던 중 우리와 협력하던 현지 목회자들이 소속된 기독 고등학교가 큰 위기를 맞았다. 미국 후원자들에 의해 운영되던 학교에서 현지인 대표가 후원금을 유용하고 교사들의 월급을 체납한 채 학교 자금을 개인 사업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미국 단체가 5년 만에 철수를 선언하자 현지인 대표는 학교 부지를 몰래 매각해 사적으로 이익을 챙기고 학교를 문 닫았다. 우리에게 이 소식은 교육 선교의 꿈을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사방이 가로막힌 절망이었다.

인간의 계획과 선교의 기반이 완전히 무너진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계셨다. 하나님은 무력감에 빠져 있던 우리 부부를 인간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손으로 직접 이끌어 이 땅의 백성들을 재건하시는 진짜 선교가 무엇인지 가르치기 위해 철저한 광야로 데려가셨다.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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