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부모 세대 반도체처럼… ‘재생 의료’ 미래 지도 작성 서둘러야

2026. 5. 26.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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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데이터·물류 엮인 통합 생태계
韓 재생 의료 잠재력, 세계 최고 수준
국가 차원 육성… 한발 앞서 준비해야


1983년, 삼성이 반도체 사업 진출을 선언하자 한 일본 연구 기관이 ‘한국이 성공할 수 없는 이유’를 조목조목 정리한 보고서를 냈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회자된다. 자원, 자본, 기술도 변변치 않던 나라가 손톱만 한 칩에 미래를 건다는 것은 당시로선 무모한 도박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칩은 결국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심장이 됐다.

지금 재생 의료를 향한 시선이 꼭 그때와 닮았다. 재생 의료는 약으로 증상을 누르는 의학이 아니다. 닳거나 망가진 세포와 조직, 장기를 직접 되살려 기능을 회복시키는 ‘인체 복원’ 기술이다. 한번 손상되면 돌아오지 않아 평생을 따라다니던 질환에도 비로소 출구가 생긴다. 이미 줄기세포, 세포·유전자 치료제 등 재생 의료가 실제 환자에게 적용된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나아가 환자 유래 ‘오가노이드(줄기세포를 3차원 배양·재조합해 만든 세포 집합체)’를 활용해 실제 이식 가능한 기능성 인공 조직·장기를 구현하려는 시도도 본격화되고 있다. 공상 과학이 아니라 의료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산업이 반도체와 구조적으로 빼닮았다는 점이다. 반도체가 설계와 파운드리, 장비, 소재, 패키징이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한 생태계이듯, 재생 의료 역시 세포 설계와 GMP(의약품 제조·품질관리 기준) 생산, 바이오 장비, 배지·소재, 병원 치료가 하나의 사슬로 이어져야 비로소 작동한다. 좋은 약 하나를 대량으로 찍어 넓게 유통하면 끝나던 시대를 지나 살아 있는 세포의 변동성을 한 치 오차 없이 다뤄야 하는 정밀 산업으로 넘어왔다는 뜻이다.

재생 의료에 있어 한국의 잠재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고난이도 이식 수술 등을 매일같이 해내는 대형 병원과 의료 인력, 수십 년간 쌓아 온 방대한 의료 데이터, 항체 의약품으로 다져진 세계적 생산 역량, 그리고 한발 앞서 마련해 둔 첨단재생바이오법까지. 무엇보다 공정을 표준화하고 품질을 끌어올리는 데 익숙한 우리 제조업의 체질은 자동화 생산과 까다로운 품질 관리가 승부처인 재생 의료에 그대로 들어맞는다.

기회는 오래 기다려 주지 않는다. 반도체가 그랬듯 시장이 무르익은 뒤에 뛰어든 나라는 끝내 변두리에 머물렀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국가 차원의 집중 육성이다. 원천 기술 확보부터 중개 연구를 통해 가능성을 확인한 후보 치료제와 치료 기술이 제품화까지 이어지도록 지원 확대가 절실하다. 국가 바이오 파운드리를 세우고, 핵심 소재와 장비를 국산화하고, 병원 중심의 임상 거점을 짜고, 투여 이후를 평생 추적하는 데이터 플랫폼까지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

재생 의료는 잘 만든 제품 하나로 승부가 나는 산업이 아니라 제조와 의료, 데이터, 물류가 한데 엮인 통합 생태계 산업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 현장에선 첨단 재생 의료 실시 기관 및 임상 연구 수요는 증가하나 임상 단계로 넘어갈 공용 GMP 및 CDMO(위탁 개발·생산) 인프라 공급이 부족해 임상 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공용 인프라 구축 등 수요자와 공급자를 함께 지원해야 하는 이유다.

부모 세대가 반도체로 대한민국 산업의 지도를 다시 그렸다면 우리 세대의 과제는 재생 의료로 미래 의료의 지도를 그리는 일이다. 기술이 될지 안 될지를 의심하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 남은 질문은 단 하나, 누가 먼저 준비하느냐다. 우리가 망설이면 다른 나라가 먼저 시작해 열매를 따게 된다.

유종만 오가노이드사이언스 대표·차의과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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